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이명박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의 MBC 내부 작동 과정을 당시 PD들의 증언을 통해 폭로했다. 각 부문 PD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사실이 이번 국정원 블랙리스트로 확인된 것 같다"며 "정확하게 작동했다"고 입을 모았다.
MBC본부는 14일 '국정원의 MBC 장악'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피해를 입은 각 부문 PD들의 증언을 모아 블랙리스트 작동 과정을 설명했다. PD들의 증언에 따르면 MBC경영진은 시사교양·라디오·예능·드라마 등 전방위에 걸쳐 블랙리스트를 작동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촛불 등의 단어를 금기어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정치풍자를 금지하는 등 내용개입도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 개그맨 김제동씨와 함께 캠핑컨셉의 파일럿 프로그램 <오마이텐트>를 연출한 조준목 시사교양PD는 높은 첫방시청률을 기록하고도 정규방송을 할 수 없었다. MBC는 '프로그램 제목이 오마이뉴스를 연상시킨다'와 같은 이유로 <오마이텐트> 정규편성을 미뤘다. 조 PD는 "2010년 전까지 김제동이 MC라서 문제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며 "백종문이 편성국장이 되고 안광한이 편성본부장이 되면서 MC와 제목을 바꾸고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다"고 전했다.
MBC의 대표간판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는 '창조경제'를 아이템으로 써달라는 청와대의 지속적인 압력이 들어왔다. 최행호 예능본부PD는 "<무한도전> 담당 국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MBC경영진을 통해 <무한도전>에서 창조경제 관련내용을 다뤄달라고 요구한 사실을 털어놨다"고 전했다. 최 PD는 "담당PD인 김태호 PD가 적절치 않다며 거절했으나 (청와대가) 1년여에 걸쳐 창조경제 아이템을 종용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본부에서도 블랙리스트에 따른 배우 배제와 PD압박이 있었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인 김민식PD의 경우 본부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없었다. 박원국 드라마PD는 "김민식PD의 경우 박혜련 작가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기획했지만 MBC에서 편성이 불발됐고, 윤태호 작가와 '미생'의 드라마화를 논의해 판권확보를 MBC에 요청했으나 진행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박 PD는 "김민식PD는 2015년 방송 준비 중이던 일일드라마에서도 하차통보를 받았다"며 "노조 집행부였던 김민식이 뉴스데스크 앞에 방송되는 일일극 연출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임원회의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문성근·김여진·이하늬 등 블랙리스트에 오른 배우들은 잇따라 출연이 배제됐다. 박원국 PD는 "배우 캐스팅은 드라마PD 고유권한"이라며 "몇 년 사이 이 원칙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박 PD는 "배우캐스팅에서 제작진과 배우 모두 자기검열이 스스로 작동됐다"고 설명했다. 배우 문성근씨의 경우 MBC에서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스케줄은 괜찮지만 MBC가 나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으니 확인해 보라"고 답했고, 배우 김여진씨는 "어차피 안 될 거 그냥 하지 말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PD는 "김여진 씨의 경우 이미 MBC의 다른 프로그램에서 사측의 반대로 출연이 무산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세월호·촛불 등을 금기어로 지정해 검열한 사례도 있었다. 단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물론 세월호를 유추할 수 있는 장면들에 대해서도 검열이 있었다. 박 PD는 "2015년 드라마 '앵그리맘'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대형 재난묘사 내용이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한 수위를 낮추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단막극 '퐁당퐁당 러브'에서 세월호 사건을 추모한 씬에 대한 대본검열도 있었다. 방송하려면 그 씬을 빼라고 한 윗선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김연국 MBC본부장은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김 본부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물론이고 MBC 내부부역 행위자들에 대해서도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시는 청와대가 국가기관을 이용해 방송을 장악하려는 역사가 되풀이되서는 안 된다"며 "국정원이 반드시 이 문서를 공개하고 검찰은 철저하게 수사해 관련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