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리는 내 이야기다. KBS 시청자위원회 공모에 응했다가 또 떨어진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 문화연대미디어문화센터소장, 한국언론정보학회이사, 편집인, 영상원 교수의 남사스러운 일이다. 노무현 정권, 정연주 사장 때는 왜 그랬는지 예선에서 떨어지고, 이번에는 본선까지 올라갔다는 데 또 떨어졌다. 새로 서류 제출하라고 해 혹시 이번에는 될까 싶었는데, 한 마디로 탈락이다. 허참 약 올리는 것인지 욕보이자는 것인지. 섭섭하기에 앞서 짜증이 확 난다. 남들한테 할 이야기 아니라 할지 모르지만, KBS 시청자위원 지원이 공공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이렇게 알리는 것도 창피하지만 필요한 것 같다. 며칠 전 ‘미디어스’의 개인적으로 ‘택’이라 부르는 친한 기자가 전화를 해왔다. ‘선생님
이견은 없다. KBS의 모델이 BBC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KBS 이사회의 일성도 그것이었다. KBS 구성원들의 인식도 대충 그러하다고 알고 있고, KBS와 관련된 토론회 등 공론의 장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문이 바로 KBS가 BBC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사설도 그러했다. 모두 KBS에게 BBC를 주문했다. 중앙일보는 제목을 아예 “BBC 같은 공정방송 만들겠다.”로 뽑았고, 한겨레는 "흔히들 공영방송의 모델로 영국의 (BBC)를 거론한다."고 썼다. BBC라는 구체적 지향을 놓고 KBS의 오늘을 풀이하고 있다. KBS의 진화가 BBC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합의를 이루고 있는데, 그 풀이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엉망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라는 공자의 말씀 뜻을 나는 오랫동안 착각했다. 들으면(聞)인데, 드러가면(入)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래선지 내 머리에서 도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가 항상 맴돌고 있었다. 사실 한 직업에서 도에 드는 것은 미뤄 짐작할 일이 많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생 칼날 한번 세우지 않을 만큼 소를 잡는 것에 능숙했던 포정(疱丁)처럼 한 일에 능숙해 도에 드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일을 무협영화를 통해서도 익히 봤다. 비즈니스 관련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물리도록 들었다. 때문에 거창하게 포장한 성공담은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도 광고 전문가를 다룬 책은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책 제목
"무슨 근거로 편성권이 경영권에 포함된다고 주장합니까?"한나라당이 추천한 김광동, 차기환 이사는 지난 8월27일 방문진 업무보고 과정에서 MBC노조가 경영진의 고유권한인 인사권과 편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구체적으로, 차 이사는 보도국장에 대한 기자들의 불신임 투표가 보장돼 있는데, 이것이 경영권의 핵심을 이루는 인사권과 편성권 침해라고 했다. 노조에게 불신임 권한을 주는 게 공정방송 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김 이사는 노사 동수로 공정방송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한 것을 예로 꼽았다.공영방송의 업무보고 자리는 합의되지 않은 이론을 가지고 정치공세를 펴는 곳이 아니다. 차 이사는 경영권은 경영진의 고유 권한이고, 인사권과 편성권이 경영권의 핵심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프로그램 '편성'과 '편집'은 도대체 뭡니까?""경영에서 편성과 편집을 제외하면 자칫 월급 주고 빌딩 관리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경우에 따라서는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개별 프로그램을 '넣어라', '빼라', '옮겨라' 하는 것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일 항의 방문했을 때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한 말들이다. 이런 발언들은 "MBC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게 원칙이지만, 경영에 실패했을 때에는 책임을 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대주주인 방문진이 해야 할 일"이라는 그의 또 다른 말들을 배경으로 한다.프로그램 편성에 관한 사항은 방문진 권한도 아닌데, 왜 김 이사장을 포함해 한나라당 추천 방문
진중권 선생이 홍익대에서도 강의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이에 우석훈 선생은 자기 블로그에 ‘보자보자 하니까 보자기’냐며 사보타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글을 올렸다. 이 기사를 보고 우려되는 점은 한 시간강사의 사상검증이라는 정치적 복선이다.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황지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공통점은? 표적감사 후 물갈이를 했다는 것이다. 적법한 감사였다고 주장하지만, 자기 입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감사하고 사퇴시키는 행위로 읽힌다. 다른 한편으로 자리가 기관장이기 때문에 자기 식구 챙기기 혹은 논공행상의 일환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마음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진중권 선생의 경우는? 자기 식구 시간강사 앉히기? 논공행상 때문이 아닌 것을 쉽
캐나다 출신의 저명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마셜 맥루한(Herbert Marshal Mcluhan)은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경구를 통해, 의사소통 형식 자체가 전달되는 내용을 규정하고 제한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맥루한 이후 최고의 이론가로 꼽히는 이 책의 저자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미디어는 메타포”라고 규정한다. 메시지는 대상에 대한 구체성과 명확성을 띄어야 하는데, 이와 달리 미디어는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특정하게 정의하도록 강력한 암시를 투사하는 메타포와 같다는 것이다. 가령, ‘시계’라는 사물은 어떤 제품을 생산할 때 인간의 활동을 시간과 분리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일련의 독립적인 세계가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9월 “그린벨트라도 풀어서 주택을 공급하고 싶다.”라는 말했다. 그러자 “서울 근교에는 말만 그린벨트이지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쓸모없는 땅으로 방치되어 있는 비닐벨트가 많다.”, “집 없는 사람에게는 그린벨트는 분노의 숲이다.”, “그린벨트는 성역일 수 없다”, “서울 도심서 25㎞내에 비닐벨트에 아파트를 대량공급하겠다.” 등등 장관들이 앞 다퉈 그린벨트 무용론을 늘어놓더니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그린벨트는 법률용어가 아니다. 개발제한구역을 편의상 그렇게 부르다보니 푸른 숲이 우거진 땅으로 오해가 생긴 것이다. 주무장관조차 그 뜻을 잘 모르니 무식한 소리인줄 모른다. 실제 지정 당시 임야는 58.89%이고 나머지는 농경지 27.9%, 대지 및 잡종지 13.6%였다. 개발제한구역은 지난
위기론은 언제나 '위기'를 과장한다. 단순히 과장만 하는 것이라면, 언어의 한 속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때때론 위기론은 없는 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위기가 아닌 것을 위기라 칭하기도 한다. 위기론은 언제나 필요에 따라 위기를 재조합해 낼 수 있을 때만 생명력을 갖기 마련이다. MBC가 위기란다. MBC의 위기, 다시 돌아온 그리고 참 오래된 얘기다. 몇 년 전부터인가 매해 빠지지 않고 미디어계를 달구는 고정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기억하기로 2005년에 MBC의 시청율과 점유율의 하락폭이 KBS 보다 훨씬 가파르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되고, 의 '구찌백 파문'까지 겹쳐지면서 심각한 위기론이 있었던 것 같다. 곧 이어 MBC 드라마의 심각한 부진과 정체가 이어지자 또 한 차례 위
일본열도에 회오리바람, 아니 ‘총선거’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일본 전체가 정신적으로 초토화 된 느낌이다. 이번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119의석을 얻어, 308의석을 획득한 만년 야당이었던 민주당에게 54년 만에 제1당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를 두고 일본언론은 ‘역사적인 정권교체’라고 표현한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 언론은 이미 선거공시일(8월18일) 이전부터 이 같은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것이다. 선거일이 정해진 그 이튿날부터 일본언론은 각 지역 르포를 통해 유권자들의 지지성향을 분석했고, 거의 모든 언론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민주당 300석 획득가능성 높아’라고 일제히 해드라인을 뽑아 보도했다. 그리고 이 같은 예측은 민주당의 308석 획득으로 정확히 맞아
요즘 정가의 이슈는 친노세력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준비하는 친노신당, 그리고 야4당과 재야세력 시민사회의 힘을 합쳐 민주대연합을 이룩하자는 민주통합시민행동이다. 얼핏 보기에 이 두 단체의 성격은 극과 극이다. 하지만 큰 맥락에서 볼 때 두 단체는 지난 십 여 년 동안 존재했던 개혁세력과 시민사회의 만남을 위한 각종 시행착오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노무현 스쿨’을 만들겠다고 말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도 집권의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당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를 반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개혁당이나 열린우리당, 혹은 ‘국민의 힘’ 같은 단체들의 시행착오를 규명하지 못한 채 오늘의 실험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였다. 국제평화를 이루기 위해 각 국가들로부터 주권 일부를 양도받은 강력한 국제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러나 이 평화주의자의 물리학 방정식은 핵폭탄의 이론적 원리가 됐다. 그 스스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핵폭탄의 원리를 설명하며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6년 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으로 2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의 삶은 과학(자)의 야누스적 숙명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인간은 과학기술로 선/악의 가치를 구현한다.나로호 발사가 사실상 실패했다.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우주과학기술 강국의 꿈이 유예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로호는 과학기술위성을 우주로 실어 나르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가 ‘일본어’였다. 그런데 나는 일본어를 지지리도 못했다. 친구였던 응영이가 일본어를 너무 잘해서 칭찬을 받았던 반면에 나는 선생님에게 거의 원망을 받아야할 정도로 못했다. 아마 나에게는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유전자가 애당초에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문제는 내 스스로가 일본어를 그렇게 못한 게 부끄럽지 않았다는데 있다. 좀 커서는 내가 일본어를 못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런 배경에는 아마도 내게 존재하던 일본에 대한 근거 있는(혹은 근거 없는) 증오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가졌을 법한 역사에 기인한 증오가 어떻든 내가 일본어를 못하는 것에 대한 가장 얼토당토하지 않는 근거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나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울던 매미소리가 어느 날 갑자기 들리지 않습니다. 철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다르지만 새롭게 들리는 소린엔 잘 반응하지만 익숙해진 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잘 느끼지 못합니다.매미 울음소리가 어느 날 갑자기 들리지 않는 것도 해질녘부터 새롭게 들리는 풀벌레 울음소리 때문에 알아차렸습니다. 산중에서 가을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진 날씨로 먼저 알아차리지 않습니다.해질녘부터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와 소쩍새 울음소리로 알아차립니다. 여름 끝자락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풀벌레와 소쩍새 울음소리를 물리칠 순 없습니다.올 여름더위는 매우 짧았습니다. 7월 한 달 동안 비만 내리고 8월에 잠깐 더웠다가 가을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짧은 더위에도 땀을 많이
후배로부터 책을 한권 선물 받았다. 이종국 지음 『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 제목이 퍽 감상적이다. ‘잘 있나요’라는 정겨운 대화체도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첫사랑’이라는 단어에서 벌써 가슴 한켠이 저릿하다. 사춘기 지낸 호모 사피언스치고 ‘첫사랑’에 전율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첫사랑 ‘들’이라니, 복수형은 뭘 의미하나? 다큐멘터리 촬영차 네팔을 방문한 저자는 그곳에서 만난 네팔 여인과의 운명적인 사랑을 비롯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의 만남과 삶을 다큐멘터리와 같은 화법으로 전하고 있다. 책을 덮을 즈음 ‘첫사랑’이라는 제목에 속아(?) 애틋한 로맨스를 기대했던 나의 저속함이 민망할 정도로 이 책은 히말라야 설산처럼 순수하고 순백의 인간미로 독자를 정화시켜 나간다.진한 휴머니티의
이명박 정부가 아니었더라면,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라는 기구가 있는지도 몰랐을 사람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렇듯 평소에는 전혀 노출되지 않던, 숨어있던 1인치의 권력들이 정국에 결정적 방향키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언론 장악 과정에선 벌써, 여러 번째이다. 사문화됐던 법률 조항이 사라나기도 하고, 존재하되 군림하진 않던 기구들이 잠에서 깨어 나 설마 했던 일들을 거침없이 저지르기도 했다. 미네르바를 잡아 가두는 논리를 제공했던 전기통신사업법이 그랬고, 작년 KBS 이사회 역시 그랬다.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YTN 사태 때는 지분이 있는 기업들을 동원하려 하기도 했었다. 언론 장악의 화룡정점이라고 할 MBC 장악에는 방문진이 움직이고 있다. 이 정부 그리고 이 정부와 공생하
일단 세 가지 사건을 이야기해 보자. 1. 4월 :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에 대한 선거법 위반 수사에서 수사 대상자 100여명의 이메일 7년치가 압수수색 당했다. 2. 6월 : 쇠고기 광우병 관련 보도를 조사 중이던 검찰이 PD수첩 작가의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3. 7월 : YTN 노조원 20여명의 이메일이 압수수색 당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널리 알려진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이 널리 알려진 예외적 사례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실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에 다음 한메일과 네이버 메일에 대한 압수수색이 3360건이나 있었다고 한다. 다른 포털까지 합산한다면 이 수치는 엄청나게 불어날 것이다. 나랏님께서 국민의 안전과 치안을 위해 이메일 몇 개 본거
현기영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순이 삼촌’이나 ‘지상의 숟가락 하나’를 통해서다. 이 소설들은 제주 4ㆍ3항쟁을 문학으로 승화한 것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그런데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면서 묘한 상황이 됐다. 수년전에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방송을 타면서 유명세를 탔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방부 금서로 지정되면서 다시 유명세를 탔다. 씁쓸하게도 그의 작품들은 현 정부의 답답함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운명을 타고 난 셈이다. 이런 요상한 팔자를 타고 난 작가는 이제 고희를 바라보고 있다. 수명이 늘어난 지금 드문 나이(古稀)는 아닐지라도 그 나이에 생명력 있는 작품을 써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작가가 신작 ‘누란’이
하고 싶은 주장이 있어도 쉽게 할 수 없는 게 학자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나름의 논거, 논리와 철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지키지 않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주장을 펼치는 교수들에게 '폴리페서'(poli-pefessor)라는 오명이 따라다니곤 한다.황근 선문대 교수는 지난 26일 한 토론회에서 종합편성채널을 위한 '채널연번제' 도입을 제안했다. 황 교수가 제시한 채널연번제란 "사실상 종편채널을 현재 유료방송 채널 구성에서 시청률이 높은 5번에서 12번 사이에 배치하도록 정책화시켜야 한다는 주장"('황근, “종편 채널 12번 앞 번호로 해야” 특혜 주장', 미디어스 2009년 08월 26일 (수))이다. 종합편성채널 승인 이전에 종합편성채널에 경쟁력 있는 채널을 배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방송통신위원회가
민주당이 '등원'을 결정했다.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할 때는 굼뜨고 그렇게 따지는 게 많을 수가 없더니, 등원을 결정하는 것은 이렇게 전격적이다 못해 급격하고, 답을 들었어야 할 최소한의 질문과 마땅히 따졌어야 할 일말의 문제도 걸지 않았다. 그야말로,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민주당이 딱 그 꼴이다. 단언하건데, 여의도에서 민주당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조건 없이 등원해서 등원 후에 원하는 조건을 만들어낼 힘과 능력이 지금의 민주당에겐 없다. 한나라당과의 정치적 역관계를 고려하자면, 그냥 백기 투항한 것 밖에 안 된다. 등원의 변을 밝히며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말했다. "국회에서 할 일은 의원들이 하고 주말에는 언론악법 투쟁으로 나설 것"이란다. "국회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