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BBK 사건' 공방은 치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1분 30초, 2분 답변의 한계와 문제점은 고스란히 되풀이 됐다. 긴장감은 떨어졌고 정책 대결과 비교 검증은 역부족이었다.

6일 밤 8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첫 대선후보 TV합동토론은 정치 외교 통일 안보 분야를 주제로 문국현 창조한국당, 권영길 민주노동당, 이회창 무소속, 이명박 한나라당,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이인제 민주당 후보 순으로 토론이 시작됐다. 자리 배치와 발언 순서는 사전 추첨에 의해 정해졌다.

이날 TV토론에서는 정치 외교 통일 안보 분야와 관련해 모두 4개의 주제와 질문으로 토론을 벌였다.

▲ 12월 6일 열린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
우선 후보 6명의 기조연설이 끝난 뒤 사회자가 '동북공정'에 대한 입장(외교 분야)과 '권력구조 개편과 헌법 개정'(정치분야) 문제를 질문했고 이에 대해 각 후보마다 1분 30초씩 답변했다.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UCC 동영상 질문'에 채택된 '우리 국민의 피랍사태에 대한 대처방안' 역시 마찬가지로 후보마다 1분30초씩 답변 기회가 주어졌다.

나머지 주제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정책'은 상호토론 방식을 도입, 1시간 25분에 가까운 토론을 벌이면서 전체 TV토론의 70%를 차지했다. 토론 방식은 후보 1명의 모두발언 1분30초와 이에 대한 나머지 5명의 반론 1분씩, 그리고 모두발언을 한 후보의 답변 2분으로 구성됐다. 후보 1명의 발제와 5명의 반론으로 짜여진 이같은 8분 30초는 돌아가면서 6차례 동일 방식으로 진행됐다.

발언 회수로만 따져보면 북핵 문제에 대한 상호토론을 위해 모두발언 6회, 1분 반론 30회, 재반론 6회 등 모두 42번을 주고 받은 셈이다. 그러나 42차례의 발언 순서과 시간은 공정성과 형평성 차원에서 묶여 있었고 따라서 후보간 정책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며 치열한 토론을 주고 받는 긴장감 대신 다소 산만하고 지루한 상황이 연출됐다. 기계적으로 순서가 돌아가다보니 '후보 대 후보'의 정책 대결 구도는 형성되지 않았고 후보당 발언 회수가 7번에 달하는 동안 발언 내용이 겹치거나 반복되면서 효율성도 떨어졌다.

6명의 후보가 정해진 순서대로 발언을 하다보니 특정 후보의 지적과 반론에 즉각적인 답변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상호토론의 취지에 걸맞게 반론-재반론 상대를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었다면 입장이 다른 정책이나 공약에 대한 상호 비판이 바로바로 이어져 후보자간 차별성 부각과 비교 검증이 더 효과적이었겠지만 이번 TV토론 역시 '기계적 공정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후보별 발언 시간도 2분 이하로 한정돼 있어 차라리 발언 횟수를 줄이고 시간을 늘렸더라면 대북정책과 관련한 후보자의 입장과 정책이 유권자들에게 좀 더 명확하게 전달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란 아쉬움도 남는다.

▲ 왼쪽부터 민주당 이인제,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이날 TV토론은 핵심주제가 대북정책이었던 만큼 '이명박 이회창 후보' 대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의 보수 대 진보 구도가 형성됐다.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자신이 보수의 적자라는 것을 강조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정동영 후보는 대북정책 모두발언과 반론 시간을 중간중간 할애해 'BBK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불공정성과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지적하며 공세를 취했으나 나머지 후보들은 거의 타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공격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BBK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후보는 "어제(5일) 검찰조사로 모든 게 밝혀졌다. 국민께 심려끼쳐 송구하고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으나 정동영 후보는 "탈세, 위장, 각종 거짓말 등 의혹 있는 후보와 토론하는 것이 창피하다"고 응수했다. 검찰에 대한 공방도 이어졌는데 정 후보가 "노무현 정부 들어 검찰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냈더니 이명박 후보의 품에 안겼다"며 강한 어조로 공격하자 이 후보는 "북조선 검찰이 하면 믿을 것인가. 검찰이 제대로 했을 것이다. 믿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2시간 동안 이어진 TV토론에서 후보자들은 표정과 시선, 손동작 등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정동영 후보는 방송기자 출신 답게 정면을 응시하며 시종일관 시청자들과 눈을 마주쳤고 부드러운 표정과 미소 대신 손동작은 잘 쓰지 않았다. 권영길 후보는 친근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보여주면서도 발언할 때마다 손동작을 가장 많이 썼다. 문국현 후보의 경우는 특별한 표정변화 없이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 왼쪽부터 무소속 이회창,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반면 이회창 이인제 이명박 후보는 특유의 딱딱하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대조를 이뤘다. 이인제 후보는 정면을 향해 시청자들과 눈을 맞췄지만 이회창 이명박 후보는 시선이 살짝 아래쪽을 향해 시청자들과 똑바로 눈이 마주치진 못했다. 특히 다른 후보들이 자세를 꼿꼿이 하고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는 자세를 주로 취한 것에 비해 이명박 후보는 종종 몸을 뒤로 하고 한쪽 팔을 팔걸이에 올리는 자세를 취해 과거 기업 CEO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번 첫 TV합동토론 시청률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KBS 1TV 15.2%, MBC 8.8%, 합계 24.0%로 나타났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는 KBS 1TV 18.4%, MBC 8.6%, 합계 27.0%) 두 채널의 동시간대 4주 평균 가구 시청률의 합계 32.0% 보다 8.0% 낮고, 5년 전인 2002년 12월 3일 '대통령 후보 초청 합동 토론회'의 시청률 합계 35.8% 보다도 떨어진 수치다.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고 KBS와 MBC가 생중계하는 대선 후보자 합동토론은 앞으로 11일 사회·교육·문화·여성 분야, 16일 경제·노동·복지·과학 분야를 주제로 토론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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