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출신으로 어린 시절 프랑스로 망명한 리티 판은 크메르 루즈 정권 하에 '킬링필드(크메르 루즈 정권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사건을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그 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크메르 루즈-피의 기억>(2003), <잃어버린 사진>(2013) 등 크메르 루즈 시절 캄보디아 역사와 민중의 비극을 다룬 여러 영화들을 제작해왔다.

올해 열린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첫 공개된 이후,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상영을 통해 다시 한번 국내 관객들과 만난 <추방자>(2016) 또한 조국 캄보디아를 등지고 프랑스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리티 판의 사적 기억을 담고자 한다.

영화 <추방자> 스틸 이미지

<추방자>에는 리티 판의 청년시절로 보이는 젊은 연기자(퍼포머)가 등장한다. 오두막에 갇혀있는 남자는 1975년 크메르 루즈 집권기부터 리티 판이 캄보디아를 탈출한 1979년까지, 리티 판이 직접 겪었던 킬링필드를 암시한다. 오두막에 갇혀있는 남자의 생존에 대한 몸부림에 크메르 루즈 시절 기록되었던 아카이브 푸티지 영상이 더해지며 오늘날까지 리티 판 감독을 괴롭히는 학살, 탈출, 생존의 처절한 기억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오두막에 갇힌 남자의 퍼포먼스를 통해 리티 판 감독은 지난 시절 그가 겪었던 악몽의 기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대입시킨다. 이에 병치되어 등장하는 다양한 푸티지 영상은 리티 판과 당시를 살았던 수많은 캄보디아인들이 겪었던 사건이다. 실제 킬링필드의 희생자이기도 했던 리티 판은 마오쩌둥, 보들레르의 사상과 명언을 차용한 내레이션을 통해, 크메르 루즈 정권을 탄생 시켰던 혁명의 근원과 과연 그것이 진실로 캄보디아 인민들을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했는지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화 <추방자> 스틸 이미지

영화에는 유독 오두막에 갇힌 남자가 동물을 잡고 그것을 먹는 행위가 반복되는데, 이는 인민을 위해 일으켰다는 (크메르 루즈) 혁명으로 사실은 많은 캄보디아인들이 학살됐단 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극적 장치로 활용된다.

추방은 무서운 고독이지만, 때로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추방당한 사람은 자아를 상실하고 괴로워하며 서서히 사라지기도 하지만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실제 탈출(사실상 추방)의 아픔을 겪은 리티 판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재구성하며 크메르 루즈 시절 겪었던 일련의 상황들, 캄보디아의 비극을 돌아보고자 한다.

<추방자>는 리티 판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일종의 픽션 다큐멘터리이자 '혁명'이라는 단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에세이 필름이다. 추방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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