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주요 일간지 1면 머리기사는 북한의 도발 소식으로 채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9일 새벽 북한이 일본 상공을 넘기는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것은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의 논조는 대략 일치한다. 문재인 정권의 대응이 안이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 간 통화를 한 데 비해 한미 간에는 외교장관 수준에서만 통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경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9일 이뤄진 우리 공군 소속 F-15K가 훈련 중에 투하한 MK-84이 ‘멍텅구리 폭탄’으로 불리는 수준이라는 비판까지 동원했다.

이들의 논리로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문재인 정권이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만 오매불망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북한이 동해상에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청와대가 ‘방사포’로 축소 발표(?) 했다는 사실 역시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 논리는 문재인 정권이 앞으로 대화 주장을 반복할 경우 ‘코리아패싱’으로 이어지고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국면이 ‘코리아패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그에 이르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청와대는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 하루 전인 28일 징후를 포착했고 NSC 상임위 개최, 대통령 보고, 무력시위 지시, 군사 훈련으로 이어지는 ‘표준적 대응’을 감행했다. 적어도 어떤 표준적 절차라는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대응이다. 군사적 대응을 직접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이 NSC 회의에 참석했는지는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 여부를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상 간의 통화는 양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고 필요한 때에 이뤄지는 것이지 페이스북 친구 간의 메시지 교환처럼 되는 게 아니다.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은 괌의 앤더슨 기지와 주일미군 타격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평화헌법 등의 정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통한 미국의 군사적 대리인을 1차적으로 자임할 수 있는 존재이다. 미일 정상간 통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진 것은 상식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 을지연습이 시작된 21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이 국면이 ‘통미봉남’, ‘코리아패싱’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이후 ‘괌 포위사격’까지 이어지는 군사적 대응 계획의 일환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미국과 일본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에 더불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선언을 다시 한 번 내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시험을 통해 탄도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를 위한 시험을 진행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은 ‘고각’으로 이뤄져 제대로 된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시험할 수 없었는데, 이번 발사는 정상 각도로 이뤄졌으므로 실전과 비슷한 환경에서 테스트가 이뤄졌을 거란 추정이다. 정보당국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이지만 적어도 이후 기술적 진보가 있을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수단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화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즉, 이번 미사일 발사 시험은 앞으로 또 다른 ICBM 발사 시험이나 6차 핵실험 등의 추가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 정보 당국은 9월 9일 북한 공화국 창건일에 군사 도발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 도발이 무엇이든 간에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더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북한의 이러한 행보는 북미 간의 ‘강대강’ 국면을 조성해 우리 정부의 대북 개입 여력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우려를 더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일본의 대북 독자 행보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가능성이 커보이진 않지만, 이미 아베 신조 총리의 방북설이 일본 정가에 떠돈 지 상당 시일이 지났다. 이 주장의 근거는 아베 신조 총리가 최근까지 가케학원 문제 등 사학스캔들에 연루돼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은 상태라는 것이며 7월 도쿄도의회 선거 이후 고이케 유리코라는 대중적 대항마까지 부상한 상태에서 국면전환을 위한 나름의 수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아베 신조 정권의 대응태세를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정치적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일본의 최고 권력이 납북자 문제를 고리로 한 대북접근을 통해 대내외적 위기를 벗어나려고 시도한 게 지금껏 없었던 일은 아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과거 자민당 간사장 대행 시절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동행한 적도 있다.

보수언론은 현 국면 타개를 위해 미국 일본 등과 대응 수위를 맞출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이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방책이야말로 ‘코리아패싱’을 자초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청와대가 지난 26일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두고 ‘방사포’로 추정된다고 발표한 것도 마찬가지다. 보수언론의 주장대로 여기에 어떤 ‘의도’가 실렸다면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미국의 대응에 발맞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도발을 자제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당근’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이 자각해야 할 것은 북한, 미국, 일본에 최근 내부권력 투쟁으로 정신이 없는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들 중 대북문제에 대해 남한 정부가 제 목소리를 내기를 원하는 집단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따라가는 바둑’으로만 일관하는 건 주변국들이 원하는 대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국면을 자초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대화냐 제재냐를 양자택일하는 문제가 아니라 상황을 우리 의도대로 이끌 수 있는 ‘개입’이 필요하고 지금으로서는 그 수단이 대화 제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 미국의 대응에 수위를 맞출 것을 주장하면서 바로 그 행보의 결과인 ‘코리아패싱’을 근거로 정부를 비난하는 이율배반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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