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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 무대감독, '비정규직 투쟁' 나선 이유?[인터뷰] 4월초 복직하는 오진호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사무국장
곽상아 기자 | 승인 2010.03.25 16:58

채시라, 김석훈 주연의 KBS 드라마 <천추태후> 무대감독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계약직지부 사무국장'으로.

지난해 6월 30일자로 KBS에서 '해고'된 이후 오씨의 직함은 달라졌다. 단순히 그의 직함만 바뀐 건 아니다.

   
  ▲ 오진호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 사무국장. ⓒ곽상아  
 
"사회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드라마 작업과 나의 가족, 나의 종교 문제가 주요 관심사였다"던 오씨는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는 지난 8개월간의 투쟁을 통해 사회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약자들을 '발견'하게 됐다.

공영방송 KBS에서 비정규직으로 8년여간 지내왔음에도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가 이제는 "1인 시위나 농성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악역을 맡아야 하는 집행부로서 8개월간 투쟁하며 많이 늙어버렸다"며 웃는 오씨는 KBS 사측과의 협상 타결로 내달 초부터 다시 KBS 드라마제작국에서 무대감독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외쳐왔던 "부당 해고를 철회하고, 원직 복직을 보장하라"던 구호가 현실이 된 것이다. (▷관련기사: KBS비정규직 문제, 협상 타결)

하지만 오씨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회사에서 다시 일하게 돼 개인적으로는 기쁘다"면서도 "KBS계약직지부 조합원 총 113명 가운데 60%가량만 6월 말까지 무기계약직으로 복직되고, 나머지는 5월 중 나올 예정인 1차 해고무효 확인 소송 결과에 (복직 여부가) 달렸기 때문에 집행부 중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고 밝혔다.

   
  ▲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KBS본관 건너편에 설치된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의 플래카드. ⓒ곽상아  
 
해고되기 하루 전날인 2009년 6월 29일에야 해고 사실을 알게 됐다는 오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래도 KBS에서 8년여간 일해왔는데, 이런 대접밖에 안해주는구나. 8년여 세월이 허사였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다음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로비에서 만난 오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복직 소감이 궁금하다.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회사에서 다시 일하게 돼서 개인적으로는 기쁘다. 하지만 전체 조합원 113명 가운데 60%가량(69명)만 6월 말까지 무기계약직으로 복직되고, 나머지는 5월 중 나올 예정인 1차 해고무효 확인 소송 결과에 (복직 여부가) 달렸기 때문에 집행부 중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8년여간 일해왔는데 하루 전날 '해고통보'"

- 2009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KBS는 420여명의 연봉계약직원 가운데 다수에 대해 법 취지에 따라 '정규직화' 하기보다는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지난해 6월 30일자로 해고됐는데 해고 통보를 하루 전날인 6월 29일에야 받았다. 그래도 KBS에서 8년여간 일해왔는데, 이런 대접밖에 안해주는구나. 누구를 위해 이곳에 남아서 열심히 일해왔던 것인지, 지난 8년여 세월이 허사였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KBS내에서 경영개혁단이 만들어지고 420여명의 연봉계약직원 가운데 다수에 대해 (계약해지) 조치가 내려왔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서별로 PD나 국장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무대감독으로서 맡고 있던 <천추태후>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도하차하게 돼서 부담감도 있었다. 드라마를 그만둔 이후, <천추태후> 기술감독과 연출 감독을 만났는데 '인력이 갑자기 빠져서 많이 힘들다'고 하더라."

   
  ▲ 지난해 11월 18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개최된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의 '단식투쟁 선포식 및 결의대회' 모습. ⓒ곽상아  
 

- 지난 8개월 투쟁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진정성'의 효력을 믿게 됐다. 처음 협상할 때는 (진정성이 통할지) 회의적이었는데, 사측과 협상할 때 (KBS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진정성이) 많은 효력이 있더라. 그리고 집회에서 사회를 거의 맡다보니 '말하는 기술'이 늘었다. 집행부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늘었다. 지난 8개월 동안 (집행부로서) 악역을 많이 맡아서 그런지 꽤 늙어버렸다. 하하."

"KBS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안에서만 끝나는 문제 아니다"

- 8개월간의 비정규직 투쟁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달라진 면이 있다면?

"예전에는 사회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거의 문외한이었고, 정치 사회 의제는 머리가 아픈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주요 관심사는 직업인 드라마 무대 작업이나 가족, 종교 등이었다. 예전 같으면 1인시위나 농성현장을 그냥 지나쳤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커피 한잔이라도 사다줘야 마음이 편하다.

비정규직 투쟁에 돌입하면서 연대단체의 투쟁현장에도 많이 가게 됐는데, 재능교육 노조의 농성 현장에서 한 여성 조합원이 차가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을 봤을때 가장 마음이 아프더라. KBS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안에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경제적으로는 어떻게 버텼나.
 
"해고된 직후에는 실업수당을 받았다. 실업수당이 끝날 때쯤에는 노조 전임자라고 해서 조합에서 약간의 돈을 줘서 그걸로 버텼다. 맞벌이라서 부인이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시원치는 않았다."

-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이병순 전 사장과 김인규 사장의 차이점이 있다고 보나?

"이병순 사장은 제작비 절감 등을 통해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계약서상에는 '한달 전에 해고 통보를 해야 한다'고 돼 있음에도 하루 전에야 (해고를 통보)하는 등 연봉계약직 사원들에 대한 업무 처리가 졸속으로 이뤄졌다. 김인규 사장이 취임하고 나서는, 나름의 햇볕정책이었던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게 있었다."

   
  ▲ 서울 여의도 KBS신관 1층 로비에 마련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계약직지부' 사무실. ⓒ곽상아  
 

"파견직, 단시간 근로자 등 KBS에 산재된 약자들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 '경영합리화'라는 방침을 내걸고 연봉계약직 사원과의 계약을 해지했던 KBS 사측이 전향적 태도로 돌아선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향후 수신료 인상 국면에서 비정규직 문제로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5월부터 결과가 나올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KBS계약직지부가 승소할 확률이 높기도 하다. 사측이 이런 것들을 고려한 뒤에 태도를 전향적으로 바꾼 것 같다."

- KBS계약직지부가 KBS 내부 약자를 상징하는 조직이 됐는데, 향후 KBS계약직지부가 어떤 활동을 해야 한다고 보나?

"무기계약직을 대상으로 할때, 연봉이 최저 1,400만원선이다. 일반적으로 일의 능률을 위해서는 피라미드 형이나 다이아몬드 형이 좋은데 KBS는 고위 연봉자가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다. (비정규직들이) KBS구성원이라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저임금을 감내해야 하는 모순을 이제는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장은 연봉계약직 사원들의 전원 복직과 처우 개선을 위한 생존권 싸움을 한 뒤, 향후 KBS에 산재된 약자들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파견직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등 KBS에는 연봉계약직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 이병순 사장 시절부터 'KBS의 친정부화'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KBS의 구성원으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말하겠다. 현재 KBS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에까지 한나라당 의원들이 무더기로 출연하는 등 한나라당의 국민여론화 작업에 앞장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곽상아 기자  nell@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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