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 ‘오랜만에’ 탤런트 고 장자연씨 자살 사건을 대서특필했습니다.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다음날인 지난 25일이었습니다. 1면 사이드 기사와 함께 8~9면을 털고 사설까지 동원해 도배를 했습니다. 그 많은 내용 가운데 7할이 조선일보의 “자사 특정 임원”과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언론들이 ‘○○일보 ○ 사장’이라고 표기해왔던 바로 그 인물 말입니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자사 특정 임원”이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한 차례도 스트레이트 기사로 보도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자기네가 국회의원 아무개 아무개와 일반시민 아무개 등을 고소했다는 기사나, 자사 임원에 대한 터무니없는 모함인 게 밝혀지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할 것이란 경고성 칼럼(김대중 고문 ‘조선일보의
의 입소문이 하도 자자하기에 나도 한 번 들어봤다. 관객 천만이 넘는 영화는 부러 피해가고, 그래서 독립영화계의 블록버스터라는 도 언제 볼지 기약할 수 없지만, 장기하의 노래는 돈 한푼 안 들이고 인터넷 검색으로 단 몇분이면 들어볼 수 있으니, 무슨 결벽증이 아니고서야 안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결심한 게 앨범 발매 근 두 달 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듣는 것도 저작권 침해인가? 별일 없겠지?)들어보니 귀는 그다지 즐겁지 않고, 다만 키치적 가사가 재미있었다. 이걸 송창식이 불렀던 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봐도 되나 모르겠다. 둘다 반어적 가사이긴 한데, 송창식은 절규하는 듯하면서도 하회탈 같은 눈웃음을 치고, 장기하는 무표정에 하품하듯 읊조리다 버럭 소리를
앵커와 아나운서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은 웬만해선 대놓고 하지 않는, 그렇다고 웬만해선 딱 부러지게 답을 알고 있지도 않은 질문이다. 가장 간명하게 설명하자면, 앵커는 ‘업무’이고 아나운서는 ‘직종’이다. 앵커는 기자가 하기도 하고 아나운서가 하기도 한다. 개국 초 SBS는 영화배우가 하기도 했다. 아나운서는 방송사의 채용직종, 즉 기자, 피디, 기술, 행정 같은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까 앵커와 아나운서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교사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앵커는 뉴스 진행자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진행’이다. 정해진 뉴스 꼭지를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건 ‘진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앵커에게는 뉴스 읽기 이상의 역할(또는 권한)
얼마 전 피맛골 어느 술집에서 인권변호사인 정정훈 변호사와 저녁도 거른 채 파전 한 장 앞에 놓고 소주를 마셨다. 몇 번 소줏잔을 부딪치고 나자 대화 주제가 장자연 리스트의 ‘○○일보 ○ 사장’으로 넘어갔다. 는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발언 부분에 대해서는 ‘○○일보 ○ 사장’으로 보도했고, 조선일보사가 이종걸 의원에게 공문을 보낸 행위 등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사’ 이름을 적시했었다. 앞서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피의자의 이름은 ‘강○○’이란 표기를 끝까지 지켰다. (▷유영철 사건 비사로 돌아본 ‘얼굴공개’) 정 변호사는 미디어스의 ‘일관성’을 높이 샀으나 나는 고민이 깊었다. 강○○ 보도 때는 ‘잘난 체한다’고 욕을 먹었는데 이번엔 ‘비겁하다’고 욕을 먹고 있다. 조선일보사의 발빠른 ‘반응’이 없었
시사주간지 기자는 마감에 임박해 터지는 대형 사건에 취약하다. 일껏 다 만들어놓은 표지이야기가 쓸모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돈 받은 사실을 시인한 직후다. 닷새 뒤쯤 배포될 글인데, 이럴 땐 무엇보다 글감 잡는 게 가장 힘들다. 노 대통령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없지만, 그때 가면 이미 상황이 많이 바뀌어 있을 테니 말이다.시사 현안을 다루는 글쓰기는 이처럼 ‘시의성’이라는 결정적 변수와 씨름한다. 하지만 시의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언론이 새로운 사건을 모두 낯설게 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건들을 유형화하고, 정해진 틀에 맞춰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이 돈 받은 사실을 시인한 날 방송3사 메인뉴스의 관련 꼭지 구성은 거의 같았다
김미화씨가 MBC 라디오 (이하 김미화의…)에서 하차할 거라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대표이사 추인만 남은 단계라고 한다. PD들의 반발이 거세다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니, 달리 구구한 이유를 들어볼 것도 없다. PD들의 반발 행태 자체가 김미화씨를 교체하면 안 되는 이유를 곧바로 지시하고 있다. 개그우먼 라디오 진행자 한 사람의 교체 문제를 놓고 대형 방송사 PD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는 사태를 그녀의 ‘독보적 가치’ 말고 도대체 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그녀의 자화자찬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보다 더 명징하게 입증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은 MBC 전체 라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시인해 파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은 성격상 ‘투자’라며 자신과의 관련설을 부인했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7일 오후 3시 28분경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렇게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지금 정상문 전 비서관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이라며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이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노 전 대통령은 “더 상세한 이야기는 검찰의 조사에 응하여
박연차 리스트가 춘삼월 여의도를 얼어붙게 하고, 장자연 리스트는 연예계가 아닌 신문·방송계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른바 ‘리스트 정국’이란 시간의 단면을 포착한 삽화 같지만, 서사적 맥락 위에 놓고 보아야 제대로 읽히는 내러티브다. ‘리스트’는 땅속에서 부글거리는 마그마 같은 것이다. 압력이 임계점을 넘으면 지각을 뚫고 용출한다. 리스트의 내용도 ‘있을 법한 개연성’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것일 따름이다. 땅밑에 언제나 마그마가 끓고 있는 것처럼. 모든 리스트에는 확연한 공통점이 있다. 등장인물이 정·관·재·언론계 따위 힘깨나 쓴다는 직업군을 벗어나는 법이 없고, 거의 다 남성이라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 최대 성매매 조직을 운영했던 크리스티 데이비스의 고객 리스트도 상류층 남성 일색
춘래불사춘, 봄은 봄이되 또한 봄이 아니다. 따뜻해지지 않는 날씨만큼이나 요새 방송가의 풍경이 딱 그러하다. 광고는 곤두박질이고 언론 환경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주 혹은 이번 주부터 방송사들이 봄옷을 갈아입었다. 예년에 비해 특별한 건 많지 않다. 비용 절감이 강조되었지만, 딱히 그게 어떻게 편성에 방영됐는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장수 프로그램들에게 내려진 철퇴가 비감할 뿐이다. TV의 개편은 트렌드의 계기이고, 물갈이의 방편이고, 포맷의 모험이(어야 한)다. 주기적 시간표에 따라 프로그램의 드나듦을 결정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어야 한)다. 이번 개편에선 그런 뚜렷한 족적을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웠다. 확장시킬 의미를 찾기 힘
259일이면 날짜만으로도 경외롭다. 언론사(史)에서 견줘 앞설 만한 건 2001년 CBS 투쟁과 2004~2007년 희망조합(OBS) 투쟁 정도뿐이다. YTN 투쟁은 그 자체로 역사다. 대통령 특보가 사장으로 와서는 안 된다는 소박한 상식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길고 험한 싸움이 될 줄 알았다면 쉽게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다시 무거워지고 거듭 무거워진 다음 차츰 가벼워지는 걸 보며 계절의 변화보다 거친 시간의 흐름을 먼저 느꼈다. 그 시간에 쓸려 우는 모습도 많이 봤다. 따라 울진 못했지만, 그들의 기발하고 발랄한 투쟁전략과 전술은 드물게 나를 웃을 수 있게 했다. 고맙다. 많이 보고 배웠다. 그러나 기발하고 발랄한 투쟁도 칼날을 피해갈 수는 없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양재영 부장판사)는 2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된 노종면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장의 석방을 결정했다.재판부는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지고 고소가 취소된 점을 감안했다”며 보증금 3천만원 납부 또는 보증보험증권 제출을 조건으로 달았다.앞서 YTN 노사는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 과정에서 양쪽이 제기한 고소·고발을 취하하기로 합의했다.노 지부장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집에서 체포됐으며, 법원은 영장실질심사 뒤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24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나는 딸딸이 아빠다. 큰애는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둘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지난해 가을 온나라가 일제고사 문제로 떠들썩했지만 나는 용케 이 문제의 직접당사자가 아니었다. 지난번 시험에서 두 아이 모두 대상에서 제외됐다. 복받은 학부모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한 번 비켜갔다고 끝까지 요행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3월31일 강행된 일제고사에 둘째가 딱 걸려들고 말았다.나는 2주 전부터 둘째에게 일제고사 얘기를 꺼냈다.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녀석은 그런 시험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워낙 학교시험에 무심한 아이어서인가 보다 했다.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보더니 친구들도 모르고 있다고 했다. 내가 너무 일찍 얘기를 꺼낸 건가? 어쨌든 귀가 솔깃할 얘기를 해줬다.
기자가 구속되고 피디가 체포되는 작금의 사태를 두고 이들 직업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건 무척 한가해보이거니와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기자와 피디의 위상이 예전만 같지 못하대도, 그 때문에 이들이 체포·구속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반대로, 이번 사태가 전 사회적 반발을 부르는 것이 이들 직업의 높은 위상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인터넷에서는 (주로 댓글을 통해) 그런 공방이 오가고 있다. 기자·피디의 위상을 폄하하든 추켜세우든, 그들이 보통 직업인과는 달리 취급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액면으로만 보면 “어떻게 기자·피디를 잡아갈 수 있느냐”와 “기자·피디는 신분증에 금테라도 둘렀냐”는 서로 정반대의 물음 같지만, 물음의 구조로
5공 땐 한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대통령이 곧장 전화를 걸어 ‘국위 선양’을 치하했다. 방송은 그 장면을 생중계했다. 그 선수는 다시 ‘고국에 계신’ 부모와 통화에서 “어매야. 인자 고생 다했다”며 울먹였다. 물론 그 장면도 생중계됐다.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는 국제경기 중계방송 캐스터의 가장 격정적인 레퍼토리였다. 온 국민은 그때마다 열광했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명치끝이 뻐근해지곤 했다.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수백개의 금메달이 주인을 찾아갔지만, 외국 금메달리스트의 국적은 관심밖이었다. 당연히 그 나라의 국위가 우리에게 선양될 리 만무했다. 86년엔 멕시코 월드컵이 열렸다. 그전까지 난 한국 국가대표팀 ‘화랑’이 세계 최강인 줄 알았다. 월드컵 첫
이완기 전 울산MBC 사장이 26일 미디어오늘 사장에 취임했다. 미디어오늘은 이날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이 사장을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이 신임 사장은 1981년 MBC에 입사해 보도기술부(82∼91년), 기술연구소(91∼99년)를 거쳐 기술정책국 DTV추진부장(99∼2003년), 방송인프라국 부국장(2003∼2005년), 기술본부장(2005∼2008년), 울산MBC사장(2008∼2009년)을 지냈다. 이 사장은 MBC 노조위원장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97∼99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2001년) 등을 지내며 언론노동운동과 언론시민사회 단체에서 활동해왔다.
지난 24일, 전세계 120여개국 국가인권기구 협의체인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ICC)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앞으로 의장 명의의 공식서한을 보내, 한국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축소 계획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ICC는 한국 정부의 계획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과 효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인권위가 쌓아온 신뢰가 저하될 것을 우려했다. 결정적으로 한국의 A등급 승인을 재심사하고, 2010년 한국 인권위원회의 ICC 의장기구 수임을 무산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제적 망신을 톡톡히 사고 있는 셈이다. 한 때, 한국 민주주의는 경이의 대상이었다. ‘쓰레기에서 핀 장미꽃’이란 표현은 이를 집약하는 경외였다. 민주주의는 진행 중인가, 아니면 이제 그 표현도
지금까지 드러난 ‘박연차 리스트’에서 ‘추부길’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감당하는 상징성은 넓고도 깊다. 그의 이름은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검찰에게 ‘성역없는 수사’의 상징이다. ‘정권에 의한 표적 청부수사’라는 민주당의 B급 태풍 수준의 반발은 그 이름 앞에서 순식간에 열대성 저기압으로 수굿해지고 만다. 언론들도 참으로 오랜만에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죽은 권력뿐 아니라 산 권력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야 한단다. 검찰의 칼날이 여야 모두를 겨냥하고 있으니 달리 시비 삼을 수 없었겠다. 그러니 겨우 강도와 뉘앙스에 차이를 둘 뿐이다. 여기서 ‘추부길’은 언론의 정파성이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상징한다.‘추부길’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포트폴리오 로비’의 상징으로도 회자된다.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고 거절한 적이 있다. 나는 적임자가 아니었다. 그 사안에 대한 이런저런 배경설명과 함께 다른 인터뷰 대상을 소개해줬다. 그런데 그 방송사는 통화 내용을 녹음해 내가 인터뷰를 한 것처럼 방송에 내보냈다. 그 뒤로 나는 방송기자 전화라면, 잘 아는 후배일지라도 “지금 녹음하고 있느냐”부터 묻는다. 정식 인터뷰를 할 때도 반드시 “내 말을 몇 초로 쓸 건가” 확인한 뒤 딱 그 시간만큼만 말하고 끝낸다. 방송사가 임의로 내 말을 잘라 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다. 장자연이라는 여성 연예인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었다. 그의 죽음은 개별성에서 벗어나 그의 노동과 성을 착취한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나아가 거대한 남성 지배이데올로기를 폭로함
교육문제만큼은 정치논리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진보-보수 또는 서민-기득권층을 동시에 만족시킨 교육정책 사례가 없었던 우리 현대사 앞에서 머쓱하다. 교육문제는 정작 가장 정치적인 영역 가운데 하나다. 공공선의 문제이기에 앞서 미래 자원에 대한 분배의 문제이기에 그렇다. 한국사회의 교육 갈등이 유별난 것도 교육이 자원 분배의 핵심변수로 작동해온 여태까지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진보와 보수가 그 ‘과거’ 기억을 전혀 다르게 재구성하기에 ‘미래’의 분배 규범을 놓고 ‘현재’의 교육정책을 다투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최근 언론 보도는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었던 정책 분야 전반에서 극단적 찬반 대립이 빚어져온 것을 감안하면 언론의 이런 ‘쏠림’
방통심의위가 출범 1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지만 어느덧 ‘폐지’라는 말마저 식상해져 버렸다. 방통심의위는 조중동광고불매운동 관련 인터넷 게시물 58건에 대한 ‘삭제’ 결정에 이어 MBC PD수첩과 YTN의 블랙투쟁에 대한 ‘시청자 사과’ 결정을 내리면서 스스로를 희화화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통심의위는 그 뒤로도 MBC 언론관계법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MBC 클로징 코멘트 심의, 그리고 KBS 와 SBS 에 대한 ‘경고’라는 중징계를 때리며 무리수를 거듭했다. ‘정치적 심의’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방통심의위의 자승자박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