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개혁이 화두다. 지난 9년 동안 방송에 정권이 개입하면서 공영방송들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결과 2009년, 미디어법이 통과되면서 등장한 종편들보다도 못한 평가를 받았던 것이 현실이다. 2012년 이후 5년 만에 KBS와 MBC 소속 언론노동조합원들은 이번 달 초부터 공동파업에 돌입한 상태이며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언론개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총파업을 계기로 문재인 정권이 언론장악에 나선다는 비판을 하고 있지만, 아직 어떤 정책을 수립할 것인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에 쉽사리 결론짓는 것은 시기상조다. 현재까지 흑막에 가려진 언론개혁 방안이지만 그 기조는 작년 말 민주당을 중심으로 추진했던 방송법 개정, 즉 언론장악방지법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사 최고의결기구인 이사의 수를 13인(여당추천 7인, 야당추천 6인) 증원하고, 특별다수제(재적 2/3)로 사장을 선임토록 하여 그 동안 대통령이 중심이었던 구조에 변화를 주겠다는 취지로 추진되었었다. 여기에 이사추천인사를 방송에 대한 전문성과 지역성, 사회의 각 분야 대표성을 고려하여 선임함으로서 사회목소리를 담겠다는 의지도 반영되었다고 개정안을 추진했던 의원들이 밝힌바 있다. 그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13명이 사회 각층을 대표할 수 있는냐고 말이다.

2016년 12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야당 의원들이 '언론장악방지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디어스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hr-방송위원회’

독일 공영방송사들의 운영은 조직구성의 특성으로 시민사회단체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독일의 공영방송사는 전국송출채널을 운영하는 ARD와 ZDF, ARD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공영방송사 9개, 전국송출공영라디오방송 Deutschland Radido 등이 있다(이 외에도 여러 채널과 담당기관이 있지만 운영성격이 조금씩 다르고 ARD와 ZDF의 협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모든 공영방송사는 ‘방송과 텔레미디어에 관한 주간협약’(Rundfunkstaatsvertrag)에 따라 내부조직으로 대표이사(Intendant)와 행정위원회(Verwaltungsrat), 방송위원회(또는 텔레비전위원회, Runfunkrat/Fernsehrat)가 설치되며, 기관들의 협력으로 방송운영방안을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공영방송국의 사장격인 대표이사는 방송사의 중/장기전략 수립, 예산운영 안을 작성하여 행정위원회에 제출하고, 행정위원회는 대표이사가 제출한 예산운영 안을 검토하며, 방송위원회(또는 텔레비전위원회)는 행정위원회의 검토가 이뤄진 예산운영 안에 대해 심의 및 의결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듯이 공영방송운영에 대한 결정권한은 방송위원회(또는 텔레비전위원회)가 갖고 있다. 이 위원회는 행정위원회에서 추천한 사장후보에 대한 선임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반대로 행정위원회의 제안 또는 독자권한으로 사장에 대한 해임도 결정 가능하다. 그렇다면 방송위원회(또는 텔레비전위원회)의 인원구성은 어떻게 이뤄질까?

1948년 독일 헤센 주(Hessen)에서 개국한 ‘hr’(hessische rundfunk)는 지역공영방송사로서, 텔레비전채널과 지역라디오채널, 제1전국송출공영채널 das Erste, 어린이공영지상파채널 KiKa 등에 참여하고 있다. ‘hr’의 내부조직인 ‘hr-방송위원회’와 ‘hr-행정위원회’는 ‘1948년 10월의 hr법’(Gesetz über den Hessischen Rundfunk vom 2. Oktober 1948: 이하 ‘hr법’)의 ‘제3장조직’(Ⅲ. Organisation)’에 §4에 명시된 규정에 따라 조직을 구성한다. 해당 내용들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hr-방송위원회’ 위원과 ‘hr-행정위원회’ 위원 두 직분의 병행 금지하며 ② 이해충돌((Interessenkollision)을 방지하고자 두 위원회의 구성원은 경제적 이익이나 기타이익추구 활동이 금지되며 ③ 위원들은 어떤 형태로도 hr과 법적으로 보장되는 거래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비영리단체 포함). 또한 ④ 정치적 관계에 속한 인사, 선거관리공무원, 정당인, hr직원, hr과 관계된 회사의 직원, 상업방송사의 직원 및 관계자, 주 미디어청(Landesmedienanstalt) 직원 등의 직분이 있을 경우 ‘hr-방송위원회’나 ‘hr-행정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지 못하며 ⑤ 만약 이런 경력을 갖고 있는 인사가 위원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해당 직책에서 물러난 후 18개월 이상 지나야만 한다. ‘hr’의 주요조직인 방송위원회와 행정위원회가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조항으로 ⑥ 주 정부나 연방정부 출신의 인사는 전체 운영조직원 1/3을 초과해선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hr’ 내부조직 중 가장 큰 결정권한을 가진 단체는 여타 공영방송과 마찬가지로 ‘hr-방송위원회’다. ‘hr-방송위원회’는 1948년 10월 2일에 합의된 ‘hr법’에 따라 조직운영기반이 만들어졌고, 1949년 7월 2일부터 현재의 권한과 유사한 수준의 고유권한과 의무를 부여받음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hr-방송위원회’는 ‘hr법’ §9에 따라 ① 대표이사선출(5~9년 임기로 선출, 다수결원칙) ② 채널운영에 대한 조언 ③ 연간예산 승인 ④ 대표이사 및 행정위원회 위원 해임 ⑤ 시청자 불만 처리 등을 결정 및 처리한다. 2017년 9월 현재 적용되는 ‘hr법’(2016년 개정)에 따르면 ‘hr-방송위원회’는 어떤 정당이나 교파, 특정단체를 대표하기 위한 직책이 아니라 대중과 시청자를 대표하는 자리다. 그렇기 때문에 위원회의 위원들은 어떤 명령이나 외압 등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며, 이들의 활동은 헌법에 명시된 의견자유와 언론자유, 방송의 자유 등을 존중하고 기본가치를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책무다.

‘hr-방송위원회’는 헤센 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32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32명 중 5명은 주 의회의 비례원칙에 따라 파견된 인사들이며, 1명은 주 정부에서 임명한다. 그 외 26개의 의석은 종교계(유대교, 개신교, 가톨릭, 이슬람교 등), 교육(어린이/청소년협회, 전문학교협회, 학부모협회, 교사협회 등), 전문분야(음악, 산업협회 등) 및 소수자(여성협회, 외국인대표 등)로 구성된다.

만약 주 의회 비례원칙으로 파견되는 5인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엔 그 자리를 공석으로 처리하여 충원하지 않으며, 성 평등 원칙에 따라 각각의 단체들은 방송위원회 위원을 선출하고자 할 때 남성과 여성을 교차해야만 한다. 한편, ‘hr-행정위원회’는 ‘hr-방송위원회’에서 선출하는 7인, hr직원들이 선출하는 2인 등 9명으로 조직되며, 역시 주 정부와 연방정부의 인사는 전체의 1/3을 초과해선 안 된다.

2016년 12월 21일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방지법 즉각 제정과 언론장악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전국언론노조 김환균 위원장.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공영방송 운영에서 왜 시민사회를 배제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독일 공영방송, 특히 방송위원회(또는 텔레비전위원회)를 소개할 때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체는 제2공영방송사 ZDF의 ‘ZDF-텔레비전위원회’(ZDF-Fernsehrat)다. ‘ZDF-텔레비전위원회’가 독일 사례를 대표하게 된 이유는 공영방송사 중 가장 많은 6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단체이자 전국송출공영방송사라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본고에서 대표성을 띤 ZDF의 조직을 소개하지 않고 지역공영방송사인 ‘hr’을 다룬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독일 내 운영되는 모든 공영방송사들은 제1공영방송 ARD를 제외하고 방송위원회나 행정위원회, 대표이사 등을 선출하는 방식과 위원구성방식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어떤 공영방송사를 사례로 살펴본다고 해서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ARD의 조직이 다르다고 언급한 이유는 연합으로 조직된 단체이기 때문에 내부조직의 명칭이나 구성방식에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시민사회참여가 배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방송위원회(또는 텔레비전위원회)와 유사한 역할을 담당하는 ‘ARD-채널고문위원회’(Programmbeirat)으로 불리는 내부조직은 100% 시민사회단체 인사로 구성될 수도 있는 단체다. 독일 공영방송운영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hr-방송위원회’처럼 정치권보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주도아래 중요사안들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8월 25일, 9월 7일 민주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간사 신경민 의원은 ‘이번 언론개혁이 영국의 BBC나 독일의 ARD 같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다’(링크)고 언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ARD는 ‘독일연방공영방송연합’로 지역공영방송사 9개가 일부프로그램과 사업은 공동으로 진행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각 지역공영방송사들에게 배정된 할당에 따라 운영하는 단체다. 이런 점에서 ARD의 조직은 다른 공영방송사와는 달리 채널관리자(또는 채널이사, Programmdorektor), 채널고문위원회(Programmbeirat) 등 두 개의 내부기관이 설치되어 있다.

위원구성에서도 9개의 지역공영방송사들의 방송위원회(또는 텔레비전위원회)에서 파견한 인사 1인씩을 선출하여 운영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ARD 방식의 공영방송체제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각 지방마다 설치되어 있는 지역 KBS총국이 방송위원회(또는 텔레비전위원회)를 구성한 상태여야 하고, 중앙에서 방송을 제작하여 충당하는 방식과 동시에 지역방송국들의 프로그램을 납품받도록 운영해야만 채널관리자의 역할이 정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신경민 의원이 언급한 것은 ARD가 아니라 ZDF가 되어야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공영방송’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지 않다. 이는 필자 개인의 의견이기도 하고 언론학계에서 그동안 지적해왔던 내용이기도 하다(링크). 현행 방송관련 법에 따르면 공영방송사로 불리는 ‘한국방송공사’는 방송법 제43조에 의거하여 설치된 ‘국가기간(基幹)방송’, 즉 ‘국가가 근본 또는 중심이 된 방송단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정의하기 힘든 가치이자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공공성’과 ‘공익’이라는 단어가 방송법에 자주 등장한다.

운영에서도 시민들이 참여하기보단 정치권과 전문가집단에 의존하는 경향도 크다. 이런 경향성은 작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방송법 개정안에서도 비록 ‘사회 각 분야 대표성을 가진 인사’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만, 과연 어느 정도나 할당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개혁 전이나 개혁 후나 시민사회단체가 공영방송운영에 참여할 기회는 극히 적거나 거의 없다.

공영방송의 주요역할을 결정하는 이사진을 다양하게 구성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13명이라는 제한된 인원, 그것도 정치권에서 추천하는 인사들이 그 대상이라면 언론개혁은 어렵다. 독일에선 지역공영방송사인 ‘hr-방송위원회’ 조차도 32명의 위원이 활동하고 있고,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된 ‘ZDF-텔레비전위원회’는 60명의 위원이 활동한다.

독일과 우리나라를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왜 우리나라에선 공영방송운영에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독려하고 보장하지 못할까. 공영방송을 아직까지 국가중심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국민이 그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이번 정권에서 진정으로 공영방송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시민사회가 직접 참여할 통로를 만들고 이를 보장해야하므로 인원수를 더 늘리고 사회각계각층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보수나 진보, 중도 등의 성향을 가리지 말고, 남녀노소를 대변하는 단체들의 인사들도 공영방송 운영에 참여하게 된다면 지금보단 더 긍정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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