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게으르게 뒤척거리다가 부스스 일어난다. 건너 방으로 간다. 형수가 하도 맛있다고 해서 가져온 청도 감 말랭이, 금요일 저녁 늦게 청량리 시립대 가는 길목에서 산 과자 봉투들이 먼지들과 뒤섞여 뒹굴고 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뭐부터 시작하지? 따르릉. 엄마다. 당신도 몸 안 좋으시면서 목감기 지독히 걸린 자식 걱정에 아침부터 전화질이다. “밥은 뭤나? 잘 챙겨 먹고...” 늘 그 질문에 또 그 대답이다. 엄마 말대로 하이타이 좀 많이 넣고 빨래를 돌린다. 그리고 어제 입던 옷들로 엉망인 소파에 철퍼덕 엉덩이를 걸친다. 텔레비전을 켠다. 구질구질한 나의 삼월 마지막 일요일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해바다 어딘가에 있을 40여명 청년들의 비참을 원격으로 목격해서였을까? 아침부터 속이 불편하다. 목이 막히고, 기가 차다. 머리가 잘 돌지 않는다.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겠지만, 그러기에 사건은 너무 가까이에서 어처구니없이 벌어졌다. 황당함이 너무 슬프다.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으나, 하여튼 이때는 타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시민적 시빌리테가 우선 필요한 것 아닌가? 아무 것도 아는 것 없으면서 떠들어대는 리포터들, 대변인들, 국회의원들, 관료들, 대통령의 언사에 심드렁해진 나는 괜한 우울증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게을러져야 했다.

▲ MBC '환상의 짝꿍' 진행자 김제동과 이화랑 ⓒ MBC 홈페이지
그래서 늦게 깨어난 나는 운 좋게 TV에서 그 놈을 만났다. MBC <환상의 짝꿍>에서 말이다. 일요일 아침을 여는 세상의 문이다. 희희낙락 공휴일을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의 favorite. 거기서 그 녀석과 만났다. 부모가 비행기 조종사라는 좀 되바라져 보이는 사내애가 아니고, 그 녀석이 여자 친구로 찍은 깜찍한 계집도 아니다. 대체 말이 없는 놈이다. 잘 웃지도 않는다. 귀염상이라곤 전혀 없고, 뭐가 기분 나쁜지 시큰둥한 태도다. 분위기를 망치는 녀석이다. 대체 왜 저런 녀석을 섭외했고, 이 녀석은 왜 출연하겠다고 했는지 의아할 정도의 인물. 당신들도 기억하시겠는가? ‘화랑’이었던가? 이름은 뭐라도 좋다.

바로 그 빡빡 머리 녀석이 이 비극의 시절, 이 비참의 시간에 나를 웃겼다. 다른 부모들과는 달리 카메라에 거의 잡히지 않는 아빠와 엄마를 둔 그 녀석이 나를 울렸다. 도통 웃음기 없는 그 녀석에게 사회자 김제동이 물었다. 왜 웃지 않느냐고. 그 쪼끄만 녀석이 답한다. ‘웃을 일이 없으니까요.’ 악!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놈아, 네처럼 어린놈이 무슨 세상을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니? 세상이 얼마나 힘들고 또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들다고 웃음을 잃어버렸다는 말이냐? 대체 네게서조차 웃는 법을 빼앗아 가 버린 게 누구냐? 튼실한 종아리의 노동하는 아비를 둔 네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김제동이 다시 묻는다. 화랑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화랑이가 답했다. ‘대통령’. 요즘의 영악한 아이들이 결코 말하지 않을 답이다. 어떤 대통령? 화랑이는 또박또박 대답한다. ‘우리나라.’ 하하하. 킥킥킥. 키들키들. 화랑아, 웃기지마. 너 왜 은근히 웃기냐? 이 놈아, 그렇게 답하면 안 돼. 그렇게 답하는 게 아니지. 최소한 ‘나라를 잘 다스리는 마음씨 착한 대통령’이라고 해야지. 좀 더 그럴 듯 한 말들이 얼마나 많니?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겠다고? 우리는 인내심을 발휘한다. 그래서 재차 묻는다. 그럼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거니? 녀석은 다시 또박또박 대답했다.

내 머리에 콱 박혀버린, 내 가슴에 못질을 하다시피 한, 기어코 내 눈에서 눈물을 빼게 한 놈의 말을 지금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대충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집이 크다고 자랑하지 않고 집이 적다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어서요.’ 몇 자 틀려 무슨 상관있으랴? 아, 화랑아. 이 놈의 착하디착한 아애야. 자랑스럽고 착하신 우리의 미래 대통령아. 너는 지금 당장 나의 대통령이시다. 나는 너를 ‘우리나라’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모시겠다. 이제야 나는 네가 왜 잘 못 웃는지를 알겠다. 무엇이 너로 하여금 제대로 웃지 못하게 하는지 알 수 있겠다.

정신 번쩍 들게 만든다. 게으른 나, 나태한 나에게 너는 결정적인 한방을 먹였다. 그래서 서둘러 집을 나가게 했고, 거리를 쏘다니게 했으며, 몇 권의 책 사들고는 이렇게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했다. 반성의 글 몇 줄 쓰지 않고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도록 날 채찍질한다. ‘동심’이 얼마나 정직한 언어이며, ‘어린이의 순수함’이 얼마나 투명한 거울인지를 나름대로 정리해둬야 했다. 그런 공감적 표현의 채널, 감동적 발언의 프로그램이 왜 가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지적해 둬야겠다. 네가 출연하고, 너희들이 출현하는 <환상의 짝꿍>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재미, 큰 즐거움, 큰 감동을 주고 있는지. 왜 너희들을 무조건 사랑해야 하는지.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하나? 글을 쓰려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깜짝 놀랄 소식을 접하게 된다. <환상의 짝꿍>이 봄 개편을 맞아 곧 폐지된다는 소식이다. 오 마이 갓!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김제동이 지상파 TV에서 유일하게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라 네티즌의 말들이 많다. 제작진은 물론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폐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이건 아니다. 김제동 때문이 아니라 해도, 나는 당신들의 결정에 결코 승복할 수 없다. 내게서 그런 멋진 대통령과 만날 기회를 빼앗지 마라. 평범한 사람, 평범한 시선과 계속 접하고 싶다. 얘들의 시시콜콜한, 하찮은 듯한 이야기가 더 좋다. 번지르르한 당신들의 말보다.

계몽은 당신들만의 잡소리, 당신들을 위한 잡소리로 가득 찬 9시 뉴스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성은 괜히 잰 채 하는 학자, 박사, 전문가들끼리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오지 않는다. 반성과 통찰이 오히려 <개그 콘서트>를 통해 가능하고, 세상과의 감동적 교제는 차라리 <생활을 달인>에서 트인다. ‘빵꾸똥꾸’라는 당신들이 불편해 하는 욕설의 시트콤에서 우리는 구린 권력을 향한 통쾌한 배설을 공동 경험한다. 그게 바로 당신들이 깔보는 웃음의 위력이고, 당신들이 경멸하는 즐거움의 역능이며, 그러면서도 사실은 두려워하는 예리한 풍자와 인간적 해학의 포스다. 평범함과 일상성의 힘이다.

제발 <환상의 짝꿍>을 그냥 두시라. 얘들과 잘 통하는 김제동도 잘 하는 사회자 역할을 계속 맡게 하시라. 그래서 내가 또 다른 환상의 짝꿍을 만날 기회를 빼앗지 마시라. 당신들에게 환상의 짝꿍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화랑이 그런 놈이 환상의 짝꿍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통령에게서 가르침 한 수 얻을 수 있는 그런 영광을 당신들 멋대로 없앤다면, 어느 일요일 아침 허탈하게 텔레비전을 켠 나의 불만은 과연 어디로 튈까? 괜히 엉뚱한 짓해 욕보기 싫으면, 착한 아이들의 출현과 못난 어른들의 반성 시간을 없애지 말 것이다. 젊은이들을 잃은 날의 괜한 감상으로 읽는다면 그건 당신들의 치명적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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