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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통영=양문석 통영정책연구원 이사장] 고등학교를 진주에서 다닌 필자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고향 집을 찾았다. 시외버스가 도산면을 지나면서 죽림의 갈대밭 너머에서부터 불어오는 짙은 갯내음에, 졸음에 겨운 눈을 뜨며, 이제 거의 다 왔구나 하는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 미소는 금세 사라진다. 죽림을 지나 원문고개에 이르면 어김없이 군인 한 명과 경찰 한 명이 검문한다. 까만 선글라스와 잘 다려져 각진 군복에 총을 든 군인은 버스 문 앞에 서고, 경찰관은 차 안으로 들어선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라곤 승객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승객 한 명 한 명을 샅샅이 훑어볼 때 오는 그 불편함. 관음증 환자의 끈적끈적한 눈빛 아래에 발가벗긴 채 앉아 있는 듯한 그 불쾌감.

통영시민들 누구나 겪었던 그 불편함과 불쾌감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돼 버렸지만, 그땐 어찌 그리도 불편하고 불쾌하든지. 하지만 군경이 준 불쾌감은 이내 차창 밖으로 승객들의 눈길을 돌리게 한다. 위협적이고 고압적인 군경과 눈길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차창 밖의 바다를 본다, 파란 물결 찰랑거리며 햇빛을 반사하는 바다 물결 위 화려한 빛의 잔치에 승객들의 눈은 호강한다. 불과 2~3분의 검문 시간 동안 신분증 제시를 요구당하는 일부 승객들을 애써 외면하며, 차창 밖을 봐야 했던 시절의 추억. 그러나 북신만에 감긴 작은 바다는 객지 나갔다 돌아오는 통영사람들에게, '국가권력의 폭력'으로 뭉개지는 가슴과 눈길에, 널널한 위로와 잔잔한 행복을 선물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원문고개에서 바라보던 바로 그 바닷가에 콘크리트 장벽을 쌓는단다. 그곳에 25층짜리 고층 아파트를 짓는단다.

통영으로 들어오는 관문 원문고개 오른쪽의 바다는 그 아파트 주민들만이 감상할 수 있는 몇몇 소유물로 전락하고, 객지에서 돌아오는 통영사람들 누구든지 겪고 누리던 불쾌함의 추억이나 잔잔한 행복은 통영시와 건설사업자에 의해 박탈당한다.

세상에 이런 행정이 어디 있나. 건설사업자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 바다를 볼 수 있는 통영사람들의 천부적 자연적 권리를 박탈하는 행정, 몇몇 돈벌이를 위해 대다수 시민이 누려왔던 추억과 행복을 강탈하는 행정. 이것이 김동진 시장의 행정인가? 이것이 통영시의 행정인가? 통영시장과 통영시청은 통영을 통영사람을 도대체 뭘로 보는 건가. 새삼스럽지만 이런 사업허가를 강행한 김동진 통영시장에게 자꾸만 다른 의심이 드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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