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이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설경구, 김남일의 강렬한 연기와 원신연 감독의 절묘한 연출에 힘입은 바 크지만, 최근 <알쓸신잡>에서 그 존재감을 확인시킨 김영하 작가의 원작이라는 '뒷배'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김영하 작가는 원신연 감독의 연출과 애써 거리를 두고자 하지만, 이미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에 베스트셀러였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은 사람이라면 과연 이 작품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구현이 될지에 대한 궁금증이 극장으로 향하는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같은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장편소설) 문학동네

지극히 개인적인 구분이지만, 마치 80년대 운동권의 이야기를 90년대 2000년대의 한국 소설이 '후일담'의 형식으로 다루어 장르화 되었듯이, <살인자의 기억법>은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번져나갔던 '기억'에 관한 장르에 속할 듯싶다. 하지만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세월호 참사 한 해 전인 2013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치 선견지명이라도 하듯 소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기억'과 '존재'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펼쳐놓으며, 세월호 사건 이후 '망각'이란 사회적 정서에 대응하려 애썼던 일련의 흐름에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와 달리 소설은, 기억을 잃어가는 사이코패스 노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기억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가운데 서서히 드러나는 그의 실체를 '폭로'하고야 만다. 애쓰면 애쓸수록 헷갈리는 자신의 존재. 자신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인 건 알았지만, 결국 시간이 다한 모래시계처럼 그의 기억이 다한 곳에서 만난 존재는 참담하다. 원신연 감독이 영화에 그려낸, 딸을 살려내기 위해 애쓰는 최소한의 인간적 미덕을 지닌 아버지 따위는 없다. 그저 살인의 기회를 얻은 그때 이래로, 죽이고 또 죽여왔던 한 연쇄살인범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참담한 목도의 과정을, 김영하 작가는 영화 속 병수가 자신의 흐트러진 기억을 녹음기에 담는 그 장면부터 스크린 위에 펼쳐진 스릴러 영화처럼 구성하여 결론에 도달한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장편소설) 문학동네

일찍이 <주홍글씨(2004)>, <오빠가 돌아왔다(2010)> 등 김영하의 작품 다수가 영화화 된 이유는 한국에서 드문 전작 작가 중 한 사람이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는 점이 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김영하 작품의 영화화를 설명하는 건 부족하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각색으로 2005년 대종상 각색상 수상처럼, 김영하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어떤 소설보다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지는 영상적 서사에 공감하게 된다. 바로 '영화 같은 소설'로서의 김영하를 손꼽을 수 있다는 점이 된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176페이지, 장편소설이라기엔 짧은 분량이다. 내용 역시 기억과 존재에 대한 구구절절 서사 대신, 기억을 잃어가는 병수가 헤집고 다니는 기억의 편린들이 '이미지화'되어 그려진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나는 건, 그 어떤 합리화로도 해명할 길 없는 존재의 허무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그토록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그 '기억'의 존재가치를 김영하는 앞서 설파했다. 흐트러지고 흩어지는 기억의 편린을 잡아 결국 도달한 그 허무의 기록을 통해 묻는다. 당신은 기억할 만한 존재인가? 그것은 2013년 허황되고 허무했던 한국 사회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소설 같은 영화

그렇게 휘발되고 마는 허무한 존재의 이야기를 영화로 가져온 원신연 감독은, 그 포문을 주연 설경구의 대표작 <박하사탕>에 대한 오마주로 연다. <박하사탕>의 마지막 장면, 철교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던 그 설경구는 이제 기억을 잃은 노인이 되어 굴 앞에 서서 당혹스러워 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 당혹의 근원을 찾아 설경구, 영화 속 병수의 기억의 터널 속으로 들어선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김영하 작가가 원작과 영화의 거리감을 유지하고자 하듯, 기억의 편린 속을 헤매다 겨우 추스려 붙잡은 존재가 용서받지 못할 자라는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을 감독 원신연은 뒤집어 버린다. 결국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가 그려낸 서사의 구성은 빌려 왔으되, 원신연의 각색을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 한국적 정서에서 가장 익숙한 '아버지'의 역사가 된다.

역시나 사이코패스지만 이제 알츠하이머를 앓아 잃어가는 기억을 녹음기에 의존하여 붙들어 두려는 병수. 하지만 그에게는 소설과 다르게 딸(?) 은희와 그의 앞에 나타난 태주라는, 그와 같은 연쇄살인범이라 추정되는 인물이 있다. 소설은 그 모든 것을 병수에게 나타난 병증으로 휘발시켜 버리지만, 영화는 그들을 실존으로 끌어들이며 사이코패스 병수의 존재에 부피를 더한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그러기에 결국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이코패스 병수를 통해 또 한 편의 아버지의 고군분투기로 귀결된다. 또한 실존하지 않은 누나의 존재를 끌어들여 사이코패스란 그의 연쇄범죄 행각의 근원을 추적하고, 그 끝에서 핏빛 폭력으로 얼룩진 우리의 가족사를 끄집어 내어온다.

즉, 소설이 알츠하이머가 심해진 병수 앞에 나타난 자신과 같은 연쇄살인범과 딸 은희의 존재조차 그의 병적 기억의 산물로 만들며 사이코패스란 존재론을 허무하게 설파했다면, 영화는 그 존재론을 수용하되 사이코패스란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인간 병수의 생애를 덧칠한다. 그래서 오히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명징한 한 장면에 집중한 단편 같다면, 원신연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여전한 아버지의 활극이지만 그 서사는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장편소설과도 같이 다가온다. 특히 영화의 앞과 뒤편 오마주한 <박하사탕>의 장면들이 김영하가 소설 속에서 인용했던 숱한 '시간'에 대한 인용구처럼, 병수란 사람이 불가항력으로 맞닿은 시간에의 허무를 설명하며 영화의 문학적 색채를 더한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그 누군가에겐 원작이 말하는 바, 사이코패스조차 무기력한 기억과 시간이란 주제가 실존의 가족을 가진 병수를 통해 윤색되었다고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로, 작가가 드러낸 편린의 상념이 아버지 병수를 통해 '회한의 기억'들로 설득력 있게 구현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이 좋았던 것은 모처럼 어설프지 않은, 상투적이지 않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설경구라는 대체불가 배우의 호연, 그리고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던 김남길의 존재감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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