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정권 시절인 2011년 9월,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페이지가 신설됐다. ‘We the People’란 이름의 사이트가 그것인데, 일정 인원 이상이 참여하는 청원에 대해 백악관이 일정 기간 내에 반드시 답변하도록 하는 형식이다. 초기의 인원제한은 5천 명 이상이었지만 청원이 몰리면서 곧 10만 명으로 상한이 늘어났다. 이 시스템은 미국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는 공론장 역할을 제대로 다 하지는 못했지만 갈등 그 자체를 드러내는 역할은 매우 충실히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듯한 청와대 홈페이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베스트 청원’에 올라와 있는 것은 세 건인데 청소년보호법 폐지, 징병 대상 여성까지 확대, 소년법 폐지 등이 핵심 요구이다. 이 중 청소년보호법 폐지 요구는 소년법 폐지와 같은 내용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화면 캡처

소년법을 폐지하라는 것은 최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등에 대한 반발이다. 가해자들은 중학생의 것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를 해놓고 일말의 반성도 없는 비뚤어진 현실 인식을 보여줬다. 피해자의 가족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소년법의 폐지를 직접적으로 요구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경찰이 제대로 사건을 수사하지 않았고 처벌도 미약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게 이유다.

피해자와 가족들의 심경이야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소년법 폐지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법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처벌한다. 즉, 이는 ‘능력’의 문제이다. 미성년자 뿐 아니라 심신장애나 심신상실의 경우도 형을 감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법치주의가 작동하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정도를 달리할지언정 이런 법 정신의 기본은 철저히 지켜진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등은 일부 흉악범죄에 대해 소년법의 관련 조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라고 한다. 이는 분명 진지하게 논의해볼만한 주장이지만 ‘정답’이라고 말할 것은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응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는 것이다. 강하게 처벌하면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알려져 있다. 오히려 엄벌주의가 범죄 양상을 더 심각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 일부는 “어차피 살인미수니까 더 때리자”고 했다고 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5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법의 형벌의 수위를 아무리 높여도 제지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발달단계에서는 무조건 엄벌주의를 집행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쉽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소년법 폐지 내지는 개정 요구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법이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을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봐주고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인식 속에서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들은 법의 맹점을 이용해 자기 욕구를 채우는 존재일 뿐이다. ‘허울 좋은 명분을 악용해 자신의 사익을 채운다’는 것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냉소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문법이다.

물론 이런 인식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실제 미성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소년법의 조항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진단한다. 어차피 법 적용을 받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반복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이 일선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냉소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앞서 법 정신이 가리키는 ‘능력’의 문제로 본다면 일부 문제적인 미성년자들이 이런 인식을 갖는 것 자체가 그들이 미성숙한 상태라는 근거로 인식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를 교정하기 위해선 교육과 선도가 필요한데 소년법의 적용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앞서 인터뷰에서 “교도소 환경이 교육기관은 아니다. 소년법이 목적으로 하는 교육과 선도의 기능을 전혀 발휘할 수 없는 교도소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보내도 되겠는가”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는 여론 재판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한 대안 제시가 절실한 것이다.

부산 여중생 폭행하는 가해자들 (연합뉴스)

우리가 사회적 차원에서 좀 더 고민해볼 부분은 이 사건에 대해 여론이 반응하는 형태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냉소적 인식은 미성년자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어떤 사기꾼(?)으로 간주하고 그들에게 정당하고 공평한 책임의 분배를 요구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인식이 미성년자의 범죄에 국한돼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또 다른 청원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징병 요구가 나오는 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군가산점 문제가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된 이후 이런 주장은 더 힘을 얻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청원 내용도 저출산으로 인한 병력자원 감소를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 여성이 (국방의)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도 누리고 싶은 건 다 누리려 한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사실 이런 인식은 전형적이다. 인터넷에 늘상 문제가 되는 여성혐오적 표현들에서도 매번 반복되는 바다. 이런 인식에서 여성은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며 사회의 ‘배려’를 독점하면서 책임은 남에게 미루는 아주 약아빠진 행동으로 일관하는 존재이다. 이 구조 속에서 결국 손해를 뒤집어쓰는 것은 남성인 ‘나’인데, 사회적 강자로서 사는 게 편하고 행복하다면 모를까 그렇잖아도 괴로운 와중에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다. ‘나’만 손해 보는 것은 억울하니 여자도 군대 가라!

다수자들의 이러한 비뚤어진 피해의식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서 테러를 감행한 일군의 백일우월주의자들이나 이민자 정책에 대한 불만을 집권 노동당 청년캠프에서 총기를 난사하는 것으로 해소한 노르웨이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역시 비슷한 인식을 공유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과 이로 인한 불만을 ‘배려를 받는’ 약자를 향한 르상티망으로 표출한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이 원한감정을 갖는 대상을 ‘비정상’으로 지목해 사회 일반에서 분리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을 포괄하는 정상성을 스스로 회복하려고 시도한다. 바로 이런 인식이 21세기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극우주의적 열정의 동력이다.

매우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여론을 생산적인 형태로 소화해 바람직한 공론을 조성하는데 기여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이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잔혹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거의 조리돌림과 다를 바 없는 형태로 자극적 보도를 이어가는 보수언론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미성년자의 잔혹범죄를 두고 언론은 어떤 예외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듯 보도하지만 바로 그런 태도가 오히려 이 사건을 만든 배후 중 하나인 사회구조적 문제를 은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