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방송장악 10년 국정조사 제안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자유한국당이 드디어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방송'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방송장악 국정조사에 대한 얘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이 먼저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놓고 정작 본인들이 국정조사를 회피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에게 방송장악 국정조사 카드를 이어갈 수 없는,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공영방송 장악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행각이 연일 알려짐에 따라 자유한국당이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은 이른바 '방송장악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해, 공영방송 KBS, MBC의 특정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노조탄압, 경영진 교체 등을 주문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검찰은 관련자 소환조사를 실시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지난 12일 자유한국당은 민주당 워크숍 문건을 '방송장악 문건'이라고 주장하며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 사무처에 제출했다. 자유한국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9년 동안의 방송장악을 포함해 10년 국정조사를 하자고 역제안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민주당의 제안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지난 13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재선의원 연석회의에서 홍 대표는 "국조위에 국정조사 요구하니까, 여당에서는 10년 전도 하자고 한다"면서 "그렇게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대표는 지난 14일 연세대 사회학과 특강에서도 "우리가 국정조사 제의를 했다. 이명박·박근혜 때까지 조사하자고 해서, 같이 조사해보자고 했다"고 자신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후 자유한국당은 '방송장악 국정조사'의 '방' 자도 꺼내지 않았다. 홍준표 대표의 의사를 자유한국당 원내지도부가 묵살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한동안 묵묵부답을 이어간 것은 사실이다. 자유한국당은 17일에서야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이 방송장악 국정조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 대변인이 당 대표의 발언을 뒤집는 촌극을 벌였다. 정 대변인은 "과거 정권을 조사하려면 김대중·노무현 정권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물타기를 시도했다. 홍 대표의 관련 발언이 희화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의 국정조사 물타기가 침묵으로 바뀐 것은 지난 18일부터였다. 이날 한겨레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KBS와 MBC 간부와 기자들을 사찰하고 이를 근거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과 프로그램 등을 퇴출하는 공작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노조 탄압의 구체적인 방법과 로드맵까지 짜는 등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국정원이 총괄했다는 점도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자유한국당은 공식적인 석상에서 방송장악 국정조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20일 강효상 의원이 언론노조 KBS본부가 불법 파업을 한다는 주장이 담긴 논평을 냈고, 22일 자유한국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이 방통위의 방문진 검사를 위해 자료요청을 한 사실에 대해 비판했을 뿐이다. 공영방송 문제를 얘기하면서도 정작 방송장악 국정조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25일 자유한국당이 오랜만에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영방송 사태를 언급했는데, 역시 국정조사 얘기는 없었으며 현 시점과 관련 발언 뿐이었다. 자유한국당 방송장악저지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흠 최고위원은 "방통위가 MBC 최대주주 방문진에 대한 검사, 감독을 명분으로 초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시작했다"면서 이효성 위원장에 대한 비난만 더했다.

지난 18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처음부터 (국정조사를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자유한국당이) 꼬리 내리고 말장난 하는 것 같다"면서 "대표 얘기에도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은 원내지도부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매번 제1야당이라고 하는데, 이래서 되겠나"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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