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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은 공영방송 부르는 함성이었다[기고] 공영방송 쟁취는 언론인의 역사적 소명
김영호 / 언론광장 공동대표 | 승인 2017.09.04 08:26

해방 이후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5-16의 박정희도, 12-12의 전두환도 탱크를 앞세우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청와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방송사로 달려가 마이크를 뺏는 데서 쿠데타의 출발점을 찾았다. 정보의 유통경로를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그날들 이후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이 나라 언론의 행로는 굴종과 질곡으로 점철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민주화의 여명기를 열었다. 하지만 그 후 한 세대가 지난 시점에서도 방송장악을 노린 정치권력의 음습한 음모는 지칠 줄 몰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더니 그 엄혹했던 시절에 철권을 휘두르던 세력이 환생한 형국을 연출했다. 그 옛날 장막 뒤에서 언론을 조정하던 손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은 언론장악의 칼날을 보란 듯이 햇빛 아래 드러내고 휘둘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방송의 가치인 공공성과 공익성을 외치는 기자, PD 등 방송종사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돌아 온 보복의 칼날은 무자비했다. 사장부터 말단 기자, PD까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무더기로 파면, 해고, 정직, 감봉, 좌천, 체포, 구속이 불법상태에서 폭력적으로 자행되었다. 그야 말로 학살을 멈출 줄 몰랐다. 한 칼잡이의 말을 빌면 그것이 좌파청소란다.  

언론악법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단식중인 언론노조 위원장을 잡아서 족쇄를 채웠다. 폭력적-불법적 방법에 의한 해고의 부당성을 법원이 인정해도 집행을 거부했다. 그들 앞에서는 법원의 판결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무수한 방송인의 주검을 짓밟고 방송장악의 음모가 노골적으로 자행되어 양심적이고 용기 있는 방송인들이 설 자리를 뺏어갔다. 

MBC야 말로 모진 수난의 시대를 살았다. 정치성향이 분명하지 않다고 사장의 옷을 벗겼다.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을 다루었다고 제작진을 긴급체포하고 문초한 다음 재판에 넘겼다. 그것도 모자라 언론인의 생명 같은 취재원본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가시 돋친 촌평을 했다고 해서 앵커의 마이크를 뺏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연예인, 시사평론가에게도 줄줄이 금족령을 내렸다.  

반면에 정권에 빌붙은 부역자들은 방송장악의 선봉에 서서 망나니의 칼춤을 추며 출세의 가도를 달렸다. 정권에 포획된 TV는 진실을 뒤로 감추고 거짓을 앞세워 정권홍보의 나팔을 불어댔다. 군사정권은 매일 기사의 내용, 크기, 제목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보도지침을 하달했다. 이명박-박근혜 치하에서는 부역자들이 알아서 기는 자기검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보도지침 따위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부역자들은 제작진의 반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비판적인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없애버렸다. 정치권력을 감시-견제해야 할 언론이 책무를 방기했다는 소리는 사치였다. 정책실패의 은폐, 공직자의 부정부패, 사회의 구조적 폐해-모순을 고발하는 심층보도를 봉쇄한 것이다. 이는 국민의 정치의식을 마비시켜 정권안보를 도모하려는 의도 말고는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그 자리에는 오락-연예 프로그램이 들어섰다. 공영방송=오락방송 만들기 전략이었다. 

국권을 총칼로 찬탈한 전두환 일당은 칼라TV와 함께 프로 야구, 프로 씨름을 도입하면서 철저한 언론통제를 실시했다.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한 ‘땡전 뉴스’는 가치 있는 뉴스는 버리고 가치 없는 뉴스를 내보냈다. 그리곤 스포츠 중계와 오락물, 선정물로 도배질했다. 여론조작을 위한 이른바 3S(screen, sport, sex)이었다. 국민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지 말고 먹고 마시고 놀기나 하라는 우민정책이었다. 

전두환 일당이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political apathy)을 유발하기 위해 3S 효과의 극대화를 밀어붙였다. 이것은 정권 차원에서 정권안보를 노린 술책이었다. 이명박-박근혜의 하수인들이 그 악랄한 언론말살정책을 답습했다. 방송의 가치인 공공성-공익성은 뒷전에 두고 선정성-오락성 경쟁으로 치달았다. 채널을 돌리면 여기, 저기서 연예인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한심한 잡담, 한담으로 시끄럽다.    

이른바 보수신문이라는 조-중-동은 한나라당과 합세해서 신문법을 언론말살법이니, 언론탄압법이니 하며 미친 듯이 헐뜯었다. 이 법에 의해 언론자유가 박탈당했다면 그들이 그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일삼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한 번도 신문법에 의해 보도-논평에 제약을 받았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여기에는 숨은 그림이 있었다. 바로 신문-방송 겸업금지 조항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공영방송 장악에만 혈안이었던 것이 아니었다.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언론악법을 불법으로 날치기했다. 신문-방송 겸업금지를 풀어 조-중-동-매에게 종합편성채널을 하나씩 나눠주려고 그 난리를 쳤다. 방송이란 이권사업을 미끼로 신문시장을 지배하는 조-중-동-매를 완전히 포섭했던 것이다. 여론독점-여론조작을 통해 수구세력의 장기집권을 획책하려는 방송개편이었다.  

말이 종합편성채널이었지 그것은 하루 종일 뉴스만 불어대는 뉴스전문채널이다. 종편방송 등장과 함께 종북몰이가 발진되었다. 비주류 매체는 좌파언론이라고 광고탄압 통해 옥죄고 공영방송은 노영(勞營)방송, 좌파방송이라고 단죄하더니 집권세력의 방송장악이 완료되었다. 반세기가 지나 매카시가 이 땅에 환생했는지 적색공포가 맹위를 떨쳤다. 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라 탈이념화가 세계질서를 재편하기 시작한지도 한 세대가 지났건만 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잃어버린 10년’, ‘좌파정권 10년’을 타령하더니 정치적 반대자, 정책 비판자, 개혁 주창자, 시민 운동가들에게 좌빨, 종북이란 딱지를 붙여 색깔공세 퍼붓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찰의 곤봉과 검찰의 기소권을 내세워 일반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결박하고 족쇄를 채웠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류로 여겼던 법원도 가세하여 집권세력과 호흡을 같이 했다. 

종북몰이와 함께 국민이 응징한 헌법파괴자인 독재자 이승만-박정희 예찬론이 TV화면에 넘쳐났다. 그 TV는 친일파 미화에 이어 건국절을 주장하더니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역사왜곡마저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은 수구세력이 분리와 지배(divide and rule)를 통해 지지세력을 규합하고 결집시켜 정권의 영속화를 기도하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언론이 거기에 끼어 나팔을 불어대 계층-세대-이념-지역간의 갈등-대립구조의 심화를 부채질했다.

집권세력의 이념공세가 진보진영도 결집시키는 반작용을 일으켜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한 구조로 치닫고 있다. 한국사회의 이념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는 가운데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세대간의 반목이 더욱 극명해져 적대감마저 드러낸다. 문제의 심각성은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같은 가치중립적 사안도 이념적 잣대로 재단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충돌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의 중요한 기능은 사회통합이다. 그런데 공영방송의 허울을 쓰고도 정권의 집권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다 그 기능을 포기하는가 싶더니 사회분열의 첨병을 노릇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민주시민들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겨울 주말마다 광화문 거리를 메워 밤을 태우던 수만, 수십만 촛불이 그것을 말한다. 언론 부역자들이 방송의 가치인 공공성-공익성을 권력의 향연에 제물로 바치지 않았다면 그 무수한 촛불들이 촛물을 흘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언론환경이 군사독재 시절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매체융합시대는 정보유통 경로의 다기화와 쌍방향 소통을 말한다. 정보의 유통경로가 단순했던 그 시절은 종막을 내린지 오래 전이다. 21세기에도 그 낡은 이론을 믿는 TV가 쌍나팔을 불었지만 거기에 진실이 없으니 국민은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그 옛날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도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방송이 온갖 추태를 부렸지만 국민의 귀와 눈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언론장악의 부메랑이 돌아왔다. 아버지처럼 장기집권을 꿈꾸던 박근혜는 손목에 수갑을 찬 영어의 몸이 되었다. 언론이 살아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면 최순실이란 아줌마와 짜고 벌인 추잡하고 유치한 국정농단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이 5년 동안 국정원 대선개입, 4대강 죽이기, 해외자원개발로 즐거웠겠지만 그것이 비수로 돌아와 그의 목을 겨냥하고 있다. 그들이 방송장악에 광분하지 않았다면 언론이 감시-견제기능을 제대로 하여 그들이 밤잠을 설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나라의 언론사는 정치상황이 연출한 굴종과 질곡의 역사가 있었지만 언론인이 언론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온 찬란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나라 언론투쟁사의 금자탑인 1974년 유신정권에 맞서 싸운 자유언론실천운동, 1980년 신군부에 저항한 제작거부운동은 옥쇄를 각오하고 결행한 거사였다. KBS, MBC 노동조합이 공영방송 쟁취의 새 기치를 높이 들고 투쟁에 나섰다. KBS, MBC 언론노조는 이 나라 언론투쟁사에 자랑스럽게 장식할 만큼 방송장악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역사가 있다. 

공영방송 쟁취는 방송현장을 지키는 종사자의 역사적 소명이다. KBS, MBC 노동조합의 용기 있는 투쟁에는 민주시민의 우렁찬 박수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소박한 믿음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촛불항쟁은 진실을 말하는 공영방송의 재탄생을 기대하는 불꽃의 함성이었다. 

김영호 / 언론광장 공동대표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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