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의 종영을 기다리던 새 수목드라마 세 편이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일단 출발신호를 가장 경쾌하게 받은 것은 문근영의 신데렐라 언니였다. 그리고 그 뒤를 손예진의 개인의 취향과 김소연의 검사 프린세스가 느슨한 신발끈을 매고 달릴까 그냥 달릴까를 고민하며 뒤쫓고 있다. 뚜껑을 열기 전에는 무엇을 봐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주었지만 일단 첫 회를 보고나서는 대강의 가닥은 잡힌 듯싶다.

워낙 문근영 대 손예진의 대결구도가 손에 땀을 쥘 만큼 흥미로웠던지라 아직 다른 인물에 눈 돌릴 여유가 많지는 않지만 세 편의 드라마를 보면서 다소의 실망감을 갖게 되었다. 추노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명성만큼이나 구설수도 많았던 추노가 맞닥뜨린 최대의 시청자 불만은 최장군과 왕손이의 죽음이었다. 그래서였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결국 이 두 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나서 월악산 짝귀의 식객이 되었다. 뭔가 있을까 끝까지 궁금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한정수와 김지석은 추노에서 인상적인 케릭터를 표현했고 전보다 한층 나은 배우로서의 입지를 마련했다. 작은 주모 윤주희만 최장군을 애달프게 기다린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청자가 윤주희 어깨 뒤에서 감독에게 윽박질렀다. 최장군을 살려내라고. 그러나 최장군과 왕손이를 왜 살려냈을까 하는 생각을 종영까지도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했다.

살아난 것 자체가 의아했지만 워낙 살려내라 아우성이었던 시청자는 이후 두 사람의 월악산 밥 축내기에 대해서 일절 말을 아꼈다. 그러나 내심 불만인 사람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 이들이 살아난 전후의 활약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짝귀와 잠깐씩 보여주는 코믹대사 말고는 추노꾼의 펄펄 나는 활기는 없었다. 부상 때문이었겠지만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최장군과 왕손이는 결국 대길을 한양으로 혼자 보내고, 아름다운 최후를 함께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둘이 추노가 끝나자마자 또 나타났다. 최장군은 검사 프린세스의 검사로, 왕손이는 개인의 취향에서 바람둥이 친구로. 케릭터도 거의 비슷하다. 추노꾼에서 검사로 변신한 한정수는 더 이상 옷을 벗을 일은 없겠지만 역시나 누군가를 잡으러 쫓아다니고 있고 대사톤도 큰 변화가 없다. (한정수의 극중 대사톤이 그러고 보면 늘 그렇기는 하다) 바람난 왕손이 김지석도 타인머신을 타고 온 듯 여전하다.

케릭터 고착현상은 배우를 소모하게 된다. 새로운 작품에서 같은 케릭터로 연기할 것이라면 차라리 그때 살지 말고 그냥 욕먹더라도 죽었던 것이 훨씬 나을 뻔 했다. 연기하는 본인들도 그렇겠지만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들이 여전히 추노 속 케릭터를 연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게 한다.

물론 추노 출연자들이 이미 다른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지만 같은 수목 드라마에 재등장한 이들의 모습이 아무래도 더 눈에 밟힌다. 추노의 방화백 안석환 역시 개인의 취향에 출연하지만 마초 케릭터로 변신해 추노의 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점에서 김지석보다는 유리하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구대성 역을 맡은 김갑수 역시 왕에서 전통 술도가 사장이라는 우두머리의 성격은 같지만 인물 케릭터는 딴판이어서 추노를 지우기에 충분해 보인다.

F4 구준표가 개인의 취향에 드러난다면 그것을 이민호의 성공이라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완전히 다른 케릭터라면 몰라도 크게 다를 것 없는 케릭터를 통해서 전작과 다른 인상을 찾아내고 그것을 시청자에게 전달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우 첫 회만으로 이들을 판정할 수는 없겠지만 변신을 기대하기 어려운 한정수와 김지석의 새 드라마 출연은 높아진 인기만큼의 주목은 받겠지만 배우로서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남을 듯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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