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회동을 갖고 외교·안보 사안 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소식이다. 극중주의를 표방하겠다던 안 대표가 사실상 '보수'로 정치적 좌표를 잡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오전 안철수 대표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찾아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안 대표와 홍 대표는 특히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 대표가 "안보위기, 경제위기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면서 오늘 아침에도 북한이 저렇게 도발하고 일본까지 뒤집어 놓았다"고 말문을 열자, 홍 대표는 "안보위기에 경제위기까지 전부 겹쳐있는데 이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사법부까지 좌파코드로 바꾸려는 것"이라면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야당이 함께 힘을 합쳐서 이 정부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 저희들이 국민들에게 할 수 있는 도리"라고 화답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오른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연합뉴스)

홍준표 대표가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운전자론'을 들고 나와서 제가 아침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면서 "미국, 일본, 북한도 외면하는 상황에서 자기 혼자 운전하겠다는 모습이 레카차에 끌려가는 승용차에서 혼자 운전하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안보정책을 바꿨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밝히자, 안철수 대표는 "외교·안보가 아주 우려스럽다"면서 "코리아패싱이 실제로 일어나면 안 되지 않나"라고 답했다.

이에 홍준표 대표는 "코리아패싱이 아니라 문재인패싱"이라고 강조하자, 안철수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채널을 동원해서라도 외교적인 협력들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면서 "그런 일이 있으면 국가적으로 아주 큰일"이라고 우려했다.

홍준표 대표는 "앞으로 우리 안철수 대표님 자주 모시겠다"면서 "대선 때도 우린 별로 싸운 일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 자주 모시면서 의견 조율해서 이 정부가 폭주기관차 같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고, 안철수 대표도 "함께 여러 가지 사안들을 앞으로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안철수 대표와 홍준표 대표의 외교·안보 분야 의견 일치는 안 대표가 지난 대선 당시 경제는 진보, 외교는 보수라고 발언했던 것과 일치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안 대표가 사실상 극중주의가 아닌 보수 노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냔 우려가 제기된다. 진보 성향이 강한 호남 의석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이 보수의 방향을 추구하는 것은 민심 이반이란 지적이다.

안철수 대표의 이러한 움직임은 선거에서 사실상 유권자들이 진보와 보수의 양자택일을 강요 받는 상황에서 중도가 설 자리가 좁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프랑스를 강타했던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돌풍이 한국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럽대륙의 선거제도는 대체로 비례성에 원칙을 두고 있어, 국민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권자의 소신에 따른 투표가 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따라서 중도가 설 자리가 넓다.

반면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이나 미국, 일본 등에서는 오직 '1등'만 선택 받는 선거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 양극단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실제로 지난 4·13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중도를 표방하며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앞서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호남을 제외한 지역구 의석은 거의 배출해내지 못했다.

즉 안철수 대표가 이러한 한계를 절감하고 보수 쪽으로 정치적 좌표를 이동시킬 가능성이 있다. 과정이야 어쨌든 국민의당은 결과적으로 따져봤을 때, 내부 개혁세력의 의사와는 별개로 '탈청년', '탈호남'의 길로 향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존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에서의 지지율은 10% 안팎에 그치고 있고, 청년들의 지지율 하락도 심각한 상황이다.

자유한국당과 벌이고 있는 '바른정당 쟁탈전' 역시 이러한 지적에 힘을 실어준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바른정당과의 선거연대를 염두에 둔 포석을 깔기 위해서는 결국 안철수 대표가 우클릭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엄경영 데이터앤리서치 소장은 "안철수 대표가 과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얘기했다"면서도 "안 대표가 중도개혁노선을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도보수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안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 제3의 길인데, 국정감사와 외교·안보 갈등 상황으로 비춰봤을 때 연말연초에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국도 심리적으로 중도가 존재하지만 선거 때는 중도 돌풍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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