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화려하게 종영한 MBC <죽어야 사는 남자> 후속으로 하지원을 앞세운 <병원선>이 찾아왔다. 1회 10.6%, 2회 12.4%의 동시간대 1위의 순조로운 출발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지원 ‘불패 신화’가 시작된 것일까?

하지원의 건재

MBC 새 수목드라마 <병원선>

<병원선>을 보고 있노라면 '믿고 보는 배우'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란 캔디형 캐릭터에 가장 맞춤형인 하지원은, 생존의 신호음을 제외하고는 눈물을 사치로 여기는 소녀가장 외과의사 송은재 캐릭터로 다시 한번 그녀가 잘할 수 있는 연기에 도전한다. 그리고 극 초반부터 <병원선>이란 드라마를 가장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가는 건,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지원이다. 그런 하지원조차도 종종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병원 용어가 생경하게 들리지만, 그럼에도 극적인 상황에서 '제가 그 수술합니다'라고 당차게 외칠 때, 심지어 도끼를 내려칠 때조차 그 대사와 행위에 믿음이 가도록 하는 건 역시 하지원의 연기력이다.

<병원선>은 심하게 하지원에게 의존한다. 여주인공 하지원을 제외하고는, 남자 주인공이라지만, 그와 같이 병원선에 트러블 메이커로 등극한 이서원, 김인식과 구분이 잘 가지 않는 강민혁. 이 드라마가 이른바 '역하렘물'이라지만, 그 꽃이 될 남자들의 존재감은 하지원 한 명에 비해 현격하게 부족해 보인다. 드라마는 회차 마다 내과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인 그들의 사연을 풀어놓을 예정인 듯하지만, 그 사연은 그저 양념처럼 여겨질 것 같다. 남자 캐릭터들뿐만이 아니다. 하지원에 맞서 그녀의 발목을 걸고 들어설 조연 캐릭터들의 비중 역시 그다지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다. 그녀가 근무했던 병원의 외과 과장도, 이제 새로이 그녀를 응급실에서 맞이하려다 내치는 종합 병원장도 하지원의 존재감에는 한참 못 미친다.

MBC 새 수목드라마 <병원선>

그런 면에서 <병원선>은 결국 '하지원의 드라마'가 된다. <태양의 후예> 등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의사로 나와 휴머니즘을 실현했지만, 그 누구도 <태양의 후예>의 강모연(송혜교 분)에 비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지원이 분한 송은재로 치면 이전 남자 배우들이 의사로 분해 드라마를 끌고 가던 의학 드라마의 형식을 띤다. <명불허전>에서 최연경으로 분한 김아중과 비슷하지만, <병원선>엔 김남길만큼 원맨쇼를 벌이며 여주인공을 보완해줄 그 누군가가 없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 수 없는 건 비단 극중에서만이 아니다.

촌스러워 보게 되는 드라마?

하지만 단지 <병원선>이 하지원으로 인해서만 시청률이 잘 나올까?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 중 '촌스럽다'는 반응이 상당수 있었다. 연출이나 편집, 화면, 구성에 있어서 상당히 '올드'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드라마를 보면, 배경이 2017년이지만 마치 70년대의 어느 시절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의료 사각지대인 섬을 돌아다니며 의료 봉사를 하는 병원선. 수술실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설정으로 한결 조촐하게 설정된 병원선의 세트하며, 70년대 낙도 봉사 활동의 어느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조차 주는 컨셉이다.

MBC 새 수목드라마 <병원선>

올드한 장치만이 아니다. 실제 드라마의 내용도 이제는 도시에서는 가볍게 여기는 맹장 수술이 응급 상황이 되는 설정부터 단 한순간의 외면으로 어머니를 잃게 되는 사연까지, 21세기의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이 드라마의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하여 '휴머니즘의 인술'의 도구로 작동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사극은 아니지만 '시대극’처럼 시청자들을 이끌며 끌어 앉힌다. '안 되도 되게 하는' 응급 상황과, 그 속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적인 이야기들은 '의학 드라마'의 본령으로 시청자들을 솔깃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 세련된 맛이라고는 없는 투박한 연출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서사가 오히려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21세기에 안락한 아파트에서 느긋하게 리모컨을 쥐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힘들고 고달프게 이겨왔던 그 시절의 정서가 지배적일지도 모르기에. 어쩌면 <병원선>의 이 방식은 서투름이 아니라 의도된 촌스러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MBC 새 수목드라마 <병원선>

<죽어야 사는 남자>가 여전히 가장 호소력 있는 '가족애'를 주제로 내건 데 이어, <병원선>은 도시의 성장주의에서 탈락한 여의사를 내세워 다시 한번 가장 근원적인 '휴머니즘 인술'을 설파한다. 그리하여 시청자들을 이끄는 이 전략은 이제 중장년층이 대세가 된 지상파 TV에서 어쩌면 가장 영리한 전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21세기의 시대를 살지만, 7·80년대를 살아왔던 그 세대에게 <병원선>은 그럼에도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정서를 복기해 주고 있다. 그런 증거는, 시간을 거스르는 기발한 설정의 <맨홀>과 역시나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 <다시 만난 세계>가 고전하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하지만 <병원선>의 전략 성공 여부를 예단하기엔 이르다. 상대작인 <맨홀>이나 <다만세>가 공정한 경쟁작이라기엔 완성도면이나 연기 면에서 너무 수준 미달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분간 안정적인 시청률 호조세를 보일 <병원선>의 진검승부는 이종석, 수지를 앞세운 트렌디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방영과 함께 이루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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