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해 불만(?)을 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안중근 의사를 둘러싼 세간의 논쟁을 둘러보다보면 1909년 이후 한국 근현대사 100년이 얼마나 숨가쁘게 흘러왔는지를 알 수 있는 듯해 서글프기까지 하다.테러리즘 논쟁 논쟁 하나는 이른바 ‘테러리스트’ 논쟁이다. 이것은 안중근에게만 관련된 것은 아닌데, 뉴라이트 논자들이 우리의 독립투사들을 ‘테러리스트’로 격하시킨다는 불만과 이에 대한 비판이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이 논쟁의 지형이 살짝 의아하다. 양쪽 모두 공히 “테러리스트는 나쁜 것이다.”는 전제 조건 하에 논의를 진행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판단을 공유하면서 뉴라이트는 독립투사의 아우
필자에게 지난 12년은 거의 텅 빈 시간이다. 99년 가을이 올 무렵 중국으로 건너갔고, 지난해 봄이 오기 전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요상하게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마치 마술처럼 지난 10년여를 도려낸 듯하다. 그때도 경제위기가 오고, 정권이 바뀌고 했는데 당시와 여야와 바뀌었다지만 큰 차이가 없다. 또 어릴 적부터 해태를 응원하던 나는 9차례에 걸쳐 배가 터지게 해태의 우승을 즐겼는데, 돌아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태의 후신인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을 했다. 그때의 포만감 때문인지 기아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7차전 9회말 끝내기 홈런은 만끽하기에 너무나 즐거운 꺼리였다. 당시 첫 직장인 ‘미디어오늘’에 들어가니 선배들은 나한테 프레스센터의 자료실에 가서 ‘국
스티브 비코라는 생소한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의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이 연출하고 덴젤 워싱턴과 케빈 클라인이 출연한 (1987)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저 악명 높은 인종차별국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해방운동에 대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대부분 철모를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아파르트헤이트’와 ‘넬슨 만델라’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1993년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고 이듬해 치러진 남아공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 역사상 흑인으로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수백 년을 이어온 길고 지루한 백인 지배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니 남아공의 흑인해방운동 하면 누구나 만델라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다. 지금
또 다시 미니 총선 운운하는 선거가 몇 군데서 벌어지고 있다. 별 관심도 없는 선거 이야기를 왜 하느냐 질책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반복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신성한 주권행사니 뭐니 하는 캠페인을 보고, 다들 자신이 잘났다고 떠드는 모양을 보고 있자니, 국민을 거저 투표하는 기계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민주주의가 뭐란 말인가? 민주주의는 인민의 정치인가민주주의(Democracy)는 모두 다 알다시피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동했다. Democracy는 고대 그리스어 Demokratia에서 연원했으며, Demokratia는 Demos(인민/평민)와 Kratia(통치/ 지배)의 합성어이다. 말 그대로 옮기면, 인민의 통치 또는 평민의 지배를 의미한다.
Ⅰ후배 A의 마지막 근무 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지금 책상정리중이란다. ‘언제까지’라는 기약도 없이 근무처를 옮겨 1년 남짓 된 어느 날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하기야 계약조건도 없는 자리였으니 해지라는 표현도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아침회의석상에서 거취가 논의되어 그날로 해고 비슷한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어차피 진이 빠질대로 빠진 상태라 더 이상 그 조직에 눈꼽 만큼의 애정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다고 했다. 마지막 날을 보낸 소감을 물었더니 그냥 덤덤하단다. 직원들끼리 송별식도 없는 후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거였다.“밥이나 먹을까”“그럴까…….”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되짚어 보았다. 그때 직장을 옮기지 말았어야 했나? 이런 질문은
"불법체류자, 외노자들 때문에 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 받고 생계를 위협받습니다. 3D 기피? 불체자들 때문에 임금하락이 일어나서 기피하는 겁니다. 불법체류자를 동조하는 짓은 한국 수백만 서민을 못살게 구는 겁니다. 불체자는 외국에 대부분 송금하고 일끝나면 외국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이 땅의 서민은 어떻게 살까요? 그들의 범죄들은 또한 흉악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독거노인, 불쌍한 아이들, 학대받는 동물들, 한국에 진짜 보호해야 될 존재들은 따로 있습니다. 여론을 보세요. 전국민이 불체자와 그 동조단체들에게 분노하고 있습니다."동의하시나요?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당장 내일이라도, 쥐도 새도 모르게 쫓겨날지도 모를 한 사람을 위해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졌고, 위의 글은 그 카페에 '추방마땅'이란 아이디로 어
봄이 오면 농민들은 깊은 시름에 잠긴다. 올해는 무엇을 심어야 낭패를 보지 않을까 싶어서 이다. 하지만 해답이 없다. 값싼 수입 농산물에 밀려 무엇을 심어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도 쌀은 정부수매가 있어 견딜만했는데 그것마저 없어져 쌀농사도 마음 놓고 지을 수 없다. 올해도 쌀값 폭락으로 돈 가뭄에 시달린 농심은 시꺼멓게 타들어간다. 그러나 농민이 주인인 농협은 딴 세상마냥 돈 벼락을 맞았는지 흥청망청이다. 국회의 농협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소식을 들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농협 간부들이 골프를 즐긴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골프천국일줄 몰랐다. 농협이 보유한 골프 회원권이 물경 121구좌 821억5,700만원어치란다. 중앙회가 404억4,900만원, 20개 지역조합이 117억7,500만원, 자회사가 299억
개인적으로 온라인에서 온갖 논쟁을 보거나 참여해온지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간다. PC 통신 시절까지 합치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최근 『괴짜경제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Steven Levitt)과 뉴욕타임즈 출신의 저널리스트 스티븐 더브너(Stephan J. Dubner)의 신간 SuperFreakonomics가 출간되면서, 바야흐로 지상 최대의 키보드 배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년의 경험을 걸고 말하는데, 이보다 큰 규모의 키보드 대전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분야의 학자들, 그 분야의 ‘빅 네임’들은 서로의 명예와 학자로서의 자부심을 걸고 진리를 밝히기 위해 논쟁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고 비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유행 인물의 요인과 속성을 다루려는 문화연구의 관점이라면 모를까, 정색하고 '허경영 현상은 무엇이냐?'는 일고찰적 질문을 던지는 것은 굉장히 멋쩍은 일이다. 허경영이 무엇이긴 무엇이겠나.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가. 기인, 대통령 후보 혹은 허본좌 뭐라고 부르건 허경영은 그냥 우스개일 뿐이다. 허경영은 오랜만에 출현한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우스개이다. 그러니까 '남을 웃기려고 익살을 부리면서 하는 말이나 짓'을 하는 이다. 우연찮게 하수상한 시대를 만나, 인터넷이라는 환경적 혜택으로 소비가 극대화된 우스개이다. 물론, 그 소비가 온-오프라인을 넘어서 유통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고 기막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우스개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생 그리고 확장이었을 뿐이었다. 우스개는 그런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공무도하가’는 중장년층 정도 된 이의 머릿속에 언제나 맴도는 글이다. ‘저 님아 물을 건너지 마오/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물에 쓸려 돌아가시니/가신님을 어이할꼬’(정병욱 역) 기자에서 출발해 이제는 무엇을 이야기해도 소설이 될 내공을 가진 김훈의 신작에는 어디에도 ‘공무도하가’가 없지만 제목이 ‘공무도하’다. 뒷날개의 글처럼 그는 ‘나의 글은 (강을 건넌 백수광부와 달리)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다. 소설의 날줄은 창하와 해망이라는 두 공간이다. 창하는 주인공인 노목희의 고향으로 변절자로 찍혀 그곳을 떠난 장철수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장철수와 미술교사를 했던 노목희는 그곳에서 한
SK는 깊은 한 숨을 들이마셨고, 기아는 작은 한 숨을 내쉬었다. 당장에 1승이 절박하던 SK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고, 타선의 침체를 걱정하던 기아는 희망을 발견한 경기였다. 경기 결과는 11 : 6 스코어가 말해주듯, SK의 완승이었다. 한 때, 스코어는 8점차까지 벌어졌다. 경기가 일방적으로 흐른 것은 간단하다. SK가 기아의 '선발 게임'을 무너뜨렸기 때문이었다. 손을 자주 불던 구톰슨은 손이 곱아서 였는지 시즌만큼 '컷 패스트 볼'과 '변화구 제구력' 모두에서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도 저도 결정구를 던지지 못하는 선발 투수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야구의 이치이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조차 망설이던 구톰슨의 나약함을 SK 타자들은 예리하게 후벼 들었다. 1회 박재상의 2루타에 이른 박정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피어나는 로맨스? 이거 옛날이야기다. 목적지 사이를 바로 이어주는 오늘날의 도로 체계에서 ‘우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연히’ 들어간 동네 구멍가게 할머니에게 가족사를 듣게 되는 ‘우연한’ 만남 따위는 점점 더 찾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한 시골마을 미술관이 그런 우연한 만남을 선사했다. 전남 함평군 잠월면 산내리. 어쩌면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볼 일 없었을, 그저 도로 표지판 상의 지명 정도로 남았을 작은 시골마을이 ‘아는’ 곳이 됐다. 그곳의 사람들과 사연이 구체적인 실체가 되고 인연이 되었다. 이제 산내리는 김복님 할머니가 골목 골목 마실을 다니고, 장복님 할머니와 ‘귀걸이’ 할아버지가 아침마다 베드민턴을 치는, 마을 방송 전에 늘 뽕짝 두 곡을 트는
MB정권의 변태MB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40~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촛불정국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이 지지율을 놓고 조바심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지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성장발달이 더딘 내 자식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버둥대는 걸 보는 것 같아 오히려 응원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렇게 눈물겨운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제 생명과 그것을 부여해 준 부모에 감사하기보다 여전히 거짓말하고, 옛 잘못에 대해 사과 한마디도 없으면서, 마치 효도라도 하는 양 유세를 부릴 때면, 못난 자식,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은 심보가 불쑥불쑥 솟구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정권이 예년 같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찌된 일일까?(1) 인민을 신민으로부
결국, 야구의 ‘기본’ 그것이었다. 선발투수가 퀄리티 스타트를 한다. 1, 2번 타자가 출루한다. 중심 타선이 주자를 불러들인다. 결정적인 순간엔 베테랑이 활약한다. 한국시리즈 1, 2차전은 야구의 기본 중의 기본이 작동한 기아의 완승이었다. 아시다시피 기아와 SK는 서로 다른 승리의 방정식을 갖고 있다. 기아는 ‘선발 투수’의 팀이다. 시리즈 전 기아 조범현 감독은 기아는 결국, ‘선발 투수 게임’을 하는 팀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반면, 지금 SK는 말하자면 ‘불펜 투수’의 팀이다. 김광현이 있었더라면 달랐겠지만, 현재로썬 어쩔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아와 SK의 대결을 두고, ‘선발 VS 불펜’의 대결이란 구도를 사용했다. 기아가 이기기 위해선 선발 투수가 퀄리티 스타트 이상의 해줘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어느 SF영화에서 외계인을 다룬 한 장면이었다. 오직 뇌 밖에 없는 상태에서 강한 에너르기를 일으켜 상대방에게 대항하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과연 뇌란 무엇일까. 심리학을 통해 인간의 머리를 천착하다가 다시 생리학이나 해부학 등의 의학을 통해 뇌를 연구해온 장현갑 교수의 책 ‘마음 vs 뇌’(불광출판사 간)는 그가 수 십 년간 노력했던 뇌 연구에, 종교적 가치로서 두뇌에 접근한 그의 긴 여정을 더해 쉽게 편하게 일반인에 전달한 책이다. 사실 쉬운 것들을 어렵게 쓰는 게 보편적인 세상에서 너무나 어려운 명제를 쉽게 쓴 책을 만난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즐거움이다. ‘마음 vs 뇌’는 그가 뇌와 심리의 문제를 접근하는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랜 의학의 관행에
늘 타던 지하철 모습이 달라졌다. 계단입구 오른쪽 바닥에 갑자기 커다란 화살표가 나타났다. 대수롭지 않게 보고 그냥 좌측으로 내려가니 올라오는 사람들과 적지 않게 부닥친다. 올라가는 계단 곳곳에 ‘우측보행’이라 표시가 붙어 있다. 통로도 통행방향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바뀌었다. 에스컬레이터도 올라가던 곳이 내려가는 곳으로 바뀌었다. 영등포구청역 환승구간의 경우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1대이고 올라오는 쪽은 2대였다. 시설물을 고치지 않고 방향만 바뀌니 한쪽은 사람이 텅텅 비고 다른 쪽은 사람이 넘쳐 난리다. 2대 몫을 1대가 감당하기 어려우니 일어나는 현상이다. 습관적으로 걷던 통행방향이 갑자기 바뀌니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당황해한다. 그야말로 우왕좌왕이다.
결국, 반드시 붙어야 할 팀들이 만났다. 2009 시즌은 기아와 SK를 거치지 않고는 논할 수 없는 시즌이었다. 기아는 8월과 SK의 9월은 가히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오늘을 기준으로 하자면, 분위기는 SK가 더 좋아 보인다. 2패의 벼랑 끝에서 '리버스 스윕'을 해낸 SK의 힘과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5차전을 제외하면, 두산이 스스로 무너진 경기들은 아니었단 점이다. 현재 SK는 보고 있어도 도저히 믿을 수 없던 승리를 19번이나 계속해나가던 바로 그 힘을 완벽하게 재연해 내고 있는 중이다. 기아 역시 대단함에서 SK보다 못할 것이 없던 시즌이었다. 단적으로 SK가 19연승을 하고도 1위를 못한 것은 기아가 8월에 그 보다 더 잘했기 때문이었다. 기아의 선발 4인방(로페즈,
KBS 이병순 사장은 사장 얼마 전 상반기수지동향 회의에서 KBS가 상반기에 97억여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자신의 경영 성과로 ‘흑자’를 강조하며 ‘수신료 인상’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순 체제’의 KBS가 과연 ‘흑자 경영’만 강조하면 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 시사주간지 의 국민신뢰도 조사에서 KBS의 신뢰도는 29.9%로 MBC에 밀렸다. KBS의 신뢰도는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13.2%나 떨어진 것이다.더욱이 이병순 씨가 강조한 ‘흑자 경영’의 실체가 제작비를 깎고, 비정규직을 자르고, KBS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달성한 ‘무늬만 흑자’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KBS 프로그램은 공영방송의 역할을 의심받을 정도로 질적 하락을 거듭하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좌파'가 더 이상 공식적으론 멍에가 아니게 된지도 꽤 되었다. 누군가들의 구분법에 따르면, 2번이나 연속 좌파 정부가 통치했던 나라인데, 오죽하랴. 까마득한 세월 같지만, 불과 2~3년 전에 이것은 꽤 뜨거운 쟁점이다. 결국, 축약하면 '좌파'가 멍에가 아닌 상태라면, '좌파'는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제도 매체를 중심으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민주화 같은 고준담론이 유행했던 것은 그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던 흐름이었고, 작년 촛불과 그 이후 퇴행하는 시대와 깨어있는 시민들 사이에서 좌파는 무엇을 할 것이냐 같은 추상적 논쟁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러나 이른 도취 혹은 고준담론의 창연함이 아니라면 무기력에 가려 정말 중요한 한 가지 혹은 가장 본질적인 갈증을 해
며칠 전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 바람이 몹시 불었더랬다. 미처 낙엽이 되어 스스로 생을 정리할 준비를 마치지 못한 이파리들이, 단지 심한 가뭄으로 바스러질 듯 위태로이 가지 잎에 매달려있다는 이유로 덜컥 불어 닥친 바람에 휩싸여 회오리로 한 무더기 솟아오른다. 이윽고 낙하한 그들은 나의 발 밑을 휩쓸고 지나갔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늦더위가 한창이었던 터라 나는 아직 맨발차림이었다. 일순 싸늘해지는 가슴, 조급증에 심하게 가슴이 떨렸다. 낙엽더미에 일러 느닷없는 계절 탓이다. “아니, 얘네들이……. 느네 아직 이럴 때가 아니잖아. 이런 행위는 일탈이야, 일탈! 바람불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옷깃을 여미게 하고, 그리하여 상념에 젖게하는 이런 이벤트는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