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결국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예상된 일이었지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지만 당장 전쟁을 우려하기는 이르다.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북한이 여전히 확보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미국의 선제타격이나 예방타격 등도 남한이 입게 될 피해 규모를 고려할 때 여전히 실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로 걱정스러운 건 동아시아의 향후 정세이다. 이 사건이, 작은 충격이 전쟁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조건이 강화되는 군비확장 국면을 가속화 시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을 필두로 한 대북강경론자들은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낡아버린 규정은 이제 버리고 주한미군의 전술핵 재배치 및 자체 핵무장 준비 등을 통해 ‘공포의 균형’을 회복하는 걸로 북한의 실질적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 방법으로 북한의 핵개발 포기 달성해 ‘한반도 비핵화’를 여전히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 또한 이에 동의하며 핵 확산을 반대하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세력의 이러한 주장은 일견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나타난 일련의 현상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이 시나리오가 작동하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군사와 민간 양측에 걸친 모든 대화 제의를 외면하고 있는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도박을 계속하고 있다는 게 첫 번째 문제다. 북한이 6차 핵실험으로 얻게 된 게 수소폭탄인지 증폭핵분열탄인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 가능한 수준의 소형화와 경량화를 달성하였는지 여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도 않다. 이런 조건에선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원칙은 더 이상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이 자명해 보인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대화론자’로 분류되던 전문가들도 대북정책에 있어서의 또 다른 ‘레버리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북한 조선중앙TV가 3일 공개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모습 (연합뉴스)

참여정부에서 외교안보전략에 관여한 경력을 갖고 있는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박선원 전 비서관은 지난달 13일과 14일 소셜미디어와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전술핵 재배치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2년 정도의 제한을 두고 전술핵을 재반입 해 북한이 괌 타격으로 노리는 핵 공백을 막고 사드 배치 철회와 한미군사훈련 수위 조절로 중국을 대북제재 테이블로 끌어 들이자는 주장이다.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국민의당이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달 30일 정기국회 및 국정감사 대비 의원 워크숍에서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은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독자핵무장 등의 주장 등을 언급했다. 국민의당 한반도평화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북핵 해법이 절실하다”면서 “전쟁도 제재도 협상도 아니라면 당장은 북핵 상황의 전략적 관리에 치중하면서 북한의 체제 변화를 긴 안목에서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썼다. 이는 ‘포기론’에 가까운데, 이 맥락에서 “북핵 상황의 전략적 관리”에는 한시적 전술핵 재배치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문재인 정권 역시 일종의 ‘플랜B’라는 차원에서 마찬가지의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송영무 장관은 현지시간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미국 측에 국내 일각에서 전술핵 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부연하며 미사일 지침 개정, 확장억제 관련 미군 전략자산 한반도 배치, 핵잠수함 구비 등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영무 장관은 귀국 후 해당 발언은 국내 여론을 전달한 차원의 것이라며 의미를 일축했으나 외교안보적으로 민감한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서 굳이 전술핵 재배치 여론을 언급한 ‘의도’가 없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 정부가 전술핵 재배치를 원한다고 해도 미국이 결정하지 않으면 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이 언제 어떻게 태도 변화를 보일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30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한과 대화를 해왔고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해 왔다”며 “대화는 답이 아니다”라고 썼다.

주목할 부분은 “25년간”이라는 구체적 기간을 언급한 대목이다. 이는 북핵 관련 협상 과정을 일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전으로 상황을 되돌릴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를 헤아리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그가 대선 기간 중 일본의 핵무장 등을 언급하며 미국 정부의 전통적인 핵확산 반대 입장에 구애받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일본 상공을 지나가는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한 이후부터 따져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간 총 4번이나 통화를 했다는 사실도 함께 봐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동아시아 주변국들 모두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원칙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지만 앞서의 흐름을 종합해보면 물 밑에선 이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만일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되고 어떤 형식으로든 남한 지역의 전술핵 반입 역시 현실화된다면 이후 국면은 동아시아 각국이 관여할 수밖에 없는 북미 간 군축협상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밤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있다오른쪽 트럼프 대통령 사진은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청와대)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동아시아 각국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오히려 이 국면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북미 간 군축협상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중국에 이득인 것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미국의 대리자로서 중국 패권에 맞서는 역할은 일본이 주도해야 한다. 일본 정계의 숙원인 보통국가화와 재무장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지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없이도 군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주국방의 완성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허울뿐인 군축협상으로 각국이 연쇄적인 군비증강에 매진하게 되면 동아시아는 세계의 또 다른 화약고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6차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북미 간 또는 남북 간 협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최상의 수이다. 그러나 이를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면 이후 국면, 제2라운드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2라운드의 전선은 동아시아 전체의 군비확장 가속화이냐 평화군축의 장구한 여정이냐의 사이에 그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그림은 전자에 동아시아 기득권 전체가 집중되는 것이지만 후자를 책임지겠다는 세력은 그야말로 지리멸렬하다. 6차 핵실험 이후 동아시아 정세의 가장 큰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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