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를 수 없는 운명만이 존재하는 <동이>가 4회를 마지막으로 아역 배우들에서 성인 배우들로 갈아타게 되었습니다. 이병훈 감독이 어린 동이 역의 김유정에게 경도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도한 감정들이 쏟아지는 내용들은 매끄러움보다는 인물 김유정에게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 운명 속에 갇힌 동이

동이가 궁궐에 들어서기 위해 그 모진 일들이 일어났던 겁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죽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천수도 죽는(죽었다고 믿는) 일이 발생한 것도 동이가 숙종을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어졌던 운명이었습니다. 도력이 넘치는 도인의 말만 들으면 세상만사 살만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니 어디인지 모를 도인을 찾아보는 게 노력하는 것 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동이와 옥정의 만남과 그들이 운명적으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음을 예견한 도인의 말처럼 이미 운명 지어진 삶 속에서 하찮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저 그 도인이 밝힌 운명 속에서 그 길을 갈 수 있느냐와 낙오되느냐의 문제일 뿐 노력을 하고 최선을 다해도 그 안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운명론에 빠져버린 <동이>는 재미도 향후 수없이 많은 고행들마저도 모두 운명 탓으로 돌려야 하니 허탈하기만 합니다.

자신의 아비를 죽인 원수의 딸을 접하고도 생존을 허락한 서용기에게 무엇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어린 아이를 차마 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것마저도 운명이려니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남부터 운명처럼 끌렸던 아이 동이는 비범해 보이기만 합니다. 범접하기가 쉽지 않은 아이 동이를 그의 손으로 해할 수 없음을 서용기는 본능적으로 알아 차렸나 봅니다.

대사헌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동이와 죽어가며 남긴 수신호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간직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더욱 운명처럼 만난 장옥정이 대사헌과 동일한 수신호를 하는 것을 보며 분명 특별한 사연이 있음을 감지한 동이는, 이것이 자신 아비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확신합니다.

서용기 역시 어린 동이가 이야기한 수신호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수신호의 뜻을 알아내는 것이라 판단합니다. 결국 수신호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헤어지게 된 그들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의 <동이>속에 중요한 매개로 작용하겠죠.

동이의 아역을 맡은 김유정은 참 열심히 했습니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차가운 겨울 날씨도 마다하지 않고 사방을 누비며 열연을 펼친 그 어린 배우에게 탓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오버스러운 표정과 몸짓들 역시 아역배우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연출자인 이병훈의 몫일뿐입니다.

훈련으로 단련된 포졸들은 눈앞에 있는 동이를 번번이 놓치기만 합니다. 아무리 기를 쓰고 동이를 쫓아도 신출귀몰한 동이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추노> 대길이가 와도 동이는 잡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는 운명이니 말이지요. 감히 하찮은 인간이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동이의 운명은 그런 포졸 나부랭이에게 잡혀 끝나는 운명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장면을 위한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이병훈의 아집이 돋보였던 건 포졸들에 쫓기던 동이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풍등놀이를 하는 무리들 속에 안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잣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로 인해 쉽지 않은 추격전이겠지만 완벽하게 막혀 일보 전진도 하지 못하는 포졸들의 모습과 여유롭게 저잣거리에 앉아 풍등에 소원을 적는 동이에게서 그간의 긴박함은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풍등 놀이를 하며 소원을 비는 동이의 모습을 보며 감정이입보다는 "뭐냐!"라는 느낌이 앞서는 것은 철저하게 동이의 운명론에 놀아났기 때문이겠지요.

풍등을 올리는 멋진 장면은 <동이>가 진행된 4회 동안 가장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더욱 죽어간 이들에게 소원을 빌고 자신의 다짐을 굳건하게 하는 무척이나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방금 눈앞에서 포졸들에게 쫓기던 아이가 여유롭게 풍등을 날리는 모습은 그저 장면을 위한 장면으로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리고 절대 위기에 처할 일 없는 동이.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위기나 이를 극복하는 모습마저도 매번 언급하는 운명 속에 갇혀있는)을 하게 하는 이병훈 피디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보였던 사극 전문 연출자가 운명론에 사로잡힌 채 개연성도 부족한 과정들을 나열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단발 적으로 선보이는 형식은 시청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드니 말입니다.

아역 김유정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고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중요한 작품으로 올릴 수는 있겠지만 향후 진행되어질 <동이>의 실질적 주인공인 한효주에게는 독이 될 듯합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닌 역사의 틀 속에서 움직여야 하는 그들의 삶은 그저 운명 지워진 것 일 뿐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나 개인들의 감정들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허구일 뿐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저 운명론에 몰아넣은 채 극을 끌어갈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한정된 틀을 이야기하기 위해 운명론을 지속적으로 설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몰라서 이해 못하는 게 아니라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역사 속 사실을 재구성한 상상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사극 팬들에게는 허망함으로 다가오는 <동이>였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어질 궁궐 안 모습부터 이병훈 피디의 장기들이 잘 들어날 듯합니다. 이미 거미줄처럼 쳐버린 운명론에서 자유로운 인물들이 보여주는 재미와 변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되풀이되는 시스템의 문제가 <동이>를 바라보는 재미가 될 듯하지요.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사건을 바탕으로 천민과 양반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이조판서 오태석의 모습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공포 정치'를 통해 권력을 지속시키는 모습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동이>를 봐야할 이유도 다시 부활할 검계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정치꾼들의 모략들을 지켜보며 현재를 곱씹어 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권력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빼앗는 것'이라는 오윤의 말처럼 권력은 피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숙종과 남인, 서인들의 권력 암투 속에 정교하게 짜여 진 정치게임은 <동이>의 진정한 재미일 것입니다. 어설픈 도주전과 세뇌하듯 되풀이한 운명론과 달리 살아 움직이며 절대 바뀌지 않는 인간들의 습성인 권력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동이>는 어떻게 이야기할지 기대됩니다.

워낙 기대를 해서인지 실망만 한 초반 4회이지만 호랑이 굴이라 표현한 궁으로 들어선 동이의 활약은 다음 주부터가 시작입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