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김생민 슈퍼 울트라 그레잇~ <김생민의 영수증> (8월 19일 방송)

지상파 프로그램에 편성된 최초의 팟캐스트 방송. 예능 최초 15분 편성. 지난 19일 방송된 KBS2 <김생민의 영수증>에는 최초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그러나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장 붙이고 싶은 곳은 바로 ‘김생민’이다.

KBS 2TV <김생민의 영수증>

그동안 경제 관련 프로그램은 대개 전문가가 출연해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거나, 혹은 전문가가 의뢰인의 자산을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즉, 경제 관련 지식을 전달하는 주체는 전문가였다. 15년 된 넥타이와 7년 된 와이셔츠를 입고 출연한 “돈 안 쓰는 게 취미”인 김생민은 그 어떤 자산전문가보다 믿음이 가고, ‘무릎팍도사’ 강호동보다 더 시원시원했다. ‘통장을 쪼개라’ 같은 빤하고 포괄적인 정보가 아니라 특정인의 영수증이나 카드 내역서를 받아 분석한 뒤 1:1 맞춤형 재무상담을 해주는, 예능도 아닌 교양도 아닌 아주 독특한 경제예능 프로그램이다.

김생민은 늘 연예인을 빛나게 해주는 리포터 역할에 머물렀지만, 이 방송에서만큼은 나홀로 찬란하게 빛나는 주인공이었다. 명쾌한 솔루션은 기본 탑재했고, ‘스튜핏’과 ‘그레잇’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는 센스와, 15분이 아니라 15시간도 들을 수 있게 만드는 입담도 겸비했다.

KBS 2TV <김생민의 영수증>

첫 회의 의뢰인은 5년 안에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인 ‘허니문 베이비 새댁’이었다. 시아버지 소유 건물에 거주하고 있다는 여성의 사례를 들은 김생민은 “월세나 대출 이자는 나가지 않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만나고 있다”면서 무시무시한 시월드에 공감을 해줬다. 그러면서도 “시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하고 5천만 원을 빌립니다”라면서 김생민만이 할 수 있는 재치 있는 솔루션까지 제공했다.

김생민만의 힘이 발휘되기 시작한 순간은 영수증 내역 분석이었다. 군인 남동생의 화장품 구매 내역에 대해서는 “누나 마음 스튜핏”이라고 운을 뗀 뒤, “남자들은 얼굴에서 기름이 나오기 때문에 화장품을 쓸 필요가 없다. 난 아이들이 쓰다 남은 보습제를 짜서 물을 섞은 다음에 바른다”고 개인적인 노하우까지 전수했다.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을 위한 작은 사치인 웨딩 네일도 김생민의 눈에는 “스튜핏”이었다. “제가 결혼식 사회를 많이 보는데, 결혼식 입장할 때 장갑을 끼지 않느냐”면서 차마 반박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했다. 김숙이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예쁜 발이 필요하다”면서 신부를 두둔하고 나섰지만, “돈을 모으겠다는 절실함이 있다면 와이키키 해변에서 남편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모래 안에 발을 살짝”이라는 김생민의 솔루션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KBS 2TV <김생민의 영수증>

당근과 채찍의 경계도 매우 확실했다. 허니문 베이비 확인을 한 산부인과 영수증 내역에서는 무한 축하인사를 건넸지만, 다음 날 문구점에서 아기 피규어 인형 구입 내역에 대해서는 마냥 채찍을 던지기보다는 “그 심정 이해된다 스튜핏”이라며 한 발 물러선 강도 낮은 채찍을 선택했다.

단순히 낭비가 심하다, 절약을 해라, 같은 수준의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개그콘서트>보다 훨씬 재밌는, 적재적소의 ‘스튜핏’과 ‘그레잇’이 <김생민의 영수증>을 또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다. 이처럼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경제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김생민은 슈퍼 울트라 그레잇!

이 주의 Worst: 탁재훈이 위험하다 <라디오스타> (8월 23일 방송)

탁재훈을 소개할 때 “출연해도 별 영양가 없다”는 김구라의 촉이 정확했다. 정말 영양가 없는, 아니 영양가를 따지기조차 힘든 위험 발언들만 쏟아냈다. ‘독할수록 재밌다’는 <라디오스타>의 특성과 ‘내 농담은 무조건 웃겨’라는 자신감이 만나, 굉장히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낸 경우다. 독한 것과 위험한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인데도 말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

첫 번째 발언은 보호와 출산의 상관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시작은 쿨 유리의 오빠보호 시스템이었다. 혼성그룹의 홍일점이었던 유리는 서른이 될 때까지 오빠들의 보호 탓에 회식이나 연예인 모임에 참석할 수가 없었고, 서른이 넘어서야 백지영, 이지혜, 채리나 등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은 탁재훈은 “그렇게 보호해줬는데, 보호 안 했던 여자(백지영)보다 더 애를 잘 낳았다”고 받아쳤다.

탁재훈의 말에 따르면, 남자들의 보호를 받았던 여자는 아기를 적게 낳아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아기를 많이 낳는 것은 보호받지 못한 행동, 즉 순수하지 못한 행동이라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출산이 탈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가. 불쾌했지만, <라디오스타> MC와 진행자 중 누구도 불편한 기색을 비추지 않았다. 오히려 깔깔대며 웃어 넘겼다.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

두 번째 발언은 김구라조차 제지할 만큼 위험했다. 백지영과 유리를 향해 “놀아본 여자들이 결혼을 잘하는 것 같아”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한 것이다. 김구라가 탁재훈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런 얘기 위험해”라고 제지를 했지만, 정작 본인은 위험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이게 그렇게 위험한 얘기인가”라는 반박을 시작으로, “이게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얘기입니까?”라고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럼 목숨 걸고 얘기할게요”, “이러면 토크쇼를 누가 해”라며 굉장히 뒤끝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김구라가 어떤 발언을 하든 “위험해”, “조심해”라고 토를 달았다. 어른다운 반박이 아니라 생떼에 가까웠다. ‘난 꼭 이렇게 말하고 싶으니까 아무도 말리지마’ 같은 투정.

언뜻 듣기엔 탁재훈의 말처럼 ‘이게 왜 위험한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천천히 한 번 더 곱씹어보면, 탁재훈이 평소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스란히 알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런 얘기를 못하면 누가 토크쇼를 하냐고요? 그런 얘기 하지 않고도 빵빵 터지는 토크쇼 많습니다, 탁재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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