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클리셰 없는 귀한 드라마 <사랑의 온도> (9월 18~19일 방송)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

남녀 주인공이 만난 지 5시간. 실제로 대화한 시간은 고작 30분. 시청자들이 그들을 마주한 시간도 고작 30분.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사귀자고 말한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 주인공에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고백이 전혀 납득이 되질 않는데, 시청자들은 이미 그들의 로맨스에 빠져들고 있다. 그 흔한 키스 한 번 하지 않은 커플인데 말이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고백한 것도 아니고, 남녀 주인공이 멋진 옷을 입은 것도 아니다. 화려한 미사여구가 동반된 고백을 한 것도 아니다. 야밤에 런닝동호회 모임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뒤처진 여자주인공을 찾던 중에 생긴 일이다. 매우 일상적인 배경 아래서 비일상적인 고백이 이뤄진 것이다.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

납득의 힘은 남녀 주인공의 대사에 있었다. 다시 말해, 대본의 힘이다. 지난 18일 첫 방송된 SBS <사랑의 온도>는 SBS <따뜻한 말 한마디>,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등 매우 현실적인 로맨스를 바탕으로 섬세한 감정선과 대사를 담아냈던 하명희 작가의 신작이다. 정선(양세종)과 현수(서현진)가 주고받는 말이 특별하진 않았지만, 그 특별하지 않음이 주는 묘한 매력이 두 남녀의 단기속성 로맨스를 납득시키고 있었다. 어린 남자의 결코 가볍지 않은 고백, 그리고 나이 많은 여자의 싱겁지 않은 거절.

멜로물든 로코물이든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주제인 드라마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신이 있다. 첫 회에서는 남자 주인공 샤워신, 혹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민폐형 여자주인공. <사랑의 온도>에는 둘 다 없다. 심지어 2회에서 고속버스 파업으로 막차가 끊겼음에도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내지 않고 PC방에서 기차표를 예매해서 결국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간다. 시청자가 예상하는 모든 클리셰를 비껴간다. 그것만으로도 여느 드라마와 차별점이 존재한다.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

극 중 현수의 직업인 드라마 작가의 현실도 잘 보여주지만 로맨스 역시 붕 뜨지 않고 땅에 발 디딘 현실적인 로맨스다. 연하남의 고백을 넙죽 받아들이는 여자가 아니라 현실적인 여건을 철저히 따져 거절하는 여자. 막내 보조작가임에도 제작자의 스카웃 제의를 단칼에 거절하는 여자. 대기업을 그만두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무모함과 열정만 보면 이상주의자 같지만, 현수는 철저히 현실주의자다. <사랑의 온도>도 그렇다.

만난 지 5시간 만에 고백했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남자와, 대기업을 그만두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결코 무모하지는 않은 여자의 로맨스. 2회 만에 현수와 정선은 서로가 절실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억지스럽지 않다. 납득이 간다. 특별한, 드라마다.

이 주의 Worst: 지겹다는 말도 지겨운 ‘6시간 키스’ <자기야> (9월 21일 방송)

기승전‘키스’였다. 그것도 ‘6시간 키스’였다. ‘이 얘기를 하려고 출연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SBS <자기야-백년손님>에 출연한 이지성 작가는 자신에게 토크 기회가 올 때마다 아내 차유람과의 6시간 키스 에피소드를 빼놓지 않고 반복했다. 오프닝에서 키스 얘기를 꺼낸 것이 시작이었다. 한 사위의 VCR이 끝나면 또 키스 얘기, 연애 시절 아내 차유람의 ‘밀당’ 과정을 얘기하는가 싶더니 마무리는 역시나 키스 얘기. ‘6시간동안 키스를 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데, 그걸 방송 내내 우려먹었다.

SBS 예능프로그램 <자기야-백년손님>

키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얘기가 끝나자 이지성 작가의 방송분량도 끝났다. 다른 출연자들처럼 장모님과의 생활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에 출연해서 인터뷰한 게스트였다. 그 짧은 인터뷰의 시작과 끝이 모두 키스 에피소드였던 것이다.

키스 얘기를 포함해 새로운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키스 얘기‘만’ 한 것이 문제다. 그것도 이미 다른 방송이나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밝혀진 사실을 말이다. 키스 에피소드의 재미 여부를 떠나 전혀 새롭지 않은 에피소드였다는 게 더 큰 문제다.

‘6시간 키스’ 질문을 선정한 제작진의 잘못인지, 그 질문을 가장 먼저 꺼낸 MC 김원희의 문제인지, 아니면 이 에피소드를 제공한 당사자 이지성의 잘못인지. 과연 누구에게 잘못을 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어떤 방송에서도 그 얘기만 했다는 것이고, 이는 그만큼 이지성 작가의 게스트로서의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뜻이다.

SBS 예능프로그램 <자기야-백년손님>

콘텐츠의 진부함과 빈약함이 첫 번째 문제라면, 두 번째 문제는 이지성 작가의 태도였다.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기 전 차유람 선수가 ‘밀당’하는 과정을 상세히 밝혔는데, 곱씹어 들어보면 ‘아내가 이렇게 밀당했어요’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당한 억울한 피해자에요’라는 입장에 가까웠다. 6시간 키스 에피소드를 얘기할 때도 마지막에 “내가 당한 것이에요”라고 강조하면서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결혼한 마당에, 누가 먼저 키스를 한 것이 그렇게 중차대한 문제일까.

여자를, 아내를 바라보는 이지성 작가의 시각도 과연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을 권장하는 책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을 집필한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결혼 후 아내가 여자가 됐다”는 이지성 작가의 말은 ‘여성스러워졌다’는 뜻이 아니라 ‘주체적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나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됐다’는 뜻이었다. 또한 이지성 작가가 “하루하루 힘든 이유”는 아내 차유람이 요리 재료를 다듬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이지성 작가에게 여성의 의미란 남성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아내를 존중하는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영원한 신혼부부’ 특집에 이지성 작가를 섭외한 이유를 1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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