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MB아바타입니까?”

안철수 후보로서는 19대 대통령 선거를 망친 한 마디였다. 당시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려던 의도였겠지만 사실은 자멸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말 한 마디의 무게는 컸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후보의 결정적 패착이 되었고,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이후 정치생활에 치명적 결격사유로 작동할 흑역사를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11일 국회에서는 부끄러운 역사가 한 줄 기록되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장 동의안 부결은 정부와 여당에 부담을, 국민의당에게는 호남홀대론의 부메랑이 될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안철수 대표의 엉뚱한 발언이 또 나와 파문을 일으켰다. 안철수 대표는 국회 부결 이후 기자들에게 “국민의당이 지금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고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국회 부결로 국민의당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모습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1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귀를 의심했을 발언이었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의 이탈로 부결이 됐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은 틀리지 않았더라도,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호남 출신으로 최근 문재인 정부의 호남홀대론을 강조하던 국민의당으로서 할 말이었느냐는 의문과 힐난이 뒤따를 수밖에는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국민의당 존재감이 커진 것보다는 한동안 잠잠했던 ‘안철수 초딩론’을 부상하게 만들었다. 이는 지난 대선토론에서 했던 “내가 MB아바탑니까?”에 비견할 만한 실언이라는 지적이다. 호남출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을 숨겨도 모자랄 판에 자랑하듯이 자백한 형국이 됐으니 말이다.

게다가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얼싸안으며 좋아한 장면을 현장에서 보고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진정 호남민심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진정성마저 의심케 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 5일 국민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의 논평을 보면 호남이 아닌 기독교계를 더 신경 쓰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했다.

정우택 원내대표, 이채익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얼싸 안고 악수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소수자에 대한 군형법에 대해 김이수 후보자의 위헌 의견에 대해 김 대변인은 “기독교계 등에서는 김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이 될 경우 자칫 軍내 동성애 행위를 처벌토록 규정한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한 것. 호남민심은 의식치 않고 임명동의에 임하겠다는 자세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특정 종교계를 의식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논란이 일자 안철수 대표는 재차 책임을 민주당에게 떠넘기려 하다가 그마저도 팩트 체크에 걸려 민망한 상황을 자초하고 말았다. 기자들에게 “지금 민주당 내에서 투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고 했으나 민주당은 11일 국무위원들까지 전원 표결에 참석했다.

이렇듯 임명동의안이 부결됨으로써 김이수 후보자는 국회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이번 회기에는 다시 표결을 상정할 수 없게 됐다. 또한 1월 31일 박한철 전 소장 퇴임 이후 공석인 헌재소장 자리는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그런 한편 김이수 후보자 부결 이후 국민의당 홈페이지는 접속자 폭주로 정상적인 이용이 불가능한 사태가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국민의당은 11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부결 책임이 정부·여당에 있음을 애써 강조했지만 안철수 대표의 실언을 덮을 수는 없어 보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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