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의미 있는 컨퍼런스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이용득, 박주민 의원실이 주최하고 유엔국제이주기구, 공익법센터 어필, 선원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등이 공동으로 주관한 <이주 어선원 인권 개선을 위한 컨퍼런스>에는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사각지대라고 불리는 어선원들의 문제를 몇 년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어선원들의 인권과 관련된 국내외 자료, 제도 개선을 위한 행정부·입법부 담당자들과의 끊임없는 대화, 한국 어선에서 일했던 7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과 송출·송입업체뿐만 아니라 직접 송출국을 방문하여 원양어선에서 일했던 이주 어선원까지 만난 노력의 결과가 <바다에 붙잡히다: 한국 어선에서 일하는 이주 어선원의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방안>이라는 자료집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번 기고글에서는 토론회에서 언급된 이주 어선원들이 겪는 다양한 인권침해의 사례와 문제점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한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 어선원 인권 개선을 위한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이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어선에서 일하게 된 것은 1991년으로, 노사합의를 거쳐 원양어선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이후 93년 산업연수제를 통해 연근해 어선에도 들어오게 된다. 현재는 20톤 미만의 연근해 어선은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들어오고 20톤 이상의 경우 기존의 산업연수제가 이름만 바뀐 외국인선원제를 통해서 들어오고 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지만 이주 어선원의 문제가 크게 주목받은 것은 2011년 6월에 사조오양 75호에 고용된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욕설과 폭행, 성추행과 임금체불 등을 견디지 못하고 어선을 탈출해 뉴질랜드당국에 보호를 요청하게 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어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발표하였고 해양수산부도 권고에 따라 개선대책을 내놓았지만 변화된 것이 거의 없다.

이주 어선원들은 한국에 들어오기 전, 본국의 모집과정에서부터 이미 상당히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다.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원의 경우 이탈을 막기 위한 고액의 보증금을 포함한 높은 송출비용을 내기 위해서 집문서 등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고용계약 역시 본인들이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체결되고 있었다. 계약이 되더라도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송출업체에서 일방적으로 여권을 압수하고 몇 달 동안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필리핀 이주 어선원 k는 송출회사와 한국원양어선을 타기로 송출계약을 했으나, 출국 당일에 배가 중국배로 바뀌었다고 통지를 받았다. k는 이미 다른 기회를 상실한 상태에서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송출업체의 갑작스런 계약 변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k가 일하게 된 중국배에 탄 다른 필리핀어선원 중에는 배를 타고나서야 자신이 탄 배가 한국어선이 아니라 중국어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 갑작스런 계약변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필리핀 이주노동자의 말

필리핀 마닐라의 이주어선원 송출업체가 거리에 내건 광고판. [IOM 한국대표부 제공] (연합뉴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지만 배를 탄 이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실제 조사팀이 인터뷰한 이주 어선원들은 대부분 하루 평균 18~20시간, 심지어 바쁠 때에는 22시간까지 일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2년 국가인권위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났다.

“하루에 20시간을 일하는데, 오후 3시부터 아침 5~6시까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아침 6시에는 정비 일을 합니다. 오전 11시나 되어야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하루에 19~20시간을 일합니다. 잠이 부족해서 피곤하기 때문에 하루에 인스턴트커피를 10잔을 마십니다. 팔다리가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이렇게 일하다가 장애를 입을까 걱정입니다.”
- 노동시간에 대해 20톤 이상 연근해언선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말

이렇게 장시간 일하면서도 이주 어선원들은 한국인 어선원에 비해 임금을 상당히 차별적으로 받고 있었다. 한국인 원양어선원의 최저임금은 선원법에 따라 해양수산부 장관의 고시로 규정되지만, 이주 어선원의 임금은 선원법과 상관없이 노사합의로 결정되어 상당히 낮게 책정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선원들의 경우 이른바 보합제라고 하여 고정급 외에도 성과에 따라 전체수익에서 비용을 제외한 금액을 일정한 비율로 나누어 받는데, 이주 어선원은 그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이주 어선원들에겐 낮은 임금과 차별적인 임금산정, 초과노동수당의 부재 말고도 열악한 생활시설과 질 나쁜 물과 음식으로 인한 고통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음식은 끔찍했습니다. 메뉴는 항상 쌀밥과 반찬 하나 그리고 김치였습니다. 반찬은 늘 생선이었고, 남은 음식을 다음 날 주기도 했는데, 그럴 경우 심지어 데워주지도 않았습니다.”
“20개월 동안 우리들은 남은 물고기 미끼를 음식으로 제공받았습니다.”
- 원양어선원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J씨와 베트남 이주노동자 L씨의 말

이주 어선원들에 대한 일상적인 욕설과 폭행, 차별이 겹쳐진 대표적인 사건이 서두에 언급한 사조오양 75호 사건이었는데,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폭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한국 선장에게 인사를 안 했다고 따귀를 맞았습니다. 일을 그르쳐도 따귀를 맞고 어떨 때는 발로 차이기도 합니다. 배를 타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선장에게 인사를 안 했다고 얼굴을 맞은 것입니다.”

“저는 물고기의 눈을 파는데 쓰이는 대나무로 만든 도구로 그것이 부러질 때까지 심하게 맞아, 삼일 내내 등을 대고 누워 있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기분이 나쁘고 고통스러워 자살을 하려고까지 했습니다.”
- 폭행에 관한 이주원양어선원들의 증언

한국 원양어선을 탔던 베트남 어선원들 사이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시

이밖에도 여권 등 개인서류의 압수, 사업장 변경의 제한, 열악한 의료체계, 안전교육에 대한 부재와 안전 불감증 등 이주 어선원들이 노출되어 있는 상황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보고서에서는 이주 어선원이 겪는 인권침해가 인신매매 또는 강제노동에 해당할 정도로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한 변호사와 활동가 외에도 해양수산부, 고용노동부, 법무부, 수협중앙회 등의 담당자들과, 이주 어선원 상담을 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주 어선원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방법들이 제시되었는데 지면 관계상 이 내용은 다음 기고글에서 정리하려고 한다.

육지에서는 사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주노동자들이 있고, 해양에서는 탈출도 하지 못하고 일상적인 욕설과 폭행에 시달리다가 사망에 이르는 이들이 있다. 이주노동자들 누구도 죽으러 한국에 온 것이 아니기에 현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개선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국회 앞에서 이주노동자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더 이상 이주노동자를 죽이지 말라,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쟁취하자’는 내용으로 무기한 1인시위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의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멈추기 위해서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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