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가 ‘역대 최고 복지 예산’을 편성했단다. 내년 복지예산을 두고 정부가 내놓은 자화자찬이다. 수치만 보면 그렇다. 내년 복지지출 81조원은 정부총지출 292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7.8%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그러면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기 정부총지출 평균 10% 안팎이었고,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우리나라 복지지출 평균증가율은 14.3%였다. 복지지출 증가율이 정부재정 증가율보다 높으니 당연히 복지지출 비중은 역대 최고를 갱신해 왔다. 앞으로는 어떤가? 복지 비중은 올해 26.2%, 내년 27.8%를 거쳐 2013년 28.8%까지 계속 올라갈 예정이다. 이명박정부 내내 ‘역대 최고’ 보도자료가 발표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토요일 오후에 허기진 이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는 일처럼 당연해 보였던 파업을 미션임파서블로 만들어버린 KBS 노조를 보며, 정녕 노동조합은 무엇일까를 고뇌하게 됐다. 노동조합이라는 네 글자에 자동 반사적으로 따라붙는 어떤 연상과 인식들을 이제는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움츠러들게 된 것이다. 컴퓨터에선 종종 하나의 결정적인 오류가 종국에는 모든 프로그램들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키곤 하던데,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KBS 노조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회의하게 된다. 물론, KBS노조의 엽기적 모습들을 몰랐던 바도 아니고, 귀동냥으로 이래저래 현 KBS 노조 집행부의 수준과 실력에 대해서도 들어왔던 터라 큰 기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있는 이상,
지난 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노조전임자가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튿날인 3일, 전국종합일간지와 경제지는 전경련의 보도자료를 인용, 관련기사를 일제히 쏟아냈다. 한 결 같이 고연봉의 노조전임자를 비난하는 목소리였다.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로 노사정이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현 시점에서, 쟁점의 이해당사자인 전경련은 노조전임자를 ‘고액 연봉을 받는 노동귀족’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작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도자료에 담았다. 여기에 반(反)노동 신문들은 전경련의 발표와 입장만을 앞 다투어 보도하면서 일방의 의견을 여론화시키
용산은 잠들 수 없는 도시이다. 그곳에는 결코 이승을 떠날 수 없는 ‘목소리 없는 자들’, ‘몫이 없는 자들’의 원혼이 떠돌고 있다. 벌써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도 300일을 훌쩍 넘겨버렸다. 지난 11월 15일이 300일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용산참사에 항의하는 문화제와 집회는 계속되고 있지만 소수만이 이 짐을 질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용산에 무관심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가진 욕망이 진실과 대면하는 것을 애써 회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산의 진실은 명박산성으로 상징화될 수 있는 불통과 아집, 그리고 1970년대 권위주의적 폭압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이 진실을 대면하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욕망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사람들은 청계천
오바마의 대답은 병력 증파였다. 3만명 이상의 미군을 아프가니스탄에 추가로 투입하고, 나토(NATO)와 그 외 동맹국에서도 추가 병력을 보냄으로써, 2011년 이전까지 ‘이 일을 끝내려 한다’고 그는 말했다. 예상치 못한 결정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비난은 비난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반미주의’라고 통칭되는 단순한 관념의 틀을 벗어나 이 파병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9/11테러에서 아프가니스탄 공습, 이라크 전쟁, 그리고 다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지는 21세기 미국의 국제 정치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과연 그 비판의 주체가 되는 ‘우리’는 어떤 입장과 논거에 기반하여 그것을 평가할 것인가? 무턱대고 ‘미국이 하는 행동이니까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던 시간과 장소가 존재했을지 모르겠
대한민국은 1년 365일 공사중이다. 도로를 뒤엎고, 건물을 올리는 개발의 풍경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것은 배정된 예산을 모두 소진해야 하는 공무상의 이유 때문만도 아니고, 유독 삽질을 좋아하는 대통령 탓만도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가 가진 강박의 풍경이다. 지속적이고 강제적이며, 보편적이고 중독적인 개발은 시대의 강박 그 자체이다. 개발은 경제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여겨지며,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의 직접적 산물이기도 하다.개발이란 의도적으로 자연을 변형시켜 인간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는 행위이다. 마르크스는 최악의 건축가가 정교한 벌집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꿀벌보다 훌륭하다고 말한다. 건축가는 건축물을 짓기 전에 이미 머리 속에 완성된 건물의 이미지를 떠올릴
광우병 쇠고기 프로그램 때문에 정부로부터 호되게 탄압을 받았던 PD 수첩이 아직 그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을 터인데 다시 정부를 상대로 직격탄을 날렸다. 그래서이다. 피디수첩 게시판에는 12월 1일 방영으로 인하여 또다시 시련에 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청자의 글들이 자글자글하다. PD 수첩은 12월 1일 이라는 방송분에서 정부의 부자감세와 4대강 예산, 그리고 감액된 복지예산 사업들에 대하여 “꼼꼼하게” 분석했다. 특히 정부는 복지예산을 본 예산 대비 8.6% 증액시켰다고 하지만 추경예산까지 비교하면 겨우 0.7%밖에 증가하지 않았으며 그것도 연금지급 등 기금과 관련한 경직성 예산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 밥도 굶고 살길도 막막한 취약계층과
올림픽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다섯 개의 원으로 평화와 공정함 등을 형상화한 오륜기를 비롯하여, 경제적 발전, 깨끗한 도시 이미지 등, 많을 것입니다. 물론, 최고의 메가스포츠이벤트로 대표되는 올림픽이 이처럼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수 있습니다. 소위, 명품도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단계로서의 올림픽은,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앞다퉈 유치하고자 하는 메가이벤트 1순위가 되었죠. 하지만, 올림픽이 이처럼 마냥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과정을 보면, 올림픽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쓰레기가 되는 삶”을 만들어내는 합법적인 도구로서의 얼굴 말입니다.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말이죠. 강제퇴거의 시발점인 서울올림픽에서 완
해방 이후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5-16의 박정희도, 12-12의 전두환도 탱크를 앞세우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청와대가 아니다. 방송사로 달려가 마이크부터 먼저 뺐었다. 정보의 유통경로를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이 나라 언론의 행로는 굴종과 질곡으로 점철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민주화의 여명기를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장악을 노린 정치권력의 음습한 음모는 지칠 줄 모른다. 역대정권이 정도 차이는 있지만 언론장악의 끈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6월 항쟁 이후 22년이 지났건만 역사의 수레바퀴가 빠르게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암울했던 그 시절에 철권을 휘두르던 정치세력이 다시 만세를 부르
그를 영입하기 위해 스카우터가 찾아간 건 아니었다. 당시 고교 최고 투수였던 충암고 박명환 선수(LG 트윈스)와 광주 진흥고 김상진 선수(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지.)의 투구를 한 번에 볼 수 있기에 직접 운동장으로 간 거였다. 하지만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온 건 박명환, 김상진의 투구가 아닌 그의 스윙이었다.그의 가능성에 매료된 해태타이거즈는 그를 2차 1번으로 지명하였다. 당시 팀의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1억 원의 계약금을 그의 손에 쥐어줬음은 물론이다. 이후 그가 타이거즈에서 타자로서 하지 못한 거라곤 해태타이거즈 첫 유니폼을 입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의 입단 동기가 세상의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걸 보기도 했고 150Km가 넘는 강속구로 10타자 연속삼진을 잡은
처음엔 그저 채널이 몇 개 더 생기는 것인가 했다. 사실, 지상파의 독점이 너무 심각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미국이나 일본은 안 그렇다는데... 얼핏 생각하기에 우리 미디어 환경이 좀 너저분할 정도로 후진 것도 같았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 경쟁이야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 말이다.게다가 방송국 사람들 월급은 또 좀 높은가. 나한테 특별히 떨어질 것 없었지만 은근히 고소하기까지 했다. 또 나 같은 신방과 출신 백수의 입장에서야 회사가 늘어나면 무조건 좋은 일 아닌가. 백수들만 앉아있는 카페에 빌게이츠가 들어와서 카페 안 사람들의 평균 소득이 늘어난 들 내 소득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내가 빌게이츠가 될 수도 있다는 환상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
국세청 안원구 국장의 잇따른 폭로는 종결되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그림 로비’ 나아가 태광실업 표적 수사 그리고 MB 당선의 당위성까지를 점점 현재의 문제로 복원 내지는 환원시키고 있다. 마치 지뢰찾기 게임에서 영역이 넓어지듯, 오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지원 의원은 현재의 상황을 두고, 이렇게 경고했다. “검찰과 법무부 장관이 부인(만)한다면 앞으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고. DJ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내며 ‘옷로비’를 비롯한 각종 비리를 목격 혹은 수습해왔던 박지원 의원의 말은 공세라기 보단 권력을 운용해본 이가 던지는 마지막 충고, 동병상련의 그것이었다. 의미심장하다. 안원구 국장의 폭로는 대개의 권력형 비리 사건이 그렇듯 아주 구체적인 정황이 ‘의혹
결전이 다가왔다. 하후돈과 장료, 순욱이 5만 군대로 지키고 있는 낙양성을 공략하기 위해서 차근차근 전쟁준비를 해나간다. 병사를 징집하고, 훈련을 시키고, 무기를 개발하고, 낙양성에 첩자를 보내 미리 정보를 빼내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다른 성에 있는 우리 편 유능한 장수들도 불러 모아야 한다. 관우와 조운이 중심을 잡고 제갈량이 뒤를 받쳐주면 나머지 장수는 대충 너무 멍청하지만 않은 애들로 채워도 된다. 불후의 명작 ‘삼국지’에서 전쟁은 참 쉽다. 돈과 군량만 있으면 인구에 비례해 마음껏 징집할 수 있다. 그들은 병역거부하겠다고 설쳐대지도 않고, 군복무기간 가지고 시비걸지도 않으니 얼마나 편한가. 하지만 군인 수가 많다고 전쟁을 이기는 건 아니다. 부대를 통솔하는 장수가 멍
1.정녕, 영혼은 불안에 잠식당하고 부담으로 진영은 분열되는 시간은 오고 있는 것일까? 2.아직 언제일지도 모를 종합편성채널 허가를 앞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고로 카르텔(Kartell)의 붕괴란 미묘한 것이어서 처음엔 아주 작은 차이였던 것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법이다. 3.동아일보는 애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를 싸잡고 있지만, 천부당하다. “일부 신문이 이 정권의 세종시 원안 수정을 옹호하고 선동하기에 바쁘다”고 일갈한 이회창 총재 발언의 오리지널리티는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이었다. ''방송허가' 빌미로 정치게임 말라'던 그 글의 요지는 "신문사들이 허가권을 쥔 이명박 정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정부 비판기사를 자제하고 있다는 말"들에 관한
언론의 기본적 기능은 사실보도다. 사실을 기반으로 다양한 정보와 소식을 독자나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언론이 어떤 사건에 대해 보도하는데 실제 ‘사실’이 전제되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실을 기초로 하지 않은 보도는 언론의 기본 기능을 저버리는 그래서 스스로가 언론임을 부정하는 행위다. 그런데 소위 국내 신문사 랭킹 1, 2, 3라는 조선․중앙․동아 그리고 세계최고를 추구한다는 매경과 한경과 같은 보수언론사들은 사실보도는 무시하고, 왜곡 보도를 일삼고 있다. 비판 기능을 수행한다는 미명하에 거짓을 가지고,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왜곡 보도 타겟은 개혁, 진보 세력이다. 특히 민주노총과 노조에 대해서는 비판을 넘어 거짓을 통해 비방과 희화화하고 있다. 결국 왜곡보도를 통해 자신
얼마 전 박원순 변호사는 이명박 정권이 내년 이후 일패도지(一敗塗地)할 것이란 발언을 했었다. 후에, 그 발언은 좀 지나쳤다고 추슬러 담긴 했지만 꽤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민주정부 10년을 지나며, 사회의 대표적 명망가 반열에 오른 이후 험한 말과 진영논리를 대변하는 표현을 자제해 왔던 박원순 변호사이다. 그의 점잖음을 생각할 때, 일패도지라고 하는 날 선 표현은 일단 파격적이었다. 이는 박원순 변호사조차 험한 말을 하게끔 만드는 상대의 거친 수작을 먼저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 그는 대체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앞서 더듬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그가 극도로 단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확신 같은 것이었을 테다. DJ의 표현을 빌자면, '인생은 생
세상일이란 늘 명쾌한 것만은 아니어서 헷갈릴 때가 많다. 문화판을 돌아다니다 보면 헷갈릴 일은 더 늘어난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정치들을 판단해야 하는 일도 그렇고 보이지 않은 무형의 가치들을 찾아내는 것도 그렇다. 어찌보면 '문화'라는 말 자체도 명쾌하지 않다. 그럴 때마다 가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자문을 구했다. 지난 2006년 9월 20일 지병으로 타계한 고 이세길 평론가. 뭔가 석연치 않은 일 한가운데 서게 됐을 때, 잣대가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가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너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2006년 가을, 우리는 항상 올곧고 따뜻하게 지역문화에 대해 발언해오던 목소리 하나를 잃은 셈이었다. 벌써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빈자리가 여
1762년 장-자끄 루소는 『사회계약론』1편에서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여기저기 쇠사슬에 묶여있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우리가 정치 철학을 논의할 때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주제이다. 루소가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의식은 우리가 과연 자유로운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문명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루소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문명화 속에서 ‘규칙’ 또는 ‘법’이라는 총구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다. 규칙이라는 총구를 바라보는 인간의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규칙 내지는 법이라는 총구에 함축된 의미는 즉각적인 폭력의 위협, 심지어 목숨까지도 포함하는 그러한 위협에 다름 아니다. 최근 벌이지고 있는 법의 판결은 바로 루소가 주장하는 “쇠사슬에 묶여”있는 인간의
부모님 친지 분들은 나를 “엄마, 아빠” 다음으로 “스트라이크, 볼”을 외친 꼬마로 기억하고 있다. 세 살 때부터 야구팬이었으니 20년이 넘는 세월을 야구를 사랑하며 살아왔던 셈이다. 말 그대로 “나를 키운 건 8할이 야구이다” 그런데 그런 놈이 막상 내 고장에 돔 구장이 건립되는 걸 막을 수밖에 없으니. 변절한 옛 노동운동 동지와 광역단체장 자리를 놓고 싸울지도 모르는 유력정치인도 이렇게 착잡하지는 않을 거다.광주시에 돔 구장이 건립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8월 광주시가 2013년 WBC를 유치하고자 돔 구장을 건립한다는 기사들이 있었다. 그 때 당시 군대에 있어 인터넷이 아닌 'Sports 2.0'이란 잡지를 통해 알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기사에서 당시 광주시 관계자
몇 달 전 한 보수신문 논객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기화로 시국선언에 동참한 지식인들의 태도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칼럼을 썼다. 논지의 핵심만 추리면 대략 이렇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부 대학교수들의 릴레이 시국선언은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선동에 휘둘리고 미망에 빠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란 객관적 사실은 몇 차례의 상징조작과 논리비약을 거쳐 이제 반정부 투쟁의 대의로 탈바꿈했다. 사실과 논리에 근거해야 할 교수들마저 이런 무책임한 선동에 휩쓸려 시국선언이란 걸 줄줄이 내놓고, 여기서 빠지면 흡사 지식인 축에 끼지 못할까 안달이니 딱한 노릇이다.” 시국선언 명단에 이름을 올린 교수들을 ‘무책임한 지