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을 통해 메이저 무대로 복귀한 ‘러시안 뷰티’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 세계랭킹 146위)가 첫 승리를 거두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샤라포바는 2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US오픈(총상금 5천40만 달러·약 565억원) 첫날 여자단식 1회전에서 이번 대회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시모나 할렙(루마니아, 세계랭킹 2위)에 세트스코어 2-1(6-4 4-6 6-3)로 승리를 거두고 2회전에 진출했다.

3세트 게임 스코어 5-3으로 앞선 상황에서 할렙의 마지막 스트로크가 엔드 라인을 벗어나면서 승리가 확정된 순간 샤라포바는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다가 이내 일어나 할렙과 인사를 나눈 뒤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샤라포바는 이날 할렙(14개)보다 50개나 더 많은 64개의 실책을 범했지만 할렙보다 20㎝나 더 큰 키(188㎝)를 활용한 각도 깊은 스트로크를 앞세워 공격 성공 횟수에서 60-15로 할렙을 압도했다.

마리야 샤라포바 [AP=연합뉴스]

특히 고비 때마다 터져 나온 샤라포바의 시원스런 스트로크는 그가 여전히 세계 탑 클래스의 선수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했다.

샤라포바는 이로써 도핑 파문 이후 약 1년 7개월 만에 메이저 대회 첫 승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 호주오픈에서 금지약물 복용(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국제테니스연맹(ITF)으로부터 15개월의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샤라포바는 올해 4월 코트에 복귀했지만 메이저 무대에 서기까지는 참으로 멀고 먼 길을 돌아왔다.

복귀 이후 세계여자테니스(WTA) 투어의 각종 대회에서는 샤라포바에게 와일드카드를 부여하며 본선행 기회를 줬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함께 투어 대회를 치르는 선수들로부터 비난이 이어졌다.

15개월간 대회 출전 경력이 없어 세계랭킹이 없는 상황의 선수에게 와일드카드를 부여해서 본선 출전의 기회를 주는 것은 한 시즌을 꾸준히 활약하며 얻은 랭킹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과 비교할 때 공평하지 못하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대회의 흥행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아쉬움이 남는 지적이었다.

마리야 샤라포바 [EPA=연합뉴스]

이와 같은 논란 속에서 프랑스 오픈 조직위원회는 고심 끝에 샤라포바에게 와일드카드를 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시 프랑스 오픈의 디렉터인 가이 포르제는 샤라포바에게 프랑스 오픈 와일드카드를 부여하지 않은 것과 관련, “우리는 돈을 벌고 더 많은 팬들을 모으길 원하는 WTA 대회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결국 샤라포바는 복귀 후 첫 메이저 출전기회를 그렇게 지나쳤다.

그 다음 메이저 대회는 6월에 개최되는 윔블던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허벅지 근육 손상으로 대회 출전을 포기한 것. 많은 팬들이 윔블던에서 샤라포바가 예선을 거쳐 본선에서 멋진 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국 윔블던 코트에서 샤라포바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후 8주의 휴식을 가진 샤라포바는 이달 초 ‘뱅크 오브 더 웨스트 클래식’을 통해 코트에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1회전 경기 도중 왼쪽 팔목에 부상을 입으며 경기를 포기했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이 임박한 시점에서 다시 부상을 입자 일각에서는 샤라포바의 US출전이 불투명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결국 샤라포바는 와일드카드로 US오픈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지난 15일 미국테니스협회(USTA)는 샤라포바가 US오픈 와일드카드 명단에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출전하게 된 샤라포바. 그런데 1회전 상대는 ‘무려’ 세계랭킹 2위 할렙이었다. 웬만한 선수 같았으면 대진운이 나빠도 너무 나쁘다고 한탄했겠지만 이런 한탄을 한 쪽은 샤라포바가 아닌 할렙이었다.

왜냐하면 샤라포바는 할렙과의 상대전적에서 6전 전승이라는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경기가 2015년 WTA 파이널스로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이어서 할렙이 그 사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전까지의 상대전적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6전 전패라는 전적은 할렙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시모나 할레프 [AP=연합뉴스]

그리고 결국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7승 무패, 샤랴포바의 절대 우위가 이어졌다. 스포츠가 가진 묘한 상대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해도 이상한 말은 아닐 것이다.

경기 직후 샤랴포바는 “가끔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해가며 테니스를 해야 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면서도 “이게 바로 그 답”이라고 밝히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샤라포바는 “이곳에 오기 전에 경기를 많이 소화하지 못했다”며 “그래서 오늘 경기에서 이길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면서도 “어찌됐건 나는 오늘 승리했다. 그래서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할렙을 이김으로써 샤라포바는 스스로 와일드카드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선수임을 입증했다. 또한 꾸준한 출전을 통한다면 언제고 세계 톱랭커 자리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게 됐다.

할렙을 꺾고 US오픈 1회전을 통과, 메이저 무대에서 설 자격이 있는 선수임을 증명한 샤라포바는 샤라포바는 2회전에서 세계랭킹 59위의 티메아 바보스(헝가리)를 상대로 3회전 진출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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