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사교육에 ‘가성비’를 따지기 시작했다. '못 먹어도 고'였던 부분에서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는 건, 결국 현재의 사교육이 인풋한 만큼 아웃풋의 효과를 내지 못하지 않나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지금의 사교육이 '남는 장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SBS 스페셜>이 지난 9월 10일에 이어 17일 방영한 ‘사교육 딜레마’의 문제의식이 바로 '사교육의 가성비'이다.

다큐의 배경은 '통장에서 용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공감을 얻는 요즘 시대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월평균 사교육비 25만 6000원. 하지만 이건 전체적인 평균 수치일 뿐이다. 우리나라 중산층 평균 소득을 450만 원으로 산정했을 때, 아이 한 명당 이보다 훨씬 많은 사교육비가 들어가고 있는 현실. 직장 생활을 30년 한다 했을 때 과중한 사교육비를 부담하고 나면 정작 ‘부부의 노후 자금은?’이란 적자 계산서가 나온다.

사교육 몰빵의 적자 계산서, 가성비는?

‘사교육 딜레마’

집안에서 자식 한 명이 잘되면 온 집안 식구가 그 덕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물론, 자식 농사를 잘 지으면 부모들이 '벤츠' 타는 것이 자명한 결과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교육 시킬 돈이 있으면 차라리 그 돈으로 '포크레인 두 대' 사서 하나는 자식에게 굴리게 하고, 또 한 대는 임대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서 낫다는 가성비 계산이 등장하는 시절, 부모들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실은 7~800명이 정원인 과학영재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 5학년 때부터 그 100배가 넘는 학생들이 각종 사교육 레이스를 질주하는 시절이다. 과학영재고뿐인가. 사교육의 메카 강남을 피라미드의 꼭짓점으로 하여, 온 나라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사교육의 정글에 내던지고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은 한껏 하고픈 것을 하고 뛰어놀며 창의력을 키워야 하는 시절에 '뛰어노는 법을 배우는 학원, 창의력을 키우는 학원'까지 전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왜 부모들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해 사교육에 매진하는 학부모들은 항변한다. 과학영재고는 가지 못할지라도 상위 1%의 교육이 아이에게 더 나은 선택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이 사회에서 보다 나은 기회를 잡기 위한 안전망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 모든 안정망과 기회를 위해 청소년 시절을 저당 잡힌 카이스트 출신 여행 작가는 '그러면 행복은요?’라고 반문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한 대안으로 다큐가 제시하고 있는 건, 사교육 없이 아이 양육에 성공한 '시크릿'의 공유이다.

사교육 없이도 잘 크는 시크릿?

‘사교육 딜레마’

첫 번째로 제시된 시크릿은 충남 아산의 예꽃재 마을이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노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부모들의 생활공동체 예꽃재 마을. 이곳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이집 저집 이 마당 저 마당을 뛰어놀며 놀고 또 논다. 초등 4학년 이제 공부에 신경 쓸 나이가 되었다는 이웃 학부모의 충고 대신, 비록 성적표는 미흡하다지만 아이 본인이 이해하고 있다면 됐다는, 심지어 굳이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학부모들의 공동체이다.

그 다음은 아빠가 주교육자로 나선 이상화 씨네 '몰빵 교육법'이다. 아내가 큰아이를 낳고 큰 병을 앓는 바람에 아이들 교육에 나서게 된 아빠는 그만의 방식으로 큰아이를 하나고등학교에 보내고, 작은 아이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 도서관을 아이의 놀이터로 삼고, 안 하는 듯하면서 영어, 컴퓨터, 수학 공부를 시키는 아빠의 모든 관심은 웬만한 사교육 이상의 효과를 낳는다.

마지막 주자는 현대판 맹모삼천지교이다. 유명학습지 대표 김준희 씨네 부부는 어려서부터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도록 교육해왔다. 이 부부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강남 8학군이 아니라 외딴 강화도 주택으로 집을 옮겨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했다.

‘사교육 딜레마’

2부의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아마도 이런 것일 듯하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줘라. 아이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책임감을 부여해라. 억지로 무언가를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공부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라. 아이들은 아낌없이 주는 만큼 자라는 나무와도 같다.

물론 거의 학대 수준에 이른 사교육 몰빵의 현실에서 이는 가장 기본적인 되새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프로그램을 본 학부모들이 그런 다큐의 취지에 공감할 수 있을까?

사교육 필요 없는 시스템 구축이 먼저다

다큐에서 보여지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방식을 바꾸면 대학에 잘 갈 수 있어요’로 비춰지지 않을까? 충남 예꽃재 마을에서 실컷 뛰어놀던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이르자, 스스로 대학을 가겠다, 학원을 가겠다며 나선다. 아버지와 함께 도서관을 가고 책을 읽던 아이는 4개 국어에 능통하며, 자사고 하나고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명학습지 대표의 네 아이들은 이른바 명문대도 부족하여, 의학전문대학원에 치의학과 대학원생이다.

이 다큐가 제시하고 있는 건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붐을 이루었던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닐까? 아니 그게 아니면, 돈 들여 남에게 시키는 사교육이 아닐 뿐이지, 아빠가 거의 컨설턴트 수준으로 1:1 마크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일 수도 있다.

이미 교육 시스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이 존재함에도, 왜 사교육 범람의 현실은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다큐가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사교육의 '가성비'가 문제되고 있는 현실, 다큐는 ‘이런 방식으로도 아이를 잘 교육시킬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보여지는 건 ‘이렇게 해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어요’이다. 그러니 오히려 그 방식이 시청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사교육'보다 버겁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교육 딜레마’

대도시에서 맞벌이 하며, 혹은 한부모 가정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남 예꽃재 마을의 이야기는 그림의 떡이다. 아이 교육을 위해 부모가 생이별을 하며 전적으로 교육에 매진하는 이상화 씨네 방식은 이미 우리나라에 비일비재한 기러기 가족의 또 다른 양상일 뿐이다. 유명 사교육업체 대표의 사교육 없이 성공적인 자녀 대학진입기는 말 그대로 '아이러니'다.

1부의 마지막에 나온, 평범하게 살아가는 학부모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사교육은 힘들어요, 공교육에서 다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유명 대학을 가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중요한 것이다. 경향신문 일본 학부모의 연재기 중 <박철현의 일기일회> 역시 공부하지 않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다.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방학 중에 참여해야 할 각종 행사가 많아서, 굳이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동네 센터가 있어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결국 결정적인 건 일본 사회가 업종과 상관없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인정해 주고 있다는 이른바 '신분상승의 욕구가 없는' 분위기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추석 연휴, 정부가 내세운 10일 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긴 연휴를 이용하여 해외여행도 가고 하는 사람들은 대기업이나, 그에 부합되는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기 전에, 중소기업 직원과 대기업 직원의 월급을 똑같이 해줘 보라. 비정규직 직원이라 해도 페이 걱정 없이 연휴기간 다 쉬고, 여행 다닐 수 있다면 굳이 왜 애써 아이들을 하루 종일 학원에 가두어 놓겠는가. 이런 기본적인 모색 없는 사교육 가성비 비교와 시크릿 제안은 결국 다른 버전의 사교육으로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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