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은 생소한 원소기호 18번의 기체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다른 물질들을 산화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기체 아르곤(Ar)이야말로, 8부작의 이 드라마가 가진 의의를 절묘하게 드러낸다.

촛불 항쟁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그 새로운 시대의 과제 중 하나인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지난 보수정권 10년간 '훼절'한 언론을 되살리기 위해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사들의 '파업'이 시작되는 즈음에 시작된 드라마. '사실을 통해 진실을 보도하고자 고군분투'하는 탐사보도팀 아르곤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시의적이었다.

드라마 속 탐사보도팀 아르곤이 소속되어 있는 HBC의 상황은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다. 기자들은 파업으로 해직당하고 한때 대표적 탐사보도팀이었던 아르곤은 마감 뉴스로 밀려난 처지다. 팀장 김백진(김주혁 분)은 여전히 진실 보도에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보도 내용까지 사전에 '검열'당해야 하는 팀의 처지는 마감 뉴스의 자리조차 위태롭게 한다. 그런 아르곤에 해직 기자를 대신한 막내 이연화(천우희 분)가 들어와 '용병'이라 눈칫밥을 먹게 되고, '미드타운붕괴' 사건이 전 사회를 덮친다.

8부작이라는 짧은 기간 <아르곤>은 세월호 혹은 그 이전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연상시키는 '미드타운붕괴' 사건을 다루며, 진실을 향해 분투하는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프레임, 사실의 안과 밖

tvN 월화 드라마 <아르곤>

이른바 시청자들 혹은 독자라는 이름의 '대중'은 언론을 통해 전해진 기사나 보도들을 '사실'이라 믿는다. 아니 믿기 쉽다. 설사 의심을 하더라도 전 언론이 입을 모아 떠들기 시작하면 자신의 의심을 거두고, 그곳으로 눈과 귀가 쏠린다. 보수정권 10년 동안 정권이 그토록 공을 들여 기자들을 해직하고 운영진을 물갈이하며 '언론을 장악'하고자 애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아르곤>은 다시 한번 그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사실이, '프레임'이란 틀 속에서 얼마든지 날조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미드타운붕괴 사건을 접한 아르곤 팀은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이 사건이 수많은 사람들의 인명을 빼앗아간 비극이라는 점을 조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르곤이 그곳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이, 권력의 하수인이 된 보도국장 유명호(이승준 분)는 '특종'이라는 이름 아래 미드타운붕괴 사건의 프레임을 '사라진 현장소장'의 책임으로 돌린다. 마지막 회 대미를 장식했던 미드타운 보도는 김백진의 책임이란 프레임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유명호가 던진 특종을 받아든 각 언론들은 너도 나도 현장소장을 희생양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사람들이 현장소장의 가족들에게 몰려가 집단 린치를 가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드라마는 아이를 살리고 현장에서 숨져간 현장소장의 희생을 통해, 그 '집단적 히스테리'와도 같은 프레임을 전복시킨다.

tvN 월화 드라마 <아르곤>

비록 짧은 8부작이지만, <아르곤>의 고군분투는 바로 이 권력과 거기에 야합한 언론, 그들이 만든 '프레임'에 미혹되는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된다. 현장소장에게 뒤집어 씌워진 프레임, 섬영식품 안재근 연구원의 자살과 관련된 이중 언론플레이, 거대교회 권력 성종교회의 손해배상소송 등등 보도되는 사실과 그 사실 이면의 진실을 향한 싸움이다.

이는 결국 진실을 향해가는 사실 탐사보도팀 아르곤의 '정의로운 언론 행위'를 빛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상의 모든 보도되는 사실들이 '편집된 사실'일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한다. 심지어 <아르곤>은 김백진이 놓친 선광일의 진실과 미드타운의 실체를 들어 '정의'란 이름의 진실조차 의심하고 판단하기를 요구한다.

김백진은 말한다. 진실조차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의롭다고 믿어지는 그 누군가가 가져다줘서 받아먹는 진실이 아니라, 각자 프레임의 틀을 벗고 나와 사실을 통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의 시대에 대한 요구가 <아르곤>이 말하고자 하는 숨겨진 주제이다. 광야에서 온 초인을 기다리고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정신 차리고 제대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채워갈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아르곤, 영웅의 결연한 퇴장

tvN 월화 드라마 <아르곤>

<아르곤> 8부의 여정이 빛나는 건 그 '프레임'에 갇힌 사실 아닌 사실에서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싸움의 과정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가 그간 거대권력을 향한 싸움을 다룬 드라마들 가운데 독보적인 가치를 발하는 건, 그들과의 싸움만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더 철저했다는 점에서이다.

용병으로 들어온 이연화에게 김백진은, 그로 인해 기자가 되고 싶어서였던 그 '로망'만큼이나 거대한 우상이다. 그 우상은 '진실을 알리고 싶어' 기자가 되고 싶었다던 그의 말 만큼이나 영웅적이다. 진실을 보도하는 데 있어 물러섬이 없다.

하지만 그와 그의 팀이 추구하는 진실은 늘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매년 만우절이면 그를 찾아와 아내가 성추행당했다며 행패를 벌이던 선광일의 진실을, 자신이 선택한 사실을 믿었던 김백진은 쉽게 무시했다. 그가 뒤늦게 도달한 진실은 죽은 선광일을 구원할 수 없었다. 언론을 바로세우기 위한 김백진의 9시뉴스 앵커 도전은 10년 동안 동고동락한 육혜리(박희본 분)의 희생을 발판 삼으려 한다. 오합지졸이 될 뻔한 아르곤을 구하기 위한 신철(박원상 분)의 섬영식품 특종은 한 연구원의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미드타운에 대한 진실 보도가 3년 전 자신의 책임을 지울 수 없다.

tvN 월화 드라마 <아르곤>

<아르곤>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영웅의 탄생대신, 끝까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언론인의 자세를 말한다. 정의 앞에 떳떳한 영웅이 아니라, 늘 의심하고 진실을 추구하지만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구르고 엎어지고 고뇌하는 과정 속에서의 언론을 말하고자 한다. 영웅 대신 인간이 하는 일로서의 '언론'이다.

그런 면에서 <아르곤>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추구한다. 우리는 늘 영웅을 갈구한다. 그리고 영웅은 난세에 태어나듯, 어려운 시절 속에 우리들은 새롭게 탄생되는 각 분야의 영웅들에 열광한다. 하지만, <아르곤>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 누군가 몇 사람의 탁월한 영웅 대신, 인간의 일로서 만들어 가는 '정의'를.

아르곤의 우상 김백진은 그래서, 결국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정의로운 언론의 수호자로서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용병이었던, 그러나 김백진의 실수조차 기사화할 수 있는 용기를 냈던 이연화는 정규직 사원이 된다. 정의는 몇몇의 영웅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깨어있는, 포기하지 않는, 그리고 책임지는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상을 받는 대신, 자신을 앞서간 많은 선배 동료 언론인에게 공을 돌린 김백진의 마무리 수상 소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