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장악 등 언론적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방송장악 10년 국정조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홍 대표의 국정조사 수용에 대해 친박계를 컨트롤해 당내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 12일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작성한 공영방송 관련 문건을 '방송장악 문건'이라고 주장하며,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 사무처에 제출했다. 자유한국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민주당은 국정조사 범위를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으로 넓히자고 맞받아쳤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KBS·MBC 등 공영방송 장악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이 민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왼쪽)와 류석춘 혁신위원장. (연합뉴스)

그런데 예상을 깨고 홍준표 대표는 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지난 13일 홍 대표는 "여당은 10년 전 것도 하자고 하는데 그렇게 하자"면서 "과거에도 조폭처럼 방송을 장악하려 했는지 국정조사를 해보자"고 밝혔다. 홍 대표의 제안 수락에 민주당은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히며 방송장악 10년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 사무처에 정식으로 제출했다. 홍 대표가 직접 국정조사를 약속한만큼 자유한국당은 이를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홍준표 대표의 의외의 제안 수락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제기된다. 13일 홍 대표의 발언 당시에만 해도 홍 대표가 즉흥적으로 발언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자유한국당에 긍정적인 요인이 없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홍 대표의 좌충우돌하는 성격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14일 연세대 사회학과 특강에서도 거듭 방송장악 10년 국정조사 의지를 드러내면서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홍 대표는 연세대 학생들 앞에서 "(민주당이) 우리가 국정조사 제의를 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까지 조사하자고 했다"면서 "그래서 같이 조사해보자고 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즉흥적 발언이 아니라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홍준표 대표가 '친박청산'을 위한 포석으로 방송장악 국정조사 카드를 활용하는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 13일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는 혁신안 인적청산 방안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 서청원, 최경환 의원의 자진탈당을 권유했다.

이러한 조치에 당시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재선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친박계 의원들이 홍준표 대표에게 집단 반발했다. 김태흠 최고위원과 이우현, 이장우 의원 등의 친박계 의원들은 홍 대표에게 "이 와중에 다 출당시키면 어쩌냐"면서 "대여투쟁으로 힘을 모아야 하는 시기에 이러면 안 된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친박계 의원들과 홍 대표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는 후문이다.

▲지난 13일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재선의원 연석회의에서 김태흠 최고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준표 대표, 정우택 원내대표, 김태흠 최고위원. (연합뉴스)

이처럼 당 혁신에 친박계가 걸림돌이 되자 홍준표 대표가 방송장악 국정조사를 이용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방송장악 국정조사를 할 경우 친박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두 정부의 방송장악 근거가 차고 넘치는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안심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가까운 시점의 박 전 대통령의 행각이 더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홍준표 대표가 최근 강경보수 이미지에 부담을 느끼면서 당 변화, 쇄신, 혁신 등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 최경환 의원 탈당권유와 시점이 맞물리면서 대외적으로 당내 이미지 개선, 대내적으로는 리더십 강화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방송장악 국정조사를 활용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친박에 대한 공세적 입장과 연동돼 있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엄경영 소장은 "최근 친박 청산과 관련해 반발 움직임도 있었는데, 홍준표 대표가 친박의 역공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즉흥적으로 활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멀리 있는데다, 박 전 대통령의 낙하산들은 모두 현직이다. 홍 대표가 그걸 감각적으로 끌어낸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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