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형래 기자] 11일 조선일보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전술핵’ 배치를 종용하고 나섰다. 이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신중한 검토를 주장한 것과 비교하면 보수신문 중 조선일보 논조는 한참 앞서 나갔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文 정부 무슨 대안 갖고 국민 지킬 기회 걷어차나]를 통해 청와대의 전술핵 배치 반대 의견에 대해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기회를 미리 걷어차는 진짜 이유가 뭔가”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정부가 미국보다 먼저 전술핵 재배치를 제기해도 모자랄 위기”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실제로 트럼프 정부에서 전술핵 재배치의 문을 열어놓는 데도 이를 거부한다면 실로 심각한 사태”라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조선일보는 전술핵 반대 의사를 밝힌 청와대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여당은 '전술핵 반대' 이유에 대해 ‘전술핵 도입 시 북한 비핵화 주장 명분이 상실되며 동북아 전체로 핵무장이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며 “정말 한가한 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아냥댔다.

또 조선일보는 “이미 북은 한국을 공격할 핵은 완성했다”면서 “북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대한민국을 어떻게, 무엇으로 지킬 것인지 정부는 대책을 강구할 의무가 있다”며 ‘전술핵 배치’를 주장했다.

[조선일보 사설] 文 정부 무슨 대안 갖고 국민 지킬 기회 걷어차나 (2017년 9월 11일 오피니언 35면)

반면 이날 중앙일보는 ‘전술핵 배치’ 논란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며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뜨거운 감자 전술핵 … 냉정히 계산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를 통해 미국의 전술핵 배치 주장에 대해 “북한이 6차 핵실험으로 수소탄 개발에 성공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위협하자 미국으로선 공격적인 대북 옵션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11일의 유엔 안보리 표결을 앞두고 북한과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중앙일보는 “미국의 정확한 속마음은 여전히 짐작하기 어렵다”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의식해 미 의회가 이런 민감한 카드에 손을 들어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전술핵 재배치 논쟁은 피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며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함께 전술핵 재배치의 이해득실을 냉정하게 계산하면서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중앙일보 사설] 뜨거운 감자 전술핵…냉정히 계산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2017년 9월 11일 오피니언 34면)

동아일보 역시 사설 [미국발 전술핵 재배치론, 우리도 이대로 있을 순 없다]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에 입장을 바꿨듯, 전술핵 재배치를 적극 검토할 때”라며 “전술핵 재배치는 사드 배치보다 훨씬 중대한 사안인 만큼 사드 배치 과정의 국력 소모전을 교훈 삼아 한중 갈등, 무엇보다 남남(南南)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국일보는 미국의 한반도 전술핵 배치가 “중국을 향한 엄포성 경고”라고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워싱턴 소식통을 이용해 “트럼프 정부가 대북정책을 전면 검토하는 과정에서 전술핵 배치를 논의한 것은 분명하지만 실행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하고 “한일 핵무장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카드지만, 전술핵무기 배치의 경우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일보] “한국 전술핵 재배치” 흘리며 中 압박하는 美 (2017년 9월 11일자 03면)

또 한국일보는 지난 7일 기사 [전술핵 배치, 미국에 제공할 비용과 반발 여론 만만찮다]를 통해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의 말을 빌어 “전술핵을 가져오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북 제재를 가하면서 핵을 들여오는 모순에 봉착할 수 있다”며 “핵 주변 주민들의 반대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일보는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역시 미 군사 전문가 대부분이 우발적 충돌 위험을 증폭한다는 이유로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한다고 4일 전했다”면서 “한반도 핵무기 배치는 국내외의 반발에 직면할 게 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러한 상황을 예견한 듯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국제정치 현실 차원에서 보면 독자 핵무장·전술핵 배치 주장은 ‘곡조도 모르고 부르는 노래’ 같은 것”이라면서도 “국내 정치 측면에서 독자 핵무장·전술핵 배치 주장은 이론적으로 말이 되든 안되든 의외로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 기기에 전술핵을 재배할 필요도 없다”며 “항공모함에 싣고 다니는 핵무기로 대북 차원에서 ‘확장된 억지’력을 과시하며 한·미 동맹을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정세현 전 장관은 “핵무기를 실은 전폭기가 괌 미국기자에서 평양 상공까지 비행하는 데 2시간 밖에 안 걸린다”며 “미국으로서는 새삼 물의만 일으킬 뿐 실익도 없는 전술핵 재배치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선거판에서 여론을 애국과 종북으로 편가르기 하면서 야권을 ‘종북 프레임’에 가둬버릴 수 있는 좋은 이슈”라며 “북한이 때 맞춰 핵·미사일 활동이라도 해버리면 안보 포퓰리즘의 파괴력은 그 만큼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세현 전 장관의 1년 전 예상처럼 자유한국당은 당론으로 전술핵 배치를 내걸고, 때 맞춰 조선일보는 ‘전술핵 배치’를 종용하며 ‘안보 포퓰리즘’ 확산에 주력하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11일 지난 주보다 4.0%p 떨어져 69.1%를 기록했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1.6%p 떨어진 49.7%로 집계됐다. 반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0.3% 오른 16.7%를 기록했다.

[한겨레] [정세현 칼럼] 핵무장·전술핵 재배치 주장, 그 허와 실 (2016년 10월 3일자 오피니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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