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디어위)의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며, 지난 연말연시 한나라당의 엽기적인 대국민전쟁 도발을 막아낸 결과물이 허무하게 무너지려나 하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이 추천한 9인 위원들은 한나라당과 선진당이 추천한 11인 위원들에 견줘 ‘내공’은 현격한 차이를 내며, 압도적이며 지배적인 학습능력과 현실적 설득력을 발휘하며 ‘소전투’에서의 승리를 이어왔다.하지만 한나라당 추천 위원 일부의 ‘지연작전’에 말려,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상황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다. 어릴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지만 딱 하나가 있는데, 굿판의 사이비 무당들이 새벽에 읊조리는 주술이다.” 그 때 어린 나는 어머니께 “그게 뭔데예?” 하고 여쭸다
돼지들만 억울하게 됐다. 돼지독감(swine flu)라고 초기에 명명된 것과는 달리, WHO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가 돼지에서 비롯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공식 명칭을 변경했다. 늦은 일이다. 많은 이들은 이미 이 질병을 '돼지독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1918~1919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스페인 독감의 경우도 그랬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이라고 이름 붙여졌고, 지금껏 그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WHO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2009년 발병한 신종 인플루엔자는 꾸준히 ‘돼지독감’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을 때,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는 기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40대 버스 운전기사 모
여론조사는 사회성원이 각종 사회적 문제나 정책·쟁점(issue) 등에 관하여 가지고 있는 신조(信條)·견해·태도·의향 등을 밝히려는 목적에서 행하는 사회조사를 말한다. 그 시초는 1800년대 미국 대선 전 모의투표였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20세기 초부터 많은 언론기관에 의해 경쟁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철이 되면 각종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가 여러 언론 매체에 의해 보도되면서 선거 판세에 대한 분석 자료로 활용되기도 하고 각 정당에서는 이를 근거로 지역별, 계층별 대응 전략을 수립 또는 변경하기도 하는 등 그 위력은 막강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같은 당 박근혜 후보와의 초박빙 승부에서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순간 여론조사의 덕을 톡톡히 봤
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을 하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말보다 못 한 말이 더 많은 직업이기도 합니다. 할 말과 못할 말을 정교하게 가려, 딱 주어진 만큼만 말 할 수 있는 고된 직업입니다. 가 그 고됨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덜어 드리겠습니다. MBC 임명현 기자가 쓰던 ‘못 다한 이야기’가 미디어스 개편과 함께 확대되었습니다. 각각 일간지(한겨레 하어영), 주간지(정용인 Weekly경향), 방송에서 표현을 업으로 하고 있는 기자들의 미처 다하지 못했던, 역동적인 이야기들로 매주 찾아옵니다.
얼마 전 김연아 선수(이하 ‘선수’생략)의 과도한(?) 광고출연에 한 네티즌이 쓴소리를 했다가 인터넷 테러를 당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 개인으로서 김연아가 자신의 선택이 되었든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의 결정에 의했든 광고에 출연한 것을 뭐라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별 얘기도 아닌 것 가지고 테러 수준에 가까운 비난을 했던 다른 네티즌들도 이해가 안됐다. 소녀시대가 과도한 광고를 찍는 것과 김연아가 광고 찍는 것은 똑같은 공인이자 개인의 선택문제로 볼 수 있건만, 소녀시대의 그것에는 뭐라 않고, 김연아의 그것에만 뭐라 하는 것도 다소 납득하기 어려웠다. 더불어 그걸 가지고 김연아를 건들지 말라는 식으로 테러를 하는 것도 김연아를 ‘개인’으로 보지 않고, 국가적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상징’
그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할머니와 둘이 산다. 할머니는 대화의 상대라기보단 의식주의 의존대상일 뿐이다. 주로 게임을 하고 공포물을 보며 불에 타 죽는 꿈을 꾼다고 했다. 게임, 즉 가상의 공간은 그가 유일하게 자신감을 갖고 타인과 소통하는 창이다. 공포물은 관계 맺기에 미숙한 그가 꿈꾸는 상상 속 인간관계의 틀이다. 삶에서 우리는 늘 주변인들로부터 긍정적인 면은 인정을 받고 부정적인 면은 자극을 받으며 진로를 조정해나간다. 하지만 그는 실재적인 관계를 맺는 데 서툴다. 친구가 없다. 공포물은 그가 관계를 맘대로 조종하고 통제하며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기톱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영화 장면을 반복적으로 반추하며 떠올리는 그의 상상은, 흉기 앞에서 벌벌 떠는, 그러면서 그에
연합뉴스가 5일 오후 1시 48일 올린 기사 중 하나가 “최시중, 워싱턴서 눈물 흘린 까닭은”이다. 방송통신위원장이자 대통령의 멘토가 눈물을 흘렸다. 뉴스가 될까 안될까? 단순한 에피소드일까 아닐까? 눈물에 대한 비판이 있을까 없을까? 이런 관점에서 이 기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딱히 뉴스가 될 것 같지도 않고, 단순한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눈물을, 그것도 과거를 회상하면서 흘렸다면, 어떻게 보도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특별히 의미 없는 ‘재미있는’ 기사였을 뿐이다. 하지만 몇 가지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어 이렇게 글을 쓴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의 노력은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연합뉴스의 용비어천가같은, 동화같은, 보도의 탈
당신은 왜 책을 읽고 영화를 보시나요? 전 일단 재밌어서 봅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현실의 많은 고민들을 잊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가끔 감동을 주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연히 접한 책과 영화가 제 삶의 방향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삶이란 큰 배를 탄 사람들은 종종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합니다. 이럴 때 책과 영화는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책과 영화의 두 번째 강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냥 살면 굳어버릴, 아니 굳는 걸 넘어 화석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르는 뇌에 자극을 줍니다. 먹고 자고 싸는 것만 생각하며 사는 제게 책과 영화를 접하는 순간은 유일하게 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전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앞으로 책과 영화의 세 가지의
한나라당이 ‘예상대로’ 참패한 재보궐 선거와, 그 선거 결과를 ‘국민의 심판’으로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역사적으로 모든 집권세력들이 그랬던 것처럼) 6월 미디어관련법 강행 처리 방침과 촛불 집회에 대한 ‘폭력적 법치’ 등을 포함한 자가당착적 헛발질 처방을 내놓은 것과, 14년 만에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가는 스펙터클을 헬기 부감 숏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지난 한 주는 한국사회의 지배적 풍속이 역시 ‘진부한 다이내미즘’이라는 걸 일깨운 시간이었다. 또한 지난 한 주는 생활계의 귀한 이슈나 나름 사유(思惟)가 필요한 이슈들에게는 이들 진부하거나 다이내믹한 대형 이슈들의 그림자에 가린 짙은 망각의 시간이었다.지난주, KBS에 대한 대법원 기자단의 ‘1년 출입정지’ 조치가 있었다. 기자들이 아니면 대부분
한나라당 지적대로 현 지상파 방송이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소유 규제 완화로 인한 대자본 투입이 만병통치약일까? 지상파 방송사 경영 위기는 외부적으로는 광고시장 침체로 인한 지속적인 광고매출액 감소, 내부적으로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제작비의 증가 등으로 인해 비롯되었다. 또한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함께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서 유료매체와의 경쟁구도 등 보다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방송은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산업적인 시각보다 공익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방송사 경영 안정화도 좋다지만 단순히 소유·진입 규제 완화로 대자본이 투입되면 핑크빛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식의 낙관적인 기대만으로는 개
정치적인 의미의 ‘시민’이 급진적 주체로 활약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여겨졌다. ‘민주화의 민주주의’란 문제의식은 결국 시민 개념의 재규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파트와 같은 자신의 영역이 생긴 ‘시민’은 필연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중립의 영토에 안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적 존재로 살아가기엔 경제적 자산의 규모가 너무 커졌고, 급진적 주체성을 행사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편안함은 너무 달았다. 결정적으로 MB의 당선은 얼마 남지 않은 정치적 시민마저 경제적 시민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상징적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그 선택이 그릇된 우상의 숭배였다는 것이 판명나기까지 채 100일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MB 시대가 불행하다면, 그 이유는 사소한 것부터 체제적인 것까지
전통적으로 한국 축구팬들이 한국과 중동국가가 축구 경기를 할 때 걱정하는 것이 있다. 중동 선수들의 기술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침대축구 기술이다. 침대축구 목적은 오롯이 승리다. 그들은 이기고 있거나 유리한 스코어에 있을 때 시간만을 끌기 위해 아프지 않은데도 일부러 그라운드에 드러눕는 행위 등을 하곤 한다. 침대축구는 멋진 플레이로 팬들에게 축구의 즐거움을 보일 필요가 없다. 시간만 지나면 결국 이기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축구 팬이 없다. 이에 중동 팬들로부터도 비판을 사는가 하면 심지어 축구 자체를 싫어하게 만들기도 한다. 현재 침대축구 기술이 미디어위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해당 팀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여당 측 위원들이다. 미디어법은 이미 표결 처리하기로 정치권이 합의했다. 머리수에서 많은 한
갈 길 바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정당 추천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국민위원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인해 자칫하면 남은 50일 동안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위원회가 출범 50일을 넘기면서, 다양한 의견수렴을 위해 주제별·지역별 공청회를 시작했고, 내부적으로 주제별 분과회의를 통해 위원들 간의 숙의의 시간을 갖는 등 큰 흐름 속에서는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의 경우 애초에 한나라당이 내놓은 개정안보다 강한 규제완화를 주장하기도 하고, 국민위원으로서 법안의 긍정적, 부정적 폐해를 함께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언론사와 특정 정권에 대한 고집스런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론수렴을 통한 합의의 장으로 기능해야 할 국민위원회에 대
1. 칼은 펜보다 강했다. 촛불 1년, 이명박 정부의 일등 공신은 단연 검찰과 경찰이다. 대부분의 정치·사회적 이슈들이 검·경의 수사라는 깔때기를 거치면서 법과 질서의 문제로 축소되고, 근본 가치와 논의의 생산적 핵심이 왜곡되고 있다.수가기관인 검·경의 전가의 보도는 두 가지다. 공권력으로 뒷받침되는 ‘법 해석’과 ‘사실 확정’이 그것이다. 팩트와 해석의 생산은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언론이 생산하는 팩트와 해석에는 수사기관과 같은 공권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언론과는 달리 법원 판결의 사실과 해석에는 집행력이 부여되지만, 그 힘은 사건 이후의 사후적인 것이다. 법원 판결에는 칼 맞은 이후 갑옷을 내주는 때늦음이 있다. 기본적으로 칼은 펜보다 강하고, 빠르다. 오늘을 비판적으로 기록하고 평가하려는
새롭고 낯선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분명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용기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생긴다.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 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둘 다 동시에 이뤄지거나……. 꽤나 진지하게 생각한 건데 글로 옮기고 보니 말장난 같다. 내 경우 용기도 없고 두려움도 많다. 그러니 새롭고 낯선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부담과 압박이 크다. 이를 극복할 신념 같은 건 더더욱 없다. 신념을 갖고 용기를 내는 것은 정말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무언가 ‘신내림’같은 확신이 들기 전에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로 10돌을 맞았다. 4월 마지막 날 성대한 개막행사가 열렸다. 전주국제영화제 민병록집행위원장은 인사말에서 ‘흰머리가 늘었을 뿐이고, 주름살이 늘었을 뿐’이라며 특유의 유머를
메이데이마다 옷 벗는 남녀 한국 신문은 해마다 메이데이만 되면 비키니만 걸치고 인공폭포 아래서 물장구치는 여성 모델을 등장시킨다. 이런 버릇은 여러 해 계속됐다. 올해도 여지없이 메이데이 전야제가 열리는 4월30일자 도하 여러 일간지에 물보라치는 파도와 폭포 속 남녀의 시원한 사진이 실렸다.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캐리비언 베이 인공 파도 풀에서 남녀가 즐기는 사진이다. 이 파도 풀은 매년 5월1일 개장을 앞두고 늘 4월 말에 여성 모델과 남자 직원들을 동원해 홍보용 연출사진을 찍을 기회를 여러 신문에 제공한다. 대재벌의 계열사 상업광고를 매년 신문에 싣는 이들에게 언론의 공공성은 어떤 의미일까. 신문들은 이런 쓰레기 같은 상업광고를 사진보도라는 이름으로 실으면서 붙이는 ‘사진설명’은 압권이다
벌써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에 맞서 우리가 이렇게 거리로 나온 지도 60일이 훨씬 넘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거리로 나왔을 때 합창단 단원 언니 한 명이 말했듯이 우리는 노래가 좋아서, 무대가 좋아서, 음악이 좋아서 지금까지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 하나로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으며 일해왔습니다.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그렇게 순수한 마음과 열정 하나로 무대를 누비던 우리들을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길거리로 내몬 것도 모자라, 자기들이 좋은 곳으로, 전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고용승계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국립’이라는 이름에 연연하여, 정치싸움을 하기 위해서 그런 제안들을 거절하고 이렇게 계속 길거리에서 버티고 있는양 말하며 이미 멍이 들대로 들어있는 가슴에 대못까지 박
119주년을 맞는 메이데이(노동절)입니다. ‘메이데이’는 1886년 미국의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억압과 탄압에 맞서 총파업으로 1일 8시간 노동을 쟁취한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며, 사람들은 이날을 노동자들의 생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일, 그들이 있어야 할 공장에서 쫓겨나 천막에서 혹은 저 높은 철탑에서 “현장으로 돌아가자!”를 외치며 생일을 자축해야만 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저희 콜트, 콜텍의 노동자들 역시 그들 중의 일부입니다. 자본가들의 탐욕으로 인해 길거리로 내몰린 채 한겨울의 모진 찬바람과 세상을 모두 태워버릴 듯한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긴 터널 안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현장으로 돌아가 일할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면 국가홍보 광고가 자주 등장한다. 수려한 경관, 재미나는 축제, 입맛 돋는 먹거리, 전통미 넘치는 문화유산 등등이 흥겨운 배경음악에 맞춰 짧은 순간, 순간을 이어가는 영상미가 보는 이를 유혹한다. 당신도 어서 와서 즐기라는 관광자원을 알리는 광고이다. 어떤 광고는 한번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 국가 단위를 떠나서 지역 단위에서도 관광홍보에 나선다. 자국 관광객을 넘어서 한국 관광객을 유혹하려고 손짓한다.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드물지만 국내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하고 공공장소에 벽면광고를 하기도 한다. 중국도 지역 단위에서 더러 그 같은 광고를 한다. 거리도 가깝고 경비도 싸니 우리 고장으로 오라는 광고이다. 온천, 골프장, 특산물을 알리는
세상이 그런 모양이다. 발탁해 키워주고, 심지어 권력까지 쥐어주면서 독립해서 나가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전제를 하나 붙였는데, 그것은 권력을 떼어주는 대신 확실히 분가해서 일가를 이루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분가해서 나간 사람이 그 권력을 들고 일가를 이룬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에게 달려가서 그 권력을 갖다 바치면서 새 주인을 모시는 ‘주구’를 자청했고, 그 새 주인은 ‘주구’하겠다고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 이상 권력의 시녀 노릇하지 말고 당당히 살라며, 분가시키면서 땅값 집값 생활비까지 떼어 주었던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요, 챙길 것 다 챙겨 나오면서 독립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 쓰레기통에 쑤셔넣듯 그 약속을 버리고, 새 주인을 모시면서 그 모든 권력을 헌상한 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