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는 영화 제목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변용하여 ‘죽은 창작뮤지컬의 사회’,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죽은 대형 창작뮤지컬의 사회’라고 시니컬하게 표현하는 게 맞을 듯싶다. 같은 스테디셀러 뮤지컬, 초연보다 재연의 진화가 두드러진 과 같은 성공적인 창작뮤지컬은 중소형 뮤지컬이다.야심차게 기획한 나 과 같은 좌초 사례, 아니 2000년대를 풍미했던 대형 창작뮤지컬들이 뮤지컬로 재연되지 못하는 사례를 열거하다 보면 요즘 같은 시기에 창작뮤지컬을 만든다는 건 라이선스라는 대형 공룡에 맞서는, 가히 ‘독립운동’에 가까워보인다.하지만 이렇게 대형 창작뮤지컬이 말라죽어가는 걸 막아준 단비 같은 뮤지컬이 이전 작년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우리에게 익숙한 각설이 타령의 주인공 품바가 대학로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 품바는 다름 아닌 이재은. 이재은이 누구던가. 우리 소리를 공부한 재원일 뿐만 아니라 장충체육관이라는 넓은 무대에서 종횡무진 관객을 사로잡던 의 주인공 아니던가.이번 품바는 남자배우가 아닌 여성 배우가 품바를 도맡는다. 이전 품바와는 달리 여성성이 강조되었다. 어떻게 남편을 만나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를 갖게 되지만 행복한 시간은 잠깐, 한 많은 여인의 삶이 흥겨움 뒤에 녹아드는 이야기로 기존의 남자 배우가 보여주었던 품바와는 특별한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조수가 아닌 배우가 직접 우리 가락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극
6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유니플렉스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배우 이대연이 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원종 배우가 공연 끝날 때까지 술 사준다고 꼬셨다”고 폭로했다.를 통해 프로듀서에 데뷔하는 이원종 역시 “배우 분들이 술을 좋아한다. (술 사준다는) 미끼를 던지자마자 낼름 받았다”며 배우들을 섭외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없었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이는 이대연 배우의 폭로(?)에 대해 웃자고 한 화답으로 이원종은 “40여 년간 뿌려놓은 인간관계 덕”이라고 덧붙였다. “어제(5일) 저녁 리허설 후 눈물이 핑 돌았다”는 이원종은 “서이숙 씨가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에 울음이 섞였다”며 “관객이 이 연극을 어떻게 평가할지, 이
개막 전부터 이 화제몰이를 했던 이유는 충분했다. 단기간도 아닌 8년이라는 긴 준비 기간, 김다현이 그가 연기하는 보이첵마냥 실제로 완두콩을 먹으며 바싹 야위어가는 모습은 이슈몰이를 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마치 김명민이 를 연기하기 위해 바싹 말라가던 것처럼 우리의 ‘꽃다현’은 측은하게 생각될 정도로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세계에서 을 뮤지컬로 만든 사례가 전무한 만큼, 인간소외를 극대화한 게오르그 뷔히너의 작품이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기대 또한 컸다.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은 ‘소문 난 잔칫상에 먹을 것 없다’는 옛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실감나게 만들었다. 우선 뮤지컬과 연극의 차이점에 대해 짚어보아야겠다. 연극은 객석에 날 것 그대로를 전달하는
성근(설경구 분)은 후배들에게조차 배역을 빼앗기는 실력 없는 무명 배우다. 하지만 입이 무거울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지도자에게 리허설용 배우로 발탁된다. 성근의 배역은 바로 김일성. 김일성의 ‘김’ 자도 못 본 그는 연기론을 가르치는 교수와 주사파 학생에게 김일성의 사상과 몸짓, 사고방식을 체득하며 자기 자신보다 김일성의 모습과 가까워지게 된다.어떻게 보면 성근의 자의식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만큼 옅은 게 아니었나 생각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성근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자신이 김일성이라고 믿게 만드는 건 그가 메소드 연기에 천착해서가 아니라, 무대에서 못다 이룬 연기의 한을 이번 리허설용 배우로 갚겠다는 성근 본인의 의지와 연관된다.하지만 성근이 자신의 정체성
‘레드카펫’이라는 제목 때문에, 잘 나가는 스타 은수(고준희 분)를 에로영화가 아니라고 꼬드겨 놓고는 약속과는 달리 에로영화를 만드는 에로영화 제작기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는 필자의 오해였다. 어느 배우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 ‘에로’라는 두 글자를 떼기 위해 에로 외의 다른 영역으로 무던히 진출을 시도했지만, 그럼에도 ‘에로배우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고 한다. ‘에로’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어느 배우처럼, 에서 윤계상이 연기하는 정우는 에로 영화만 전문으로 만드는 감독이 되고 말았다. 에로영화 외의 다른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아보고는 싶지만 항상 그에겐 에로영화만 주어지는지라 ‘정우=에로영화 전문 감독’이라는 공식이 영화계에 자리하게 된다.
월남에 스키 부대가 있을 턱이 없다. 연중 내내 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덥고 습한 나라가 베트남 아니던가. 하지만 필자의 대학생 시절 다섯 학번 위 선배는 월남 스키부대 이야기를 선배 누나들의 배꼽을 또르르 굴러 떨어뜨릴 만큼 천연덕스럽게 해대곤 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필자의 대학생 시절을 되돌아보게, 아니 다섯 학번 위 선배를 생각나게 하는 연극이 대학로에 찾아왔다. 연극 다.이한위가 연기하는 김노인은 ‘뻥생뻥사’, 뻥에 살고 뻥에 죽을 만큼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다. 베트남에는 스쿨버스가 아니라 15미터짜리 ‘스쿨 구렁이’가 있다고 한다. 이 구렁이를 타고 어린이 15명이 등교한다고 김노인은 이야기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노인은 월남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면서 새참도 해
올해는 ‘프랑켄슈타인의 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영화에 이어 올 하반기에는 연극이 선을 보였다. 마치 2012년 영화와 뮤지컬로 쌍끌이 흥행을 보여준 의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반복되는 듯하다.예술의전당과 연극열전이 손을 잡고 제작한 야심작 은 창작물은 아니다. 드라마 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 해외 작품(우리나라에서는 으로 관람할 수 있다)을 들여와서 무대 위에 올렸다. 하지만 영국 원작을 고스란히 답습한 레플리카 방식의 연극이 아니다. 일정 부분 각색한 ‘논 레플리카’ 공연이다. 연극은 괴물의 탄생 과정을 묘사하지 않는다. 시체를 이어붙이는 괴물의 창조 과정, 혹은 새로운 생명을
배우 박정자가 50년 넘게 연극하면서 단 한 해도 연극을 거른 해가 없다고 밝혔다.15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민가다헌에서 열린 박정자 낭독 콘서트 기자간담회에서 박정자는 “쉬엄쉬엄하지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죽으면 쉴 텐데”라며 “연극배우는 운동선수와 똑같다. 공연을 준비하며 훈련을 반복한다. 쉰다는 건 제 사전에 없다”면서 “공연 연습이 없을 때처럼 시간이 비면 주체하지 못한다”라고 연극이라는 한 우물을 위해 50여 년 동안 성실하게 달려왔음을 시사했다. 박정자 낭독 콘서트는 기존 콘서트와는 다르다. 박정자 낭독 콘서트 은 소설가 김별아의 작품을 원작으로 조선의 여섯 번째 왕 단종의 아내였던 정순왕후의 기구하고 애달픈 사연을
재작년 한국 뮤지컬계에 황실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일등공신이 둘 있었다. 하나는 이요 다른 하나는 로, 는 의 스핀오프 격인 뮤지컬이다. 은 루돌프 황태자의 어머니 엘리자벳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2막에서 엘리자벳이 아버지와 치열한 대립각을 펼치다가 어머니보다 먼저 유명을 달리한다는 설정이 등장한다.는 의 2막에서 잠깐 선보인 아들 루돌프의 사연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의 스핀오프 뮤지컬이다. 어머니에 이어 아들 역시 합스부르크 황실에서 어떻게 비극적인 삶을 이어가는가 하는 대를 잇는 비극의 스토리로서 말이다. 궁정에서 살지만 황실이 감옥이 되는 딜레마를 과 두 뮤지컬은 보여
무용은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라는 인식이 강한 게 사실이다. 연극이나 뮤지컬이라면 넘버나 대사로 전달해야 할 몫을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장르가 발레 혹은 무용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무용의 의사전달 방식은 해석의 여지도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을 내포한다. 넘버나 대사는 중의성을 내포하지 않는 한 관객이 해석할 여지가 줄어듦에 비해, 몸짓 언어는 관객이 무용수의 몸짓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폭넓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필자가 분석하는 역시 절대적인 해석이 아니라는 의미다. 필자의 옆에 앉은 관객은 필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무용수의 다른 몸짓을 보고 얼마든지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필자는 를 ‘인간 소외’를 피력하는 무용으로 바라보았다. 2막에서 한 남자 무용수는
심리학에 ‘인정 욕구’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존재한다는 개념으로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특히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자녀에겐 부모로부터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정 욕구가 마음 한편에 자리잡게 된다.가령, 학교에서 백 점의 점수를 받아 부모에게 잘했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청소년이 있다고 치자. 만일 자녀가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점수를 바라는 기대치가 높은 부모를 가졌다면 그 청소년은 부모에게 잘했다고 인정받기는커녕 왜 전교 등수는 이것밖에 받지 못했느냐고 핀잔 받을 가능성이 높다. 노력은 하지만 부모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탓에
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만드는 기적 하나를 믿고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푸른 바다에 던진 효녀의 이야기로 포장되었지만, 아버지 심학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면 눈을 뜨고 싶은 욕망에 딸을 희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아버지의 탈을 뒤집어 쓴 옴므파탈’에 다름 아니다. 후자의 관점으로 을 읽는다면 뺑덕어멈이 심학규에게 악행을 가하는 것을 인과응보로 읽어볼 수 있다. 딸에게 바다에 투신이라는 못할 짓을 하도록 만든 나쁜 아버지가 받는 인과응보이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에서 심학규의 욕망의 희생양은 원전의 심청이 아니라 ‘뺑덕어멈’ 캐릭터 덕이(이솜 분)로 치환된다. 이 심학규의 딸 심청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은 뺑덕어멈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단짝친구 릴리(다코타 패닝 분)와 제리(엘리자베스 올슨 분)에게 문제가 있다면 한 남자와 동시에 사랑에 빠졌다는 점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삼각관계 이야기라는 것인데, 삼각관계의 문제는 두 이성에게 동시에 사랑을 받는 한 이성은 둘 중 하나에게만 사랑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릴리와 제리의 우정이 삐그덕대는 상태에 빠지는 것도 알고 보면 한 남자에게 모두 사랑을 받을 수 없어서다. 두 여성이 좋아하는 한 남자가 폴리가미의 가치관을 가지지 않은 이상, 아니 릴리와 제리가 두 남자에게 한꺼번에 사랑을 받는다 해도 둘 중 하나가 다른 친구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아야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모노가미의 동물이고, 질투를 느끼는 동물이기에 좋아하는 이성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
정재헌은 에서 1인 3역을 소화한다. 극 중 차민준은 사내연애 금지령이 떨어졌음에도 전지현(김현진, 홍지민 분)과 몰래 연애를 하는 연하남이다. 항상 활발한 적극남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그다지 실속이 없는 남자다.차민준만 연기하는 건 아니다. 오정석은 세울대 연구원이다. 오정석은 극 중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박사에게 사기를 당한다. 한데 오정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인공에게 사기를 쳐서 이혼보험을 만드는 데 있어 걸림돌 역할을 한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사는 남자 역할도 맡는다.1인 3역의 멀티 연기를 맡는 셈.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국정원 요원이나 테러리스트처럼 강렬한 연기를 펼쳤던 정재헌이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박상원이 연기하는 천재 작가 에드워드 담슨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 그의 배다른 아들 필립은 아버지의 전기를 완성하기 위해 생전의 아버지가 마지막을 한 그리스 티라 섬을 찾는다. 아버지의 아내인 헬렌을 찾아가서 아버지의 행적을 캐묻는 가운데서 필립은 아들인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행적을 퍼즐 맞추듯 짜맞춰 간다. 아들 필립이 28년 동안 살아오면서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행적을 되살리며 아들은 차츰 경악하기에 이른다. 아들은 아버지의 어떤 모습 때문에 경악하는 것일까.을 집필한 피터 쉐퍼의 작품 가운데에는 ‘초월자’를 표상하는 작품이 많다. 에서 알런과 질의 육체가 마굿간에서 뜨겁게 접촉하려고 할 때 알런에게만 들리는 환청은 환각이자 동시에 남녀 사이의 교접을 간섭하고 통제해오던 중세
여기, 아내가 깎아주는 시큼한 사과가 먹기 싫어 밤에 사과를 먹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어깃장을 놓는 남자가 있다. 하지만 아내는 어떡하든 남편에게 사과를 먹이려고 애를 쓰고, 이 과정에서 옥신각신 큰 소리가 난다. 여느 여염집의 부부가 보여주는 일상의 풍경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강신일이 연기하는 남편 장만호는 운이 좋은 남자다. 그토록 짝사랑하던 하숙집 주인 딸 심숙자와 결혼에 골인하고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좋아하던 이성과 만나 결혼해도 페닐에틸아민, 쉽게 말해 귓가에서 사랑의 종소리가 울리게 만드는 호르몬이 증발하고 나면 뜨겁게 타오르던 사랑의 자리에는 사랑의 흔적만이 남게 된다.장만호-심숙자 커플도 마찬가지다. 뜨거웠던 청춘의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페닐에틸아민이
동화 속 여성은 사랑하는 남자와 인연으로 맺어지기 전까지 갖은 고난을 겪는다. 심지어는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고는 죽음의 문전에 노크할 정도로 생명을 위협받는 지경에 다다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평생의 인연을 맺는 순간부터 그녀를 둘러싼 모든 고초는 눈 녹듯 사라지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미사여구로 선남선녀의 남은 인생을 압축하여 표현한다.의 초반부는 이런 동화의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돈을 벌기 위해 반 호퍼 부인으로부터 다양한 모욕적인 언사를 겪어야 하는 ‘나’는 맥심을 만나면서부터 인생 역전이 시작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잣집 킹카’ 맥심을 만남으로, 비루했던 인생과는 영원히 작별을 고하고 동화 속 여주인공처럼 평생을 행복하게 살 일만 남은 신데렐라 이야기로
송은채의 연기 인생에서 의 은희는 파격적인 연기 도전이다. 동안 이미지 때문에 줄곧 나이 어린 역할을 연기해왔지만, 의 은희는 대학 교수와 동거할 뿐만 아니라 성에 개방적인 역할이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파격적이지만 그의 실생활은 정반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송은채는 촬영이 없는 날에는 통행금지 시간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하는 모범생의 삶을 산다고 한다.대개의 여배우는 나이 드는 걸 싫어한다. 배역이 한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은채는 반대였다. 그는 푸근한 엄마나 매력적인 중년 여성을 연기하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빨리 스타가 되는 것보다는 꾸준히 사랑받는 연기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낄 수 있었던 건 그가 무소의 길을 걷는 연기자라는 느낌이었다. 치타처럼 빨리 정
20년 전에 조로는 민중을 억압하던 독재자를 물리친 적이 있었지만,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못한 탓에 사람들은 다시금 라몬이라는 독재의 마수에 단단히 얽혀들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가면을 쓴 영웅 조로가 나타나기를 다시금 바라는 건 독재의 사슬에서 민중을 구해줄 구원자를 기다린다는 거다. 동시에 민중을 억압하는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히드라의 머리처럼 다른 독재자가 새롭게 나타나 민중을 억압한다는 점도 시사한다.하지만 조로가 쉽사리 나타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동선수도 30대에 접어들면 은퇴를 바라볼 나이인지라,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조로가 나타난다 한들 40대 혹은 50대 중년의 나이로는 독재자로부터 대중을 구할 방법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자신들을 구해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