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의 정무수석 출신인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의 막말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시민들은 정치공세를 위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 패륜이라고 분노하고, 언론에서는 대선이나 보수위기 때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들고 나온다고 분석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민심이나 언론 어느 쪽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민주당에서도 ‘사과 필요 없다 법적으로 하자’는 투로 나오자 정진석은 재차 페이스북을 통해 ‘유감’을 표하며 한발 물러서나 싶었으나 여전히 색다른 정신세계를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원망하지 말라고 했으니 자유한국당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그 유가족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모욕해도 된다는 배짱인 것인가? 요즘 하도 오보가 많이 지면을 거꾸로 읽는 버릇이 생길 지경이라 읽는 눈을 의심할 정도의 비상식이다.

김장겸 MBC 사장 체포 영장 발부에 반발해 정기국회 보이콧을 선언한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 등 의원들이 5일 오후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후 소득 없이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현직 서울시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 고발하고, 문성근 김미화씨 같은 분들이 동참하는 여론몰이식 적폐청산이 나라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라고도 했다. 이 역시 문장을 이해하기 불가하기는 마찬가지다. 블랙리스트에 의한 억압과 피해를 받았던 사람들이 증거가 없어 그저 참기만 하다가 이제 국정원을 통해 근거들을 확보할 수 있어 비로소 억울함을 풀려는 것에 대한 다선의원의 해석치고는 너무도 난삽할 뿐이다.

그렇다면 고소·고발은 어떤 사람이 해야 타당한 건지 궁금하다. 그렇지만 물을 필요는 없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 있었던 사람들의 최근 반응은 그렇게 일치되고 있기 때문에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정진석 의원 외에 또 다른 이명박 정부의 정무수석을 지냈던 박형준 전 의원 역시 <썰전>에 나와 지금의 적폐청산을 ‘이명박 죽이기’라고 단정했다.

JTBC <썰전>

정진석, 박형준 등 이명박 정부의 핵심세력들이 주장하는 정치보복이라는 논리에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연일 트위터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을 더하고 있다. 전 교수는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그럴듯한 말입니다. 죄 없는 사람까지 괴롭히는 일이 순환된다면 악순환이 맞습니다. 그러나 죄지은 자들만 찾아 단죄하는 건 선순환입니다. 적폐문화가 악순환되는 건, 죄지은 자들까지 용서했기 때문입니다”라고 꼬집었다.

한국 현대정치가 오랜 독재와 부정에 얼룩지게 된 원인은 해방 후 반민특위의 실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때에 프랑스 작가 까뮈 같은 인물이 없었던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까뮈는 나치부역자 숙청반대를 향해 다음 같은 말로 여론을 다잡았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설픈 선순환 논리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대문호다운 말이었다.

까뮈의 말은 적어도 한국 현대정치사에는 족집게처럼 들어맞았다. 반민특위의 실패는 이후 친일파들의 세상을 열어주었고, 이어진 군사 쿠데타와 또 다른 쿠데타로 점철되며 민주주의를 압살했다. 그래도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식지 않은 열망과 항쟁의 의지로 끝내 독재를 무너뜨리고, 부정한 권력도 끌어내렸다. 그 사람들을 촛불시민이라고 부른다. 또 집단지성이라고도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3월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참가 시민들이 '촛불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적폐청산은 촛불혁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평화적이면서도 완벽한 민주주의 혁명을 다시 이뤄낸 시민들의 요구였다. 한 명의 까뮈는 없었지만 까뮈의 말을 기억하는 100만 명의 촛불, 1700만 명의 시민들이 광장을 채웠고, 피 없는 혁명을 이뤄냈다. 세계는 놀랐고 또 부러워했다. 또 당연히 반민특위의 불행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말라는 적폐청산의 단호한 목소리를 냈으며 그 촛불시민의 힘으로 선출된 문재인 정부는 단지 그 명령을 준수할 뿐이다.

적폐의 반격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촛불 이후 시도된 보수세력의 모든 프레임 전략마다 실패했다. 언론이 막아준 것이 아니다. 촛불시민은 광장을 비웠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SNS에서, 기사댓글에서 그리고 각자의 커뮤니티에서 작은 광장이 되었다. 언제고 다시 100만의 촛불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적폐청산은 무뎌질 수 없으며,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촛불은 꺼진 것이 아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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