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싸늘하다. 벌써 시월 중순이다. 추석도 일찍 지나고 시나브로 가을이 깊어간다. 그런데 올해는 시월을 맞는 감회가 여느 해와 또 다르다.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10.26으로 유신독재가 붕괴된 지 30년째 되는 해다. 30년이면 한 세대를 헤아리는 세월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장년이 되는 기간이다. 그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은 그때에 비추어 어떤 변화가 있는지 돌아볼 만한 때다. 이미 많은 논의가 있는 줄 안다. 며칠 전에 부마항쟁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있었고, 박정희 정권의 공과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숱한 논란이 있었다. 개발 독재의 시기가 막을 내린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박정희의 유령이 한반도의 중심부에 어른거리고 있으니 이거 큰일이라는 한탄의 소리가 아직 드높다
이번 학기에는 목요일에 강의가 있어서 노량진에서 천안행 전철을 타고 병점(경기도 화성시)을 향한다. 그 길에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살았던 안양이 있다. 이미 사반세기 전인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꿈을 꾸었을까. 그때는 기자도 되고 싶었고, 작가도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 생각했던 학교는 신촌에 있는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였다. 기자를 꿈을 꾸던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무슨 결과가 있었던가. 어찌 보면 그 꿈에 조금 근접한 것 같으면서도 부끄러워지곤 한다. 사실 나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결코 부지런하게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10월 8일) 아침 출근길에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었다. 마지막 순서에 조정래 선생이 나왔다. 언론인 손석희의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 는 내전을 겪고 있는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에서 한 서방의 사진기자가 겪는 실화에 가까운 모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위험천만한 내전의 현장에서 주인공은 도무지 종적을 찾을 길 없는 전설 속 인물과도 같은 반군 지도자 ‘라파엘’을 만날 절호의 기회를 얻는다. 산 넘고 물 건너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이국땅 어느 심심산중에 들어서 마침내 반군 지도자를 대면하게 된 주인공. 그런데 그는 말이 없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신이었던 것이다. 반군들은 주인공에게 이렇게 청한다. “사진을 찍어주시오. 살아 있는 것처럼.” 지긋지긋한 가난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부패한 꼭두각시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당신은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사진기자가 아니오. 며칠만 참으
병역비리와 군가산점1997년 대통령선거 이후 새로운 유행어가 생겨다. ‘병역비리’ 당시 유력했던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떨어뜨린 이 무시무시한 단어는 잊혀질만 하면 등장하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정치권과 재계의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락 내리락 하고, 인기 연예인이 사죄의 눈물을 흘리며 자진 입대하고,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이 감옥으로 향해도 ‘병역비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비리를 저지를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은 뉴스를 보면서 그저 짜증나고 허탈할 뿐이다.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병무청장이 병역비리 근절을 위한 묘안을 국정감사자리에서 내놓으셨다. ‘군가산점제’! 병역비리가 가산점이 없어서 일어나나? 그렇다면 군가산점이 존재했던 시기에는 병역비리가 없었나? 병역비리가 왜 일어나는지, 군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승부는 다시 문학, 원점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 죽다 살아난 SK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면, 다 잡은 줄 알았던 한국시리즈 티켓을 2번이나 연속 찾지 못한 두산은 초조감은 극에 달할 것이다. 각각의 몸에 각인된 기억 역시 다른 전망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플레이오프 4차전은 왜 SK의 야구가 무서운 것인지, 그 힘을 보여준 경기였다. 경기 초반 쉽게 점수를 뽑아 내 SK의 낙승이 예상되던 흐름은 3회 말 고영민이 동점 스리런을 때리면서 급격히 반전됐다. 3:3 동점 상황에서 연이어 김동주와 김현수의 연속 안타가 터지자 분위기는 급격히 두산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두산의 흐름은 딱 거기까지였다. 무사 1, 3루의 찬스에서 최준석이 때린 병살타는
근대화의 경험은 인간의 감성에 일대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인간이 시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그러한 변화에는 전화, 영화, 기차, 엑스 레이(X-ray), 자전거 등과 함께 자동차의 발명이 크게 일조하였다. 무엇보다 그것은 속도를 추구했다. 1900년에 프랑스에는 약 3천대의 자동차가 있었고, 1913년에는 10만 대에 이르렀다. 1896년과 1900년 사이에 최소한 10종의 자동차 잡지가 발행되었으며, 1906년에 이미 시속 200Km를 넘어서는 자동차가 발명됐다.얼마 후 미래파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된 마리네티의 선언이 이어졌다. 그는 새로운 과학기술에 미쳐 있었고, 그것만을 찬양했다. 그는 “우리는 기계와 협력하려 한다”고 강조하며, ‘새로운 속
‘대체 왜 지금에서야 폴란스키를 체포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13세 소녀에게 약물과 술을 먹인 후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음에도 항문성교를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1977년의 일이다. 46일간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은 끝에 ‘사회에 무해하다’는 판정을 받고 잠시 가석방된 틈을 타, 그를 다시 구치소에 구금한 후 재판을 진행하려 했던 판사의 결정에 불복하고 미국에서 빠져나간 것은 1978년 2월 1일. 아직 미국으로 송환되지는 않았지만, 31년만에 미 사법 당국은 폴란스키를 다시 붙잡았다.적지 않은 수의 헐리우드 영화 감독과 스타들, 프랑스 대통령 샤르코지와 대중적 철학 저술가 베르나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반드시 표가 나는 법이다. 오늘 경기가 딱 그랬다. 만약, 김광현이 선발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송은범이었더라면. SK가 김광현, 송은범, 전병두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였다. 딱 한 점 차이일 뿐이기도 했다. 야구에서 한 점은 가장 근접한 패배이지만, 결국 모든 패배가 절대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어떤 설명을 덧대더라도 SK가 완패한 게임이었다. 플레이오프에 앞서 김성근 감독은 두산의 불안한 선발진이 불확실해서 불안하다는 발언을 했다. 준플레이오프를 제압한 두산의 힘이 다른 요인이 아닌 선발에서 비롯된 것에 대한 환기였다. 신은 예감마저 이토록 소름끼친다. 금민철의 투구는 눈부심 그 자체였다. 비록 딱 5이닝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포스트시즌에서 2경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건 아니다. '강심장' 말이다. 이게 대체 뭐하는 것인가 싶었다. 강호동이 무슨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힘찬 연어도 아니고, 쌍팔년도 포맷에 그야말로 구닥다리 컨셉으로 점철됐던 '강심장' 1회는 약간은 저 옛날 '서세원쇼'같았고, 조금은 '야심만만'과 닮았으면서, 또 살짝은 '무릎 팍 도사'의 냄새가 나는, 잡다하기는 하되 별다른 건 없는 어디다 쓰는 '물건'일까 싶은 무엇이었다. '강심장'은 방송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이었다. 호사가들은 '놀러와'에 패퇴한 '야심만만2'를 일컬으며, 비로써 강호동과 유재석이 공존하던 '첩혈쌍웅'의 시대가 저무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야심만만 2'가 패퇴한 것은 결국, 유재석의 '놀러와' 때문이었고,
우리 사회의 역사적 현실역사적으로 볼 때, 1960~70년대 우리의 희망은 ‘잘살아 보세’였을 것이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노랫말의 구호는 한국전쟁 이후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 땅의 민중들에게 유일무이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잘살아 보기 위해서는 ‘하면 된다’라는 세뇌된 신념을 갖추어야 했다. 그리하여 개발독재에 의한 원시적 자본 축적은 제법 거대한 독점 자본을 탄생시키면서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이른바 ‘공돌이’, ‘공순이’라는 비참한 ‘인간시장’의 젊은 시절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잘산다는 것을 경제적 요인과 물질적 가치로만 인식하고 평가하는 사회적 통념이 지배적인 사회의식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관계가
개인적으로 주식을 도박의 한 종류로 생각하기에 좋아하지 않는다. 도박판에서 만고 진리는 판을 벌이는 자가 마지막 승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초 경제의 한 축인 주식에 대한 지나친 외면은 좋지 않다는 것으로 판단해 작은 돈으로 주식 트레이드를 시작했다. 내 원칙은 주가가 산 가격보다 8% 이상 오르면 무조건 팔고, 산 가격보다 낮으면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두 거래는 기대한대로 진행돼 15% 가량 이익을 남겼다. 그리고 다음에 내가 산 주식은 코스닥에 있는 업체로 나름대로 기업도 탄탄하고, 시대의 부침이 없는 주식이었다. 그리고 지난 반년동안 이 주식의 주가 흐름을 살펴봤다. 그 사이 코스닥은 10% 상승했으니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산 주식은 주가와는 아무 상관없
정치란 확실히 '깃발'의 게임이다. 대개의 정치적 문제란 결국, 누가 어디에 어떤 깃발을 꽂느냐의 투쟁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정치적 실천에 관한 쟁점을 설명하는 수사 중에 '누가 광장에 붉은 깃발(Red Flag)을 꽂을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이 있을 정도이다.깃발의 정치학은 최근의 국내 정치적 상황만 놓고 보더라도 확연하다. 결국, 최근 몇 개월간을 지배해 온 것은 '중도', '실용', '서민'이라고 하는 영토에 누가 깃발을 꽂을 것이냐에 관한 난잡한 투쟁이었다. 너무 낡은 '간지'라고 하는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재래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포옹을 이어간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프리 허그(Free Hug)의 정치적 의미가 지지율 상승이라고 하는 객관적 지표
신문을 뒤지다보니 K-WATER란 이름으로 광고가 났다. 생수업체인가 싶어 읽어보니 임진강 참사에 대한 사과광고라 수자원공사임을 알 수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인들 어찌 수자원공사라고 알까 싶다. 업종도 기능도 알 수 없는 회사명이니 하는 말이다. 아무리 영어유행 시대라고 하지만 국민을 상대로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공기업이 이래도 되는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영어를 모르는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영어남용이다. 전매청을 민영화해서 태어난 담배인삼공사는 KT&G라고 한다. 그런데 홈페이지에도 담배인삼공사라는 한국어 회사명은 아예 없다. T가 tobacco(담배), G가 ginseng(인삼)인 줄 알았더니 T는 tomorrow(내일), G는 global(세계적)의 약자란다. 아마 담배를 수출한다고 영문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그런데 현 정권의 대북정책이 지난 정권과 가장 다른 특징은 흡수통일을 공공연히 거론한다는 점에 있다. 지난 정권은 비록 흡수통일의 속내는 있었을지언정 북한 체제와 이념을 존중하는 포즈를 취했다. 북한 정권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남북 쌍방은 자기 체제의 우월성을 속내에 간직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공연히 표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올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을 선언함으로써 흡수통일의 속내를 전 세계를 향해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또 얼마 전 보수 진영의 한 이론가는 북한의 장점과 남한의 장점을 아우른 제3의 체제란 종교적 관념적 수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뿐, 북한의 수령 절대주의와 남한의 자
편집자 주 = 전영일 전 KBS 수신료 팀장은 30일 KBS사내통신망(Kobis)에 이병순 사장 1년을 평가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습니다. 미디어스는 본인의 동의 하에 관련 글을 게재합니다. KBS는 지난 2001년(박권상 사장 재임) 시사저널의 언론매체관련 전문가 여론조사에서 조선일보를 누르고 영향력 1위에 오른 후, 2008년까지 각종 여론조사(일반국민대상 및 전문가 집단 )에서 8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병순 사장 취임 1년째인 지난 8월 시사저널의 여론조사에서는 조선일보에 1.1%로 앞서 간신히 1위를 유지했고(2008조사에서는 9.8%우위), 같은 8월의 한국기자협회의 여론조사에서는 8년 만에 다시 조선일보에 1위를 내주고 2위로 밀려났다. 지난 8년간 각종
광주는 언론사 많기로 전국에서도 유명하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다른 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얘기가 나오면 썩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 단지 숫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 숫자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담긴다면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매체에 붕어빵 기사들로 채워지는 게 현실이다. 붕어빵 기사들로 지면이 채워지는 현실은, 거꾸로 특정기사의 경우 똑같이 침묵하는 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불거진 광주시와 한 대형 유통업체간의 '이상한 거래'에 관한 기사는 대표적 사례다. 이 문제제기를 하고 광주시가 이에 대한 공식자료까지 내면서 해명에 나섰다. ‘그래도 석연치 않다’며 두 통신사가 받아쓰기까지 했지만, 지역의 수많은 신문들에선 이 기사를 찾아
현대인의 삶에서 정보(information)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인식된다. 선거에서 어느 후보자에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예금 금리가 가장 높은 은행은 어디인지, 집은 어느 지역에 얻는 것이 합리적인지, 어떤 보험을 들어야 보다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자녀를 어느 학교에 보내는 것이 옳은지, 어느 직장을 선택해야 할지, 모처럼 여유 있는 주말을 맞아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지… 정보가 없이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물론 삶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 쓸 만한 정보는 절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이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대의 기술 사회는 모든 사람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혜택을 골고루 향유할 수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으나 그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피로감도 높아지고 있다. 힘써 규탄했지만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는 현실인식이 있고 관망층이 대통령을 한번 믿어 보기로 결정한 듯한 4-50%대의 지지율 회복 또한 절망스럽다. 직장인들을 만나 보아도 4대강 정비사업 등에 대한 불평불만은 많지만 지지할 만한 다른 정치세력도 없지 않느냐는 푸념도 함께 나온다. ‘MB 시대’는 산술적으로 따져 봐도 3년 반이나 남았다.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이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MB에게 기대를 거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방책을 강구하기도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를 단순한 규탄을 넘어 정밀하게 지적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민주주의의 부족
1661년 황제에 올라 무려 60년간을 재위한 강희제, 아버지의 시대를 개혁한 옹정제((재위 1722∼1735), 그리고 선대의 성과를 완전히 정리했던 건륭제(재위 1735∼95)의 시기를 거친 청나라는 한때 세계 GDP의 35%를 차지하던 초강대국이었다. 현재 초강국대국으로 굴림하고 있는 미국의 GDP도 25% 남짓이니 당시에 청나라의 생산력이 어떠했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청나라가 망하는 데는 불과 50년도 걸리지 않았다. 가경, 도광, 함풍, 동치, 광서제로 이어지는 113년(1795~1908년) 동안, 청나라는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너덜너덜해졌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사실상 종말을 구한다. 1890년 만수절을 맞은 건륭제는 고두배(叩頭拜 머리를 찧으면서 황제에게 예를 취하
잘 되는 집안은 가지 나무에도 수박이 열린다고 했던가? 잘 되는 집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가구 배치나 집안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생활 풍수 얘기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그것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과 지역사회를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17년 전쯤, 지방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오전 마감을 서두르고 있는데 중년의 한 여성이 문화부 기자를 찾아왔다. 한 눈에도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이었다. J대학의 무용과 교수라고 소개한 그분은 자신이 소속된 대학의 무용과를 알리고 싶다며 용기를 내어 무작정 신문사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제 막 신설된 무용학과에 자신을 포함 세 명의 교수가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후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