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밤이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시작부터 말 많고 탈도 많았던 헌터스의 미련을 모두 접고 새 코너 뜨거운 형제들(아래 뜨형)을 선보였다. 표면적으로는 공익의 후퇴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시청자의 뜻에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겠다는 항복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출발 후 급속도로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패떴2에 대한 공격적인 포진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물론 뜨형이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진단한대로 신선한 포맷은 아니다. 예전 코너였던 대망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뜨형에는 대망뿐 아니라 많은 벤치마킹의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한편으로 보면 복고적 구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일밤의 세 코너 중 하나지만 공익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중요한 각오로 인해 뜨형이 당장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다.

탁재훈, 박명수, 김구라 등 노장 3인방과 한상진, 박휘순, 노유민, 사무엘디, 이기광 등 후배들로 구성된 뜨형에 대해서 우려됐던 점은 노장 3인방이었다. 이미 일밤을 말아먹은 전과가 있는 탁재훈, 김구라라는 낡은 카드에 에코하우스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박명수의 조합이 과연 침몰하는 일밤을 구조할 수 있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얼굴들이 있지만 웃음의 핵심이 당장 되어줄 거라 기대하기 어려운 예능신인들이기에 그 의심은 일밤 팬들의 오금을 저리게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뚜껑을 연 뜨형의 반응은 일단 안착의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재활용카드인 탁재훈과 박명수의 호흡이 의외로 잘 맞는 요소가 있고, 의욕 넘치는 예능신인들이 다소 산만함도 주지만 식상할 정도로 우려먹은 일반인 여성과의 미팅이라는 소재를 아바타라는 형식에 녹여서 이것 역시 재활용의 좋은 예가 될 듯싶다. 최근 출범하는 예능들이 지나친 아이돌에 의존하는 안일함 대신에 탤런트 한상진의 기용도 기대가 되는 캐스팅이다.

탁재훈의 성공(?)적인 귀환

28일 일밤은 탁재훈의 귀환으로 볼 수 있다. 뜨형이 신고식으로 택한 한강 릴레이 도하처럼 나름 비장한 각오로 시작한 뜨형의 낡지만 절실한 카드 탁재훈과 김구라의 역할은 웃음의 핵이 되거나 아니면 도루묵이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유치한 말장난의 원조 탁재훈의 말빨이 박명수와 잘 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들이 가진 예능의 경력으로 보아 한번 잡은 콘셉트를 쉽게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필리핀 촬영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비행기에 올라야 했던 단비 아이티 특집은 엠씨들 스케줄 때문에 한가(?)한 탁재훈을 게스트 겸 엠씨로 가담시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번 단비천사 신현준과의 조합을 위한 것이었고, 중요한 진짜 천사로는 김지수가 참가해 역대 참가자 중 최강의 조합이었다. 앞서 뜨형에서와 마찬가지로 탁재훈은 일밤을 말아먹기 전의 쾌활함을 다시 보였다. 친구의 덕이 큰 탓인지 모를 일이다.

두 번째 일밤의 구조조정에서 탁재훈의 역할은 누구보다 중요하다. 원래 단비 - 우리아버지 - 에코하우스의 순서를 깨고 뜨형을 앞으로 포진했다. 일단 공익의 부담 없이 재미로 시청자를 비티 앞에 앉히고 그 다음에 단비 등 공익의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게 뜨형 뒤에 이어진 단비의 아이티 특집은 김지수, 신현준 그리고 슈퍼주니어 동해가 기존 단비팀 대신에 참가했다.

이번 아이티 특집의 특징은 제작진이 시청자 의견을 받아 간 것으로 급박한 일정 때문에 기존 엠씨들 없이 인구 천 만의 아이티 수도의 30%가 지진으로 집을 잃고 겨우 햇빛만 피할 정도로 열악한 거주환경의 마을에 100개의 안락한 텐트를 제공하는 미션을 수행했다. 아이티의 참상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익히 알고 있는데, 한 주로 짧게 끝낸 아이티 특집은 바쁜 일정 때문인지 다짜고짜 미션수행에 집중했다. 김지수와 동해는 일만 했다면 신현준, 탁재훈 절친은 재미를 주었다.

패떳2를 저격한 일밤

일밤이 전격적으로 감행한 포맷 변경과 함께 흥미로운 수 싸움에 추락하는 패떴2을 저격할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당연한 결과다. 뜨형이 잘된다 하더라도 예능의 최강자 1박2일과 맞붙어서는 도무지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1박2일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패떴2와 경쟁시키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다.

이런 일밤의 변화는 분명 쌀집아저씨가 고집해온 공익의 일부 후퇴이며 현실을 인정한다는 항복의 의사표시이다.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씁쓸함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즐겁고 보람찬 것보다는 당장 웃을 수 있는 강한 자극이 필요하게 된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그나마 뜨형이 선전하게 된다면 일밤 공익의 상징 단비는 좀 더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위안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뜨형을 통한 일밤의 변신은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와 재미 둘 다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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