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돌아왔다. 대선 패배 후 넉 달 만에 열린 국민의당 전당대회를 통해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것. 안철수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51.09%의 득표율로 과반수를 넘기며 경쟁을 벌였던 정동영, 천정배, 이언주 의원 등을 가볍게 따돌렸다. 대중의 관심이 없었다는 점만 빼면 역시나 국민의당의 스타는 안철수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대선 2위와 3위가 모두 당대표라는 감투를 쓰고 정치전면에 복귀한 흔치 않은 기록을 쓰게 됐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당 대표라는 자리는 대단히 무겁다. 안철수 신임 당대표는 27일 취임 일성으로 대여 투쟁을 다짐했다. 안 대표는 “광야에서 쓰러져 죽을 수 있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제2창당의 길, 단단한 대안야당의 길에 나서겠다”면서 “우리의 길은 철저하게 실력을 갖추고, 단호하게 싸우는 선명한 야당의 길”이라며 대여투쟁을 선언한 것.

국민의당 안철수 새대표가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임시전국당원대표자대회에서 새대표로 선출된 뒤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안철수 대표의 대여투쟁 선언은 여전한 형식적 발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으로 언급한 ‘선심과 무능’은 기자들은 열심히 받아 적을지 몰라도 국민은 듣자마자 외면할 워딩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들 지지가 압도적인데 이런 상황에서 선명한 대여투쟁은 효과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딱히 이렇다 할 전략이 없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 이미 다 해보고 안 된 ‘대여투쟁’을 똑같이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실망일 수밖에 없다.

이번 국민의당 전당대회의 키워드는 두 가지로 추릴 수 있다. 하나는 안철수 신임대표의 선출이고, 다른 하나는 흥행실패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대통령 후보 경선 때는 10만이 넘는 득표를 얻었던 안철수 대표가 이번에는 고작 3만 표도 얻지 못했다. 그러고도 과반을 넘긴 초라한 전당대회의 흥행부진은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고민일 것이다.

그런 마당에 신임 당대표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은 아마도 다시금 사과였을 것이다. 그간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다 내려놓겠다”고 할 때에는 내려놓을 것이 없었다. 사과를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 떠돌았다. 이제는 내려놓을 것도 생겼다. 그만큼 말의 무게감이 달라진 것이다.

그만큼 당 고위층이 개입된 대선조작은 심각한 것이었고, 국민의당이 줄곧 지지율 꼴찌에 갇히게 된 결정타였다. 어디 그뿐인가. 국민의당은 그 외에도 이런저런 막말 논란에 시달려왔다. 그런 국민의당을 이끌어갈 새로운 선장이 된 안철수 대표에게 요구되는 것은 먹히지 않는 대여 투쟁이 아닌 땅에 떨어진 신뢰를 최소한이라도 회복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신임 대표가 28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제1차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후에 ‘선명하고, 단단하게’ 정부·여당과 싸우는 것은 말릴 이유가 없다. 안 대표는 수락 연설에는 정부·여당을 ‘적진’으로 표현할 정도로 날이 서있었고, 연설 안에 ‘싸움’이나 ‘싸우겠다’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그간 안철수 대표가 보인 야당으로서 정부·여당를 대하는 방법을 보면 잘 싸울 거라는 기대가 크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야당들이 보인 대로의 싸움이라면 안철수 대표도 못할 리는 없다. 그저 아무 말, 험한 말이나 하는 것이 야당의 싸움기술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인기와 지지율이 하늘을 찌를 듯한 상황에서 그런 식의 싸움걸기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다.

안철수 대표에게 내년 지선은 당대표로서의 자질과 영향력을 확인하는 시험(혹은 시련)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한 호남과 수도권 어디든 투쟁을 앞세운 전략으로 표를 얻기는 힘들다. 그만큼 국민의당의 입지가 줄어든 것이다. 동아일보 기사 제목이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싸우겠다" 11차례 외친 안철수.. 5%대 黨지지율 회복이 첫 숙제>. 지지율 5% 회복이 숙제라는 것은 듣기에 따라서는 심한 굴욕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조사기관에 따라 이미 5%를 넘어서기도 했다. 억울할 수도 있지만 항변하기도 궁색하다. 또한 언론환경도 전과 같지 않다. 그래도 대선지지율 21.4%를 믿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 역시 '신뢰회복부터'일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